Troilus and Cressida

근래들어 주말에는 계속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지난 주의 여행지는 Shakespeare의 고향인 Stratford-upon-Avon이었다. 영국에서 처음하는 기차 여행의 당황스러움과 그 허름한 역사는 논외로 하고 15분이면 시내 지리를 꿰뚫을 작은 도시에서 보내는 주말은 2주째 계속되고 있는 좋은 날씨와 어울려 꽤 평화로웠다.

사실 이곳에서 볼만한 것은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아니다. 이곳의 알짜배기는 바로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 소속의 극장이다. 강변을 따라 3개의 극장이 염주알처럼 들어서 있는데 한참 시즌인 지금으로서는 세계 각지에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또 하나 인상깊었던 점은 강둑에 매인 보트들이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극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로잘린이라는 이름의 보트를 무척이나 타보고 싶었는데 혼자 보트를 젓는 일을 꽤나 등급이 높은 청승이라 그만 두었다. 물론 만약 나중에 런던으로 출장 올 일이 있으면 주말을 이용해 근사한 데이트를 즐겨보기라는 더 중증의 청승을 떨며 말이다.

개인적으로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한 번 밖에 읽지 않았기에 공연이 시작되기전 이틀 동안 급하게 텍스트를 해석하고 암기하니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 희극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듯이 이 희극은 셰익스피어의 다른 희극에 비해 갈등 구조의 합리성이 떨어지고 내적 갈등의 심화 과정이 어설프다. 한 마디로 좋은 희극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올해 에딘버러 페스티벌에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를 대표해 출품된 작품이고 신문에서 너무나 많은 지면을 할애에 다루었으며 한국에서 공연되는 것을 볼 기회가 희박한 작품이라고 생각했기에 선택한 공연이었지만 역시나였다. 설익은 배우들의 연기와 갈등 구조의 빈약함은 화려한 무대와 다양한 창의적인 시도에도 불구하고 가려지지 않았다. 뭐랄까? 명성에 걸맞지 않은 연기력에 놀랐다고 해야하나? 하지만 주연 배우들에게 탓을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태도이다. 제목과 다르게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는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어려운(난해하지는 않다) 작품을 고른 그들의 선택과 나의 선택이 잘못되었을 뿐이다.

어찌 되었던 영국에서 본 최초의 연극 공연이고 무대의 폭 넓은 활용과 크고 또렷한 발성, 두터운 조연급들의 호연과 화려한 무대 디자인. 원전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 창신성만큼은 꽤나 돋보였다. 매우 포멀한 리뷰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내가 느낄 수 있는 공연의 깊이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또 한 가지 변명을 덧붙이자면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친구들에게 공연과 여행에 관하여 엽서를 썼기에 더 이상 쓸 말이 남아 있지 않다는 탓도 크다.

P.S.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 영화에 비해 현실은 제약적이며, 이성적이다. 하지만 그 제한된 범위의 행동만으로도 난 충분히 감동했고 평생동안 잊지 못할 그 무엇이 가슴에 아로새겨졌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추억하며. Amor est vitae essent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