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자들

 낱장을 두세 번 넘길 때마다 아름다운 묘사와 만날 수 있는 소설이 있다. 『음모자들』을 읽기 전까지 샨사의 소설이 그런 소설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했다. 미인은 아니지만 아름다운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디지 매력적으로 보이던 여류 작가. 책날개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바라보며 이런 사람이라면 사랑에 빠졌을 때 어떤 표정을 지으며 어떤 문장으로 상대에게 사랑을 전달할까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힌 적도 있다. 우연히 들린 서점에서 서명에 열중하는 그녀를 발견한 순간에 내가 느꼈던 기쁨은 어떤 면에서는 부정한 것일 수도 있다. 몇 해만에 다시 만난 첫사랑이 가져다주는 환희와 비슷한 휘발성의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아름답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녀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어딘지 그녀의 분신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 분신들의 사랑과 욕망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작가의 내밀한 상상을 엿보는 듯 한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단지 그것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름에 출간된 소설을 겨울에서야 읽은 때늦음에 대한 변명은 생략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음모자들』은 그녀의 소설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제 슬슬 그녀의 게임에도 질려가는 참이다. 그녀가 고른 소재(스파이)는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던 그녀의 문학적 지향을 과감 없이 들어내 버렸다. 그리고 그 지향이 가리키는 끝은 ‘지적인 천재 작가 샨사’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는 허무한 연애 감정이다. 조금 더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음모자들』은 세련된 묘사와 표현으로 점철된 하이틴 로맨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비난이 양가감정에 지나지 않음도 잘 알고 있다.

샨사의 소설에는 욕망의 호흡이라는 것이 있다. 남녀가 벌이는 애정 게임의 와중에 욕망은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독자에게 전염되는데 그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림을 그리듯 이어지는 그녀의 문장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조잡해야 정상일 장면에 환상을 부여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여성이 바라보는 욕망과 남성이 호기심을 느끼는 욕망의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그녀의 게임은 남녀 사이의 게임인 동시에 성별에 따른 욕망의 상대적 차이이기도 하다. 유치하게 표현하자면 그녀의 소설은 로렌스 이래 확립된 고정된 정체성에 대한 반역이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샨사의 아야메이는 이안 플레밍의 스파이 소설에 기용된 에바 그린의 멋진 뒷모습을 따라갈 수 없으며 이단의 프랑스 버전에 불과한 조나단 역시 크루즈의 매력을 따라갈 수 없다. 그녀의 의도가 무엇이던 간에 중국인 스파이와 프랑스계 혼혈 CIA요원, 그랑제꼴 출신의 관료가 만들어 내는 앙상블은 조잡할 수 밖에 없다. 설령 그녀가 거짓말쟁이 포커판이나 진배없는 그 세계가 이름 없는 남녀가 만들어내는 애정의 시소게임과 거짓말에 지나지 않음을 발견했다고 해도 말이다.         
[#M_In fact|less..|  “I think it’s similar to cunnilingus on the street, a sexcursion or an incidental affair. Her novels are unquestionably hedonistic. It is covered by literary portrayals, but it’s like to a really gorgeous courtesan for me. Moreover, literacy is more convenient than real courtesans. Furthermore, I don’t have to concern myself about reproaches.”  
여행 중에 만난 어떤 이와 우연히 샨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의 말인지 나의 말인지, 아니면 둘의 의견이 섞인 것인지 술기운에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샨사를 읽는 이유를 설명하기에 부족하지는 않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