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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HisCave.Ne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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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Vita sine libris mors est.</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Mon, 05 Jan 2009 00:04:53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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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HisCave.Net</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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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Vita sine libris mors est.</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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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서양고대사박물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 2차세계대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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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Inter arma silent leges라는 라틴어 문장은 만나는 매 순간 기이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평온한 표정 뒤에
숨겨진 광기와 폭력을 이끌어 내는 주문이랄까? 극적인 무대장치를 통해 대중의 이성을 현혹할 수 있었던 선동정치가 혹은 사회공학자
겸 정치깡패들이 세계를 이끌던 시대의 순종적인 군중이 된 기분일지도 모르겠다.&lt;br&gt;&lt;/p&gt;&lt;p&gt;하지만, 나 자신에게 있어
불행은 저 문장을 통해 전쟁의 피해나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선량한 면모가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역사를 통해 법이 침묵이 강요당하는 순간에는 이미 양심 따위를 지킬 여유가 없다는 것, 전쟁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살아남는 투쟁 외에는 어떤 선택지도 남아있지 않다는 깨달음은 얼마나 나를 망쳐놓았는가?&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398780458.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91&quot; width=&quot;220&quot; /&gt;&lt;/div&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서양고대사박물관(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lt;/span&gt;&lt;/p&gt;&lt;p&gt;고대를 다룬 수많은 역사서의 전투 기술은 다분히 문학적이다. 작가들이 묘사하는 것만으로 상황을 이해하기란 여의치 않다. 이 책은
이런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다. 모든 전투를 개괄하는 것은 아니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어느 전문가 못지않게 까다로운 어조로
잘못된 고증에 대한 비판 능력을 지닐 수 있게 된다.&lt;br&gt;&lt;/p&gt;&lt;p&gt;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은 화려한 삽화다. 나처럼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으로서는 결코 머릿속으로 그려내지 못할 문헌상으로만 만날 수 있던 존재들과의 해후는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lt;br&gt;&lt;/p&gt;&lt;p&gt;P.S. 장르소설을 긁적거리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책이기도 하다.&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330546657.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14&quot; width=&quot;220&quot; /&gt;&lt;/div&gt;&lt;span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The First World War: the war to end all wars)&lt;/span&gt;&lt;/p&gt;&lt;p&gt;Great War 혹은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으로 불린 1차세계대전이 그보다 더 큰 규모의 전쟁을 위한 서곡이었다는 사실을 오늘의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자면 비록 일관된 전략 아래 수행되는 대전략의 부재에도 국지적인 각 전선의 규모의 합은 그 전시대까지 인류가 전쟁에 쏟아부은 모든 자원을 능가하는
규모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긴 어렵다. 이 책의 초점은 바로 여기에 맞추어져 있다. 현대적 관점에서 아예 벗어나지도 않지만 기술된
관점의 상당수는 당시 사람들이 지녔던 견해를 수용하는데 인색하지 않다.&lt;br&gt;&lt;/p&gt;&lt;p&gt; 무엇보다 다른 1차세계대전사에서
다루지 않았던 동부전선에 대한 고찰과 현대의 군사적 개념을 토대로 당시의 전략을 비판하지 않은 점은 후한 점수를 줄만 한다.
사람에 따라서는 영연방군에 호의적인 서술에 호오를 드러낼 수도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그것 역시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였음을
밝혀둔다.&lt;br&gt;&lt;/p&gt;&lt;p style=&quot;font-weight: bold;&quot;&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050638135.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95&quot; width=&quot;220&quot; /&gt;&lt;/div&gt;2차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lt;i&gt;)&lt;/i&gt;&lt;/p&gt;&lt;p&gt;존 키건은 리처드 홈즈와 더불어 영국이 자랑하는 전쟁사가 중의 한 명이다. 그가 내놓은 저술의 범위는 14세기부터 21세기에 이르는 광범위한 시간대이지만 특히 그가 장기로 삼는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이다. 그만큼 제2차 세계대전의 다양한 전장을 다룬 사가는 아직까지는 없다.&lt;br&gt;&lt;/p&gt;&lt;p&gt;수많은 개인적 수기는 넘쳐나지만 개별 전선을 전문적으로 다룬 역사서는 턱없이 부족한 1차세계대전과 달리 제2차세계대전은 개별 전선을 다룬 책이나 제너럴십을 다룬 책은 넘쳐나지만 전쟁의 전방위를 조망한 책은 찾기 어려운 것이 실제다.&lt;/p&gt;&lt;p&gt;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존 키건의 2차세계대전은 비록 태평양 전쟁을 가볍게 다루고, 유럽전쟁에 치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쳐도 유용성만큼은 후한 점수를 주기 충분하다. 영미의 전쟁위원회가 겪은 진통, USSR을 향한 히틀러의 돌격과 풍전등화와 같은 스탈린의 운명을 반전시킨 48시간, 무엇보다 태평양 전쟁의 당사자인 일본인이나 미국인이 아닌 영국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태평양 전쟁의 양상과 해전이 아닌 해상력, 공군력과 결합한 해상력에 대한 이해 부족이 광대한 제국을 유지하던 마지막 숨결에 어떻게 치명적 일격을 가했는지를 고백한 글을 읽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lt;br&gt;&lt;/p&gt;&lt;p&gt;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이지만 전쟁만큼 인간의 본성을, 인간으로 구성된 사회의 물러날 수 없는 한 걸음을, 나약한 인간으로 이루어진 국가지휘부의 무모함과 부도덕성, 무책임함을 배우기 좋은 교재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순히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남은 시사점을 남긴다.  &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2차세계대전사</category>
			<category>Geoffrey Jukes</category>
			<category>Hew Strachan</category>
			<category>John Gibson Warry</category>
			<category>John Keegan</category>
			<category>Michael Hickey</category>
			<category>Peter Simkins</category>
			<category>The First World War: the war to end all wars</category>
			<category>The Second World War</category>
			<category>Warfare in the classical world</category>
			<category>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category>
			<category>서양고대 전쟁사박물관</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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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05 Jan 2009 00:01: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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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티치아노 미스터리</title>
			<link>http://hiscave.net/585</link>
			<description>&lt;p&gt;이언 피어스의 소설을 끊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lt;a href=&quot;http://hiscave.net/309&quot; target=&quot;_blank&quot;&gt;핑거포스트1663&lt;/a&gt;』에서 보여주었던 재기를 다시 한 번 보여줄 것이란 희망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핑거포스트1663』가 예외적인 소설이라는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새롭게 번역되는 소설을 읽을 때마다 실망감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물론 이 소설들이 그의 초기작이라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해외 독자는 원서의 출간일보다 역서의 출간일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이기적인 습성을 버릴 수 없다.)&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101980922.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98&quot; width=&quot;275&quot; /&gt;&lt;/div&gt;일명 미술사 미스터리로 불리는 이 시리즈는 낱권으로는 그리 매력적이지 않다. &amp;lt;라쇼몽&amp;gt;에 비견될 만한 재치를 보여주었던 『핑거포스트1663』에 다가서기에는 아직 너무 먼 거리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시리즈의 첫 이야기인 『&lt;a href=&quot;http://hiscave.net/307&quot; target=&quot;_blank&quot;&gt;라파엘로의 유혹&lt;/a&gt;』에 난 그토록 강한 비판을 남길 수밖에 없었다.&lt;br&gt;&lt;/p&gt;&lt;p&gt; 하지만, 이 시리즈에는 생생한 정도는 아닐지라도 읽고 있노라면 수만 킬로미터를 뛰어넘어 사건이 벌어진 공간을 엿보는 듯한 약간의 현장감이 있다. 시리즈의 첫 권을 읽은 독자에게는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생략되었다는 점 또한  되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다가와 연기를 펼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스케일이 큰 미니시리즈를 보는 듯한 기분을 독자에게 선사한다.&lt;br&gt;&lt;/p&gt;&lt;p&gt; &amp;lt;우르비노의 비너스&amp;gt;로 널리 알려진 티치아노는 르네상스의 이탈리아 화가들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amp;lt;나체의 마야&amp;gt;나 &amp;lt;뒤로 돌아 거울을 보는 아프로디테&amp;gt;, &amp;lt;올랭피아&amp;gt; 같은 여성의 와상 누드의 매력을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며, 그가 손끝으로 거칠게 표현한 짙은 바다가 인상적인 &amp;lt;비너스의 탄생&amp;gt;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앵그르의 누드 초상화와 사세리오의 아름다운 여인들 역시 만나지 못했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티치아노 미스터리』는 바로 이런 티치아노 연구를 위해 설립된 위원회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따라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이면에 깔린 진짜 이야기는 미술계와 인간의 추잡한 욕망에 관한 소고다.&lt;br&gt;&lt;/p&gt;&lt;p&gt;2006년 여행에서 내가 본 물에 잠긴 베네치아는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찬란한 햇살이나, 바닷바람을 맞으며 플로리안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물에 잠긴 바다의 도시를 걸으며 느낀 아름다움을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김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차마 이 소설에 악평을 남길 수가 없다.&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Ian Pears</category>
			<category>Jonathan Argyll series</category>
			<category>The Titian Committee</category>
			<category>이언 피어스</category>
			<category>티치아노 미스터리</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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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4 Jan 2009 09:16:2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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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title>
			<link>http://hiscave.net/584</link>
			<description>&lt;p&gt;누이들이 이 시집에 열광했을 때 솔직히 난 저 시집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039;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039;이라는
문구가 궁상스럽고 못나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의 난 아주 가끔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되뇌게 된다. 지금 알고 있는 냉혹한 진실을 알았더라면 내 삶을 더욱 사랑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며 보냈던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 않았을까?&lt;/p&gt;&lt;p&gt;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요즘의 난 과거의 태만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천금과도 바꾸지
않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치르는 대가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쓰고 불쾌하며, 음습한 뒷골목의 좌판에 놓여 주인을 기다리는
방물처럼 처량하다. 참을 수 없는 비겁함에 나를 내던지는 거리낌도 사라졌고, 모욕에도 익숙해졌다. 자부심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제 더 빼앗길 것이 남지 않은 셈이다. 메마른 기계처럼 대답을 뱉어내는 내 입술은 어느 때보다 능변이지만 그 결론은 왜 이리 허무한 것일까?&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113116328.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95&quot; width=&quot;350&quot; /&gt;&lt;/div&gt;드디어 지난 화요일에는 모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과 부딪쳤다. 그날
아침, 삐뚜름하게 안경을 쓰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 남자는 &#039;줄만 서면 붙는 시험&#039;에 떨어진 나를 비웃었다. 꽤 알려진
경제신문사의 보스가 던진 한 마디는 몇 년 전 그 남자가 내게 보여준 겸손하고 사려 깊은 행동과 맞물려 나를 혼돈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박봉을 감내하더라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에 대한 내 순진함을 저주하며 조용히 마주 웃어주었다.&lt;/p&gt;&lt;p&gt;어린 시절
이나 예전이나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왜 난 잠시 잊었던가? 삶에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패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는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모습일 때뿐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잊었던 것일까? 평범함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굴레가 내 삶을 조이기
시작하는 이 즈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탈출을 꿈꾼다. 삶이 이 창과 같다면 새로 고침이란 단추를 누름으로써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지 상상하는 내가 혐오스럽긴 해도.&lt;/p&gt;&lt;p&gt;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은 나의 얼굴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었던 최고의 찬사였다. 하지만, 요즘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난 스물여덟의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리라 단 한 순간도 상상하지 않았건만 지금 내가 쓰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백서다.&lt;/p&gt;&lt;p&gt;여기저기서 받은 면접비로 제법 비싼 만년필 한 자루를 샀다. 책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는 라틴어 문구를
각인시키며 한순간 의기양양해졌지만 이내 몸과 마음 모두 가라앉아 버렸다. 이 펜으로 무언가를 쓰기 위한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lt;/p&gt;&lt;p&gt;P.S.&lt;br&gt;&lt;/p&gt;&lt;p&gt;결국, 고용통계에서 포지티브항이 되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학창시절 한 번도 내 첫 직장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주변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지만 요약하자면 의외의 선택 혹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세다. 하지만, 수상한 시절에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내 결론이 틀릴 것 같지는 않다. &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Only the things!</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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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hiscave.net/584#entry584comment</comments>
			<pubDate>Mon, 15 Dec 2008 22:37: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title>
			<link>http://hiscave.net/583</link>
			<description>&lt;p&gt;_서두를 열려고 얼마나 많은 문장을 쓰고 지웠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이처럼 아름다운 소설에
대한 감상을 남기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속을 뒤흔든 이 격랑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내 피가 너무 뜨겁고, 이
격정을 있는 그대로 문장으로 옮기기에는 내 능력이 일천하기 때문이다.&lt;/p&gt;&lt;p&gt;_르누와르가 그의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여성들에게 느꼈던 감정을 묘사하는 문장을 읽으며 소년의 껍질을 벗고 어른이 되었던 스물둘의 그 겨울이 생각났다.
깊게 감긴 두 눈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르게 오르내리는 가슴에 귀를 댈 수밖에 없었던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주가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때의 전율과 감각이 문장을 읽는 동안 몸속에서 다시 깨어났다. 부끄러움과
수줍음에 놀라 당시에는 미쳐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이 몇 해가 지난 다음에야 나를 찾아왔다. 이제는 이름조차 부를 수 없는
누군가의 따스한 온기와 머리칼 냄새와 함께.&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080135601.jpg&quot; alt=&quot;뱃놀이하는사람들의점심&quot; height=&quot;438&quot; width=&quot;300&quot; /&gt;&lt;/div&gt;&lt;/p&gt;&lt;p&gt;_지금보다 한참 어렸던 어느 해 가을 지기들과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의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우리 모두 알리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제롬과
알리사의 사랑이 안타깝다는 것. 줄리에타가 제롬에게 건넨 마지막 문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만큼은 모두 동의를
표했다. 이제 그 지기들에게 고하노니 지드의 알리사가 우리에게 안겨주었던 가슴 먹먹한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인물이 한
소설에 등장했으니 어서 책장을 펴기를. 알퐁진이라는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두 번 세 번 문장을 씹어 삼키기를, 굽은 손의
르느와르가 당신 가슴을 그리고 싶었다고 내뱉는 장면에서 벅찬 감동을 느끼기를 빌어본다.&lt;/p&gt;&lt;p&gt;_귀스타브 까유보트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화가이다. 화려한 재능을 꽃핀 대가들의 그림자에 가려 지금까지 제대로 조망 받지 못했던 그를 음지에서 끌어내
그의 업적과 고뇌, 삶을 보여준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amp;lt;퐁 드 뢰로프&amp;gt;나 &amp;lt;비오는 날의
파리&amp;gt;를 그의 걸작으로 꼽지만 난 &amp;lt;바닦을 깎는 남자들&amp;gt;과 &amp;lt;노젓는 남자들&amp;gt;들을 더 사랑한다.&lt;br&gt;&lt;/p&gt;&lt;p&gt;_어린 시절 처음 &amp;lt;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amp;gt;을 도록을 통해 보았을 때 몇 시간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이 어떤 관계를 지니고 있을까, 그들의 시선이 바라보는 곳 찾기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amp;lt;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amp;gt;이 지닌 비밀을 알게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이 그림을 실제로 보고 싶다. 만약 워싱턴에 가게 될 기회가 생긴다면 이 그림을 보고자 필립스 컬렉션에서 하루를 보낼 것이 분명하다.&lt;br&gt;&lt;/p&gt;&lt;p&gt;_하나의 그림이 새로운 시대를 규정했다면 이 소설은 하나의 그림 속 인물과 그림의 완성을 통해 우리에게 하나의 시대를 보여준다.
보불전쟁과 파리코뮌의 상처를 넘어선 1880년의 파리와 그 속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면서 우리는 새로운 형태의 플라뇌르를 즐길
수 있다.&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Le déjeuner des canotiers</category>
			<category>Lunchon of the boating party</category>
			<category>Pierre-Auguste Renoir</category>
			<category>Suzan Vreeland</category>
			<category>Vita sine libris mors est</category>
			<category>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category>
			<category>수잔 브릴랜드</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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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hiscave.net/583#entry583comment</comments>
			<pubDate>Mon, 08 Dec 2008 22:49:2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악마의 공놀이 노래, 이누가미 일족</title>
			<link>http://hiscave.net/580</link>
			<description>&lt;p&gt;누이들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책을 줄기차게 사들이는 내게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곤 한다. 냉혹하게 평가하자면 오래되어 낡은 추리소설인데다가 내가 일본소설을 읽는 경우가 드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난 추리소설이 아니라 전후소설을 읽는 기분이란 변명을 늘어놓곤 한다. 세이시의 플롯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전후 일본인에 대한 묘사와 이제는 사라진 일본추리소설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음산함이 매력이라는 첨언과 함께 말이다.&lt;br&gt;&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022835147.jpg&quot; alt=&quot;악마의 공놀이 노래&quot; height=&quot;296&quot; width=&quot;200&quot; /&gt;&lt;/div&gt;『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요코미조 세이시의 다른 추리소설에 비해 비교적 플롯이 명백하다. 다른 추리소설에서 하이쿠나 단어의 해석이 중요한 키워드인 것이 비해-물론 그렇다고 해도 논리적 일관성 앞에서는 아무 장애가 되지 않는다-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살인이 벌어지는 공간의 비밀을 푸는 것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물론 살인이 벌어지는 공간의 문제와 거짓 진술의 문제는 이미 『옥문도』에서도 다루어진 부분이기도 하고 모든 추리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문제이긴 하지만 한층 원숙해진 인물 및 배경 묘사가 소설에 차별성을 부여하고 있는 셈이다.&lt;br&gt;&lt;/p&gt;&lt;p&gt;반면 『이누가미 일족』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의 종합판에 가깝다. 지금까지 다른 소설에서 사용되었던 다양한 기법들이 망라되어 있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다소 미군정시대의 일본에는 어울리지 않는 현대성이 엿보이기도 하지만 소설이 나온 시기가 70년대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되기도 한다. 다만, 이런 현대성으로 말미암아 『옥문도』에서 보여주었던 것 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서의 사실성은 다소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뭐  60년대와 군정시대가 동시에 존재하는 듯한 혼란이 되려 소설에 특이성을 부여해주긴 했지만 말이다.&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right&quot; style=&quot;float: right; margin-lef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378292402.jpg&quot; alt=&quot;이누가미 일족&quot; height=&quot;296&quot; width=&quot;200&quot; /&gt;&lt;/div&gt;『이누가미 일족』에서 세이시는 언어유희나 살인이 벌어지는 제한된 공간의 비밀에서 벗어나 그의 소설에서는 지금까지 발견할 수 없었던 제3의 가능성을 열었다. 하지만, 이 제3의 가능성 덕분에 추리소설은 명쾌함에서 더욱 멀어졌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비록 제3의 가능성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영미 추리소설에서는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는 범주에 속하고, 일본적인 특수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해도 말이다.   &lt;br&gt;&lt;/p&gt;&lt;p&gt;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소설이 지닌 매력은 정서적으로 고립된 닫힌 공간이 지니는 폐쇄성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풀리지 않는 원한관계의 특수성이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전후 일본이란 공간과 정신적 코마 상태에 빠진 일본인과 결합되면서 독자를 어둠의 심연으로 이끈다.&lt;br&gt;&lt;/p&gt;&lt;p&gt; 해소되지 않은 원한은 한 가족과 한 마을을 파괴하고 기괴한 죽음을 여기저기 흩뿌려놓는다. 하지만, 세이시는 숨겨진 정체를 지닌 가면의 인물들과 목적을 위해 손쉽게 살인이라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을 선택한 군상들 사이에 여러 빛깔의 사랑을 숨겨 놓는다. 게다가 복수의 집념이 남긴 것은 덧없는 죽음의 향연이라는 교훈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기에 두텁게 낀 안개가 사라지고 고립된 공간이 온전하게 외부와 연결되었을 때 독자는 다시 한번 평범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이 넘치는 평범한 현실 세계로 돌아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惡魔吹着笛子來</category>
			<category>橫溝正史</category>
			<category>犬神家一族</category>
			<category>악마의 공놀이 노래</category>
			<category>요코미조 세이시</category>
			<category>이누가미 일족</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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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at, 25 Oct 2008 21:06:5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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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 bunch of unanswered questions</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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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가끔은 서늘한 그늘이 진 평상에 누워 트렁크만 입은 채로 모시 침구 속에 몸을 숨긴 채 언덕 마루에
넘어가는 구름을 세는 휴일을 꿈꾼다. 높은 베개를 베고 서재에서 꺼내온 소설을 한 아름 쌓아놓고, 귀에는 시원하지만 리듬이
번잡하지 않은 그리 유명하지 않은 밴드의 음악을 들으며 꽃내음 향긋한 프랑스 홍차를 홀짝이는 주말은 얼마나 여유로운가?&lt;/p&gt;&lt;p&gt;/내가 소설에서 헤어날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낯선 시대, 낯선 거리를 걷는 여행자로서의 만족감이다. 때로 펜 끝에서 흘러나온
문장은 어느 화가의 붓터치보다 더 강렬하게 한 시대를 함축한다. 결코 실제로는 경험할 수 없는 과거의 어느 순간을, 현대라는
볼썽사나운 폐허에 가려진 옛 거리를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 또한 소설만의 특권이다. 그리하여 난 결코 소설이 그려내는
몽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lt;/p&gt;&lt;p&gt;/무심코 열어놓은 창문 틈으로 가을 냄새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홉 해 전 마르케즈의 납치일기를 품 안에 넣고 길을 걷던 순간에 느꼈던 냄새와 놀랄 만큼 똑같은 것이었다.&lt;/p&gt;&lt;p&gt;/내
나이 스물의 유행은 말 그대로 &#039;stylish&#039;한 일본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전공서적 사이로 보이는 가벼운 소설 한
두 권이 그 사람의 취향을 설명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큰누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를 기준으로 단체로 스무 살에 접어든
우리 집 같은 경우에는 이 무렵에는 이미 불씨조차 남지 않은 철 지난 유행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소설 특유의 재미에 싫증이 난
다음이었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Only the things!</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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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4 Oct 2008 23:47: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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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퍼스트 폴리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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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농담으로도 가당찮은 이야기지만 만약 누군가 나에게 두 권의 책을 훔쳐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한다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셰익스피어의 폴리오와 켐스콧판 초서의 캔터베리이야기를 고를 것이 분명하다. 시장성과 환금성, 가치저장과 희소성 측면에서 이보다 나은 대안을 찾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이 두 권보다 진기하고 소중한 책들도 많지만 온전하게 소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면서 투자가치를 지닌 책은 이 두 권이 유일하다.&lt;br&gt;&lt;/p&gt;&lt;p&gt;그렇기에 영문학에 발 좀 적셨다는 사람들 모두는 벼룩시장에서 단돈 50펜스에 이 두 권을 거저 줍기를 꿈꾸고, 에코 같은 양반은 그의 마지막 소설에서 조부의 서재를 정리하다가 폴리오를 발견한다는 다소 뜬금 없는 희망을 나열한 것이 아닐까?&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113658078.jpg&quot; alt=&quot;Interred with bones&quot; height=&quot;351&quot; width=&quot;240&quot; /&gt;&lt;/div&gt;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책은 이런 셰익스피어의 폴리오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제목 하나만으로 나 같은 인간의 구매욕구에 불을 지르기에는 충분하지만 폴리오는 이 소설에서 소품에 지나지 않는다. the Folio와&amp;nbsp; folio를 구분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폴리오가 이 소설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형편없다.&lt;br&gt;&lt;/p&gt;&lt;p&gt;또 하나 구름잡는이야기를 더하자면 푸코의 추를 기점으로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성당기사단이나 프리메이슨 같은 비밀 결사가 팩트 소설의 주요 소재였다면 근래 영미권의 팩트 소설의 주요 소재는 셰익스피어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물론 스페인어권이나 독일어권에서 줄기차게 나오는 결사형 팩트 소설과 의도적인 차별화를 노린 것이 사실이나 그리 얄밉지는 않은 것이 독자로서의 내 심정이다. 문학사에서 이보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 또 누가 있을까? 절대 풀리지 않을 진실이란 이야기꾼에게 얼마나 매력적인 작업 환경인가?&lt;br&gt;&lt;/p&gt;&lt;p&gt;서론이 길었지만 이 소설 꽤 괜찮다. 문학적 가치나 아름다움을 지닌 소설은 아니지만 대학교양 이상으로 셰익스피어를 공부했다면 저자가 지닌 박식함에 놀랄 것이 분명하고, 손에 잡힐 듯한 생생한 현장감에,  글로브 극장과 와이즈너 도서관에 불을 지르는 대범한 상상력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지난 몇 년 사이 출간된 셰익스피어 관련 소설들의 완전판이라고 부르기에 추호도 손색이 없다. 유행처럼 번지는 미발견 원고에 대한 해석도 참신하고, 누가 진짜 셰익스피어인가에 대한 진실의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도 유쾌하다. 추리소설로서의 플롯은 아쉽지만 셰익스피어를 주제로 이보다 근사하게 소설 한 편을 엮어내기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amp;lt;카르데니오&amp;gt;도 좋지만 &amp;lt;Love&#039;s labour&#039;s won&amp;gt;이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서운함이 좀 남긴 해도 말이다.&lt;br&gt;&lt;/p&gt;&lt;p&gt;하지만, 이 책의 마케팅과 제목 선정은 정말 최악이다. 분권은 용서할 수 있어도 『Interred with bones 』란 원제를 무시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출판사의 횡포다. 그 덕에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도 영향을 받았고, 무엇보다 소설 자체가 공항소설처럼 누추해졌다. 제목에 담긴 아이러니가 인물과 사건에 연결되면서 독자에게 전달하는 묵언의 메세지는 반짝거리는 표지와 잔뜩 기운 조잡한 말장난 사이로 영원히 사라져 버렸다. &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Interred with bones</category>
			<category>Jennifer Lee Carrell</category>
			<category>제니퍼 리 카렐</category>
			<category>퍼스트 폴리오</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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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3 Oct 2008 07:27:2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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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연기로 그린 초상</title>
			<link>http://hiscave.net/578</link>
			<description>&lt;p&gt;낡은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그것이 갓 인쇄된 것일지라도 오래되어 눅은 종이냄새를 맡게 된다. 사실 환각처럼 머리를 맴도는
이 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점이다.&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04818873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91&quot; width=&quot;200&quot; /&gt;&lt;/div&gt;빌 벨린저의 소설에는 레이몬드 챈들러가 창조해낸 필립 말로우 같은 캐릭터가 없다. 무의미한 가정이긴 하지만 빌 벨린저의 소설에 필립 말로우 같은 시대의 아이콘이 존재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해보는 일은 독자로서는 꽤 매력적인 체험이다. 말로우 같은 캐릭터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쉽게 소설에 몰입되지 않았을까? 섬세한 배경묘사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낯선 시대 낯선 거리를 걷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돌이켜 보면 빌 벨린저에게 필립 말로우는 어울리지 않는다. 벨린저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평범의 범주에 속한 이름 없는 사내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에게 필립 말로우 같은 전형성과 입체성이 동시에 부여된다면 벨린저의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안개 낀 모호함은 사라지고 우리는 흔한 누아르 한 편을 더 얻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lt;br&gt;&lt;/p&gt;&lt;p&gt;『연기로 만든 초상』은 한 여자의 변신을 그린 연대기이자 한 남자의 추적을 그린 서스펜스 물이다. 사실 병렬 구성을 지닌 이 소설에서는 어느 쪽에 마음을 쏟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시카고의 이민자 가정에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비록 허무한 것일지라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다른 삶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여정과 어리석음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lt;br&gt;&lt;/p&gt;&lt;p&gt;세상에는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나누어질 수 없는 미묘한 경계의 소설들이 있다. 빼어남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에 대한 절망적인 탐식을 충족시켜주는 소설들이 바로 이런 소설들이다. 빌 벨린저의 소설은 이 영역에 속한다. 고전으로 살아남거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리라 예상하긴 어렵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쫓아 소설을 섭렵하는 바보들에게는 그가 묘사한 삶과 배경만으로도 눈여겨볼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Bill S. Ballinger</category>
			<category>Portrait in Smoke</category>
			<category>빌 벨린저</category>
			<category>연기로 그린 초상</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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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Wed, 22 Oct 2008 07:25:1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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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예고된 죽음의 연대기</title>
			<link>http://hiscave.net/577</link>
			<description>&lt;p&gt;무라카미 하루키의 &#039;100퍼센트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039;를 익히 아는 친구들에게 난 100퍼센트라는 개념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하루키의 100퍼센트의 여자아이만큼 공감을 얻은 적은 한 번도 없으며, 되려 길고 구차하며 초라한 오욕의 기록에 새로운 한 획을 더할 뿐이었다.&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204127444.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81&quot; width=&quot;265&quot; /&gt;&lt;/div&gt;하지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의 이 소설에는 꼭 &#039;100퍼센트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만나는 기분&#039;이란 표현을 써줘야 한다. 그 외의 어떤 표현도 이 소설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고 초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만약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뒷머리에 전달되는 아찔한 멍함 따위의 표현을 이 소설에 쓴다면 그것을 이 책은 욕되게 하는 것일 뿐더러 내 삶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lt;br&gt;&lt;/p&gt;&lt;p&gt;『예고된 죽음의 연대기』는 오랫동안 사람의 뇌리에 남을 화려한 결혼식 다음 날  아침 처참하게 살해된 한 남자의 운명을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극중 화자인 나의 해석을 통해 재구성한 소설이다. 그렇지만, 얇은 책장과 단순한 줄거리임에도 이 소설의 느낌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걸출한 문학적 재능을 선사 받은 사람들만이 투사해낼 수 있는 삶의 정수를 독자로서 느끼는 것과 표현하는 일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lt;br&gt;&lt;/p&gt;&lt;p&gt;비련의 주인공이 잠에서 깨어 살해되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그가 걷고 만난 사람들을 추적하며 마르케즈는 수많은 여러 우연이 만들어 낸 살인사건을 조명한다. 동시에 독자는 카브리해의 작은 항구 마을과 그 주민들의 삶을 내 이웃의 삶처럼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눈앞에 영사기가 돌아가는 것처럼 우리는 주변인물들의 나래이션을 듣고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한 남자의 최후와 그 뒷이야기들을 바라보며 한편으로는 잔인하기 그지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삶의 참모습을 깨닫게 된다. &lt;br&gt;&lt;/p&gt;&lt;p&gt;마르케즈가 『납치일기』에 보여주었던 르뽀르타쥐에도 충분히 감탄했던 나로서는『예고된 죽음의 연대기』에 더 남길 말이 없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과 『백 년 동안의 고독』을 능가하는 숨겨진 보물이라는 부연 아닌 부연이 내가 이 책에 더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 아닐까 싶다.&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Chronicle of a Death Foretold</category>
			<category>Crónica de una muerte anunciada</category>
			<category>Gabriel García Márquez</category>
			<category>Vita sine libris mors est</category>
			<category>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즈</category>
			<category>예고된 죽음의 연대기</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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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0 Oct 2008 10:13:53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장미의 미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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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362471748.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141&quot; width=&quot;100&quot; /&gt;&lt;/div&gt;지난 여름의 실수, 혹은 만행. 그런데 의외로 이 소설의 웹페이지는 매우 충실하다. 이 소설에 대하여 문장을 남기는 것 자체가 낭비이긴 해도...&lt;br&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The Rose Labyrinth</category>
			<category>the worst book I have ever read</category>
			<category>Titania Hardie</category>
			<category>장미의 미궁</category>
			<category>티타니아 하디</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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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9 Oct 2008 22:20: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그날 밤의 거짓말</title>
			<link>http://hiscave.net/575</link>
			<description>&lt;p&gt;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줄어드는 책장에 아쉬움이 앞선다. 그리하여 종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를 따라잡길 잠시 멈추고 차를 우려낸다든지, 산책을 한다든지 따위로 유예를 연장하고 만다. 더욱이 이런 소설은 풋사랑의 내음이 밴 연애편지를 읽듯 한 줄 한 줄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시처럼 아름답고, 작은 계류처럼 섬세하게 흐르는 문장을 음미하려면 말이다. 사실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을 평범한 추리소설처럼 플롯과 반전을 중심으로 읽는 것은 바보들이나 할 짓이다. 경험 많은 독자라면 작가의 의도를 쉬이 짐작할 것이 분명하고 반전에 깜짝 놀라기보다는 게임에 참가한 죄수들이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 뒤섞인 진실과 거짓이 만들어 내는 정체성의 혼란과 욕망. 두려움에 공감하며 젖어오는 마음을 추스르러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073150401.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47&quot; width=&quot;225&quot; /&gt;&lt;/div&gt;하지만, 나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039;데카메론&#039;이란 표현의 마수에서 벗어나긴 어렵다. 대개의 사람들은 구성의 유사성과 본문에 언급된 &#039;하룻밤의 데카메론&#039;이란 표현 때문에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을 중심으로 이 책을 설명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구성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각의 이야기들이 지니는 &#039;데카메론적 풍미&#039;다. 십여 년 전 『데카메론』을 읽던 소년이 접한 다채로운 삶을 소설 속 이야기들은 한층 위트 있게 겹쳐 놓는다. 묵직한 장정을 자랑하는 책 두 권을 가득 채운 이야기를 단 네 편의 이야기로 함축해내는 재주와는 별개로 말이다.&lt;/p&gt;
&lt;p&gt;『그날 밤의 거짓말』의 매력은 사형수들에 대한 연민에 있다. 사형을 하룻밤 앞둔 죄수들의 고백에는 속임수라는 당과가 발라져 있지만 진실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되려 거짓의 이면에 놓인 것은 죽음을 받아들인 이들이 삶을 정리하며 내뱉은 회고다. 젊은 &#039;학생&#039;은 『지붕 위의 기병』 같은 사랑을 고백하며 삶을 갈구하고, 남작은 태 속에서 시작된 자기 복제의 저주를. 병사는 파괴적이고 부평초 같은 삶을, 시인은 시인이 꿈꿀 법한 자극적인 사랑을 노래하며 사형대로 걸어간다. 죽음이라는 사랑과 희망도 절망도 모두 무로 돌려버리는 최후의 종언과 입맞춤하려고 말이다.&lt;/p&gt;
&lt;p&gt;죽음과 직면할 때 사람들은 가장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낸다고 한다. 부팔리노의 『그날 밤의 거짓말』은 이런 명제를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삶을 꿈꾸지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네 명의 사형수들이 겪는 하룻밤의 게임을 통해서 말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Gesualdo Bufalino</category>
			<category>Le mezogne della notte</category>
			<category>Vita sine libris mors est</category>
			<category>그날 밤의 거짓말</category>
			<category>제수알도 부팔리노</category>
			<author>(찬익)</author>
			<guid>http://hiscave.net/575</guid>
			<comments>http://hiscave.net/575#entry575comment</comments>
			<pubDate>Sat, 13 Sep 2008 17:04:40 +0900</pubDate>
		</item>
		<item>
			<title>박스 (the Box)</title>
			<link>http://hiscave.net/576</link>
			<description>&lt;p&gt;레베르떼가 쓴 『항해지도』의 주인공 코이는 떠들썩한 부두로 상징되는 낭만적인 항해시대와 컨테이너선으로 대표되는 현대적 항해시대의 접경에 있는 인물이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모험심 많은 선원들의 시대가 저물고, 전자 항법 장치에 의존해 항구와 항구 사이를 기계처럼 오가는 항해만 남은 시대. 코이는 결국 항해학교를 졸업하며 장만한 크로노미터를 아쉬움 속에 처분하고 만다. 항해 경험이라고는 고작 호수에서 오리 보트나 타봤을 근사한 블랙 수트 차림의 남자들이 순전히 멋으로 크로노미터를 왼팔에 올려놓는 이 시대에 말이다.&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358594150.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50&quot; width=&quot;238&quot; /&gt;&lt;/div&gt;사실 이런 서두는 컨테이너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가를 주제로 쓴 책에는 그리 어울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블랙웰즈에서 처음 이 책을 발견하기 전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컨테이너선에 대한 심상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탈리아와 아일랜드 이민자로 대표되는 부두노동자들의 뉴욕 이야기도 한 몫 단단히 했지만 말이다.&lt;/p&gt;
&lt;p&gt;마크 로빈슨이 그려낸 모습은 권양기와 근육의 힘을 이용해 이루어지는 느린 운송이 컨테이너를 활용한 해륙연계운송을 통해 세계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보여준다. 저자는 규격화된 알루미늄 혹은 강철 박스들이 육상 트레이너를 위시한 운송시스템과 연결되면서 상품이 얼마나 빠르고 규칙적으로 세계를 여행하게 되었는지를 시랜드의 모체가 된 맥린사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 저자는 하나하나의 기술 혹은 장비는 개별적으로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것들을 통합해낸 맥린의 비전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은 조금은 달랐을지 모른다고 조심스레 주장하고 있다.&lt;/p&gt;
&lt;p&gt;사실 현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컨테이너 없는 세상을 그리리란 쉽지 않다. 하지만, 12미터짜리 상자가 어떤 위대한 발명보다도 큰 영향을 우리에게 미쳤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일은 드물다. 12미터 상자 덕분에 우리나라는 국제무역의 세계에 편입되어 경제개발에 성공할 수 있었고,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일주일간의 트레이너 파업만으로도 국제수지의 성적표를 새로 쓸 수 있으며 이는 채권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lt;/p&gt;
&lt;p&gt;언제인가 이제는 고작 하루 한 번 밖에 기차가 운행되지 않는 낡은 역사에 앉아 공터에 가득 쌓인 컨테이너들을 보며 이들이 다녔을 여행을 상상해 본이 있다. 철판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한 낡은 고철 상자들이 담았던 상품과 희망들을 생각하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자니 까닭 없이 고작 3~4TEU의 화물을 위해 거친 바다와 싸우다 망자가 된 선원들과 과거의 명성을 잃어버린 부두가 만들어내는 음산한 적막감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마크 로빈슨이 묘사한 컨테이너 혁명이 만들어낸 효율적인 세계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이익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코이같은 선원들이, 말론 브랜도가 연기한 부두노동자들의 고된 삶이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채 자리 잡고 있음을 부정하기란 더욱 어렵다.&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Marc Levinson</category>
			<category>the Box</category>
			<category>더 박스</category>
			<category>마크 래빈슨</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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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Sep 2008 23:03: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여름나기(2008)</title>
			<link>http://hiscave.net/574</link>
			<description>&lt;P&gt;사나흘에 걸쳐 여남은 개씩 쌓이는 국적불명의 &amp;lt;걸린글&amp;gt;들을 지우는 일은 귀찮기보다 되려 반갑다. 몇 년 동안 한켠에 놓아만 두었던 글과 덧글을 살피며 이제는 아릿해진 추억의 한 조각을 잠시 음미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수수께끼 같고, 때로는 술주정 같은 언행들을 읽으며 몇 분쯤 행복에 취해보는 건 나쁘지 않다. 시간이 흐를수록 암호문 같은 모호한 표현들의 진의를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한다는 문제가 기다리고있긴 해도 말이다. 어쩌면 그때의 풋풋하기만 했던 그 설익은 절실함을 다신 꿈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이토록 반가운 마음인지도 모르겠다.&lt;BR&gt;&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342557341.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17&quot; width=&quot;225&quot; /&gt;&lt;/div&gt;돌이켜보면 순박하다 못해 어리석기 짝이 없지만 지금보다는 그 시절의 내가 더 멋진 사람이었던 것 같다. 진솔한 감정을 가졌고, 관대한 품성을 지니고자 노력했던 청년 대신 내 안에 자리잡은 것은 회의와 불신에 찬 음모가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믿는 지금의 난 꿈을 가졌던 맑은 표정의 그와 마주치기 두렵다.&lt;BR&gt;&lt;/P&gt;
&lt;P&gt;정채봉의 『느낌표를 찾아서』를 좋아하던 소년은 새로운 필기구를 살 때마다 친구에게, 혹은 마음속으로 흠모하던 이에게 편지를 쓰곤 했는데 지금의 난 그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싼 펜을 쓰지만 정작 그 펜으로 쓰는 문장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아니 더 이상 편지를 쓸 곳이 없다. 서늘한 표정의 피곤하기만 한 친구들에게 다정다감한 편지를 쓰는 일은 어쩐지 손해를 보는 것 같아 내키지 않고, 몇 자 적어보았자 몸이 멀어진 만큼 감정의 진폭과 주기조차 달라져 진부한 인사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음, 흠모하는 이은 말할 것도 없고.&lt;BR&gt;&lt;/P&gt;
&lt;P&gt;P.S.&lt;BR&gt;&lt;/P&gt;
&lt;P&gt;다가오는 생일에는 윤후명의 『둔황의 사랑』를 갖고 싶다 졸라봐야겠다. 그의 아름다운 문장을 다시 읽고 있노라면 단단해진 껍질이 스무 살 소년처럼 말랑말랑해질지도 모를테니까.&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Only the things!</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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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9 Aug 2008 00:31:51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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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피의 책</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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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가끔 나는 세상에는 수많은 개성만큼이나 다양한 공포에 대한 면역체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각기 다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쌓아가면서 공포에 대응하는 방식 역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제법 유명한 기차사고를 경험한 어머니로부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순간이 덧없이 짧다는 사실과 죽음에 이른 육체가 지니는 허망함이 내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도 이때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내게 있어 이런 경험과 배움은 공포에 대응하는 나만의 방식을 결정짓는 요건이었다. 내가 열다섯 무렵 목매달아 자살한 이의 주검을 목격한 이후 그런 죽음을 경멸하게 된 것처럼, 의지를 상실한 육체가 지니는 추함에 진저리를 치게 된 것처럼, 부서진 손가락 끝 마디에서 흘러나오는 내 피를 바라보면서 피 흘림이라는 말에 무감각해진 것처럼 말이다. &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15522886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62&quot; width=&quot;250&quot; /&gt;&lt;/div&gt;하지만, 오늘날은 살아가는 우리에게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확립된 공포란 개념은 한낱 사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우리 각자가 느끼는 공포에 대한 정의를 잊어버린 채 미디어가 주입한 공포를 소비하고, 여기에 전율한다. 사실 공포란 매우 개인적인 감정이다. 때로 우리는 집단 공포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매스 프로덕트가 가져다주는 천편일률적인 공포에 제작자의 의도대로 반응하기란 여의치 않다.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낸 공포에 그들의 의도대로 전율하지만 이 전율은 어딘가 엇박자가 난 밴드의 연주처럼 때로는 너무 밋밋하고 때로는 너무 과하다. 개인의 삶과 경험이 만들어낸 총화로서의 공포를 이해하는 방식을 몇몇 개인의 상상력으로 충족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몇몇 개인의 상상력은 잔혹함을 강조하거나, 초자연적인 존재의 불합리한 폭력에 빙점을 찍는 것으로 공포를 과장한다. 대신 낯섦이란 인류가 원시사회의 일원이었을 때부터 지녀온 공포의 원천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과연 매스 프로덕트가 만들어내고 해석한 천편일률적인 공포가 아니라 개개인이 지닌 공포에 관한 해석에 기반을 둔 공포를 우리는 만날 수 있을까?&lt;br&gt;&lt;/p&gt;&lt;p&gt;물론 여기에도 몇 가지 예외는 있다. 대개 이런 예외들은 저급한 호러 문화와는 구분되는 보기 드문 이정표로 기능 한다. 그다지 잔인하지 않은 &amp;lt;프라이트너&amp;gt;가 무엇보다 잔혹하고, 무서운 영화로 꼽히는 것처럼 몇 가지 예외작들은 공포에 반응하는 우리의 양식을 탐구하고 한계를 개척한다.&lt;br&gt;&lt;/p&gt;&lt;p&gt;클라이브 바커의 『피의 책』은 이십 년이란 세월이 지녔음에도 이런 예외작이 되기에 충분하다. 『피의 책』에서 바커는 공포의 한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통상의 상상력을 벗어난 낯설음이란 공포의 원천을 이보다 더 몽환적이고 기이하게 표현하기란 여의치 않다. 그의 공포는 통상의 잔혹함을 넘어선 공포가 아름다울 수 있는 경지에 인접해 있다. 피와 찢긴 육체로 얼룩진 시각에 의존하는 묘사 따위는 촉각과 후각을 망라한 그의 공감각적 묘사의 탁월함 앞에서 기세를 잃는다. &lt;br&gt;&lt;/p&gt;&lt;p&gt;게다가 『피의 책』은 대부분의 매스 프로덕트 생산자들이  간과한 공포와 매혹의 관계에 주목한다. 사실 공포란 동전의 한 면에 불과하다. 동전의 다른 면에 새겨진 것은 바로 매혹이란 얼굴이다. 공포와 매혹이 제대로 결합하였을 때에만 공포의 소비자들은 공포에 전율하면서도 여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공포가 아름다울 수 있는 때는 오직 무서움과 잔혹함이 헤어날 수 없는 수렁과 같은 매혹과 잘 결합하여 있을 때 뿐이다. 그리고 피의 책은 이런 공포와 매혹의 결합을 그 어떤 시도보다 더 능숙하고 꼼꼼하게 책장 구석구석에서 실현하고 있다.&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Books of blood</category>
			<category>Clive Barker</category>
			<category>클라이브 바커</category>
			<category>피의 책</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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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7 Aug 2008 10:40:51 +0900</pubDate>
		</item>
		<item>
			<title>모던타임스</title>
			<link>http://hiscave.net/572</link>
			<description>&lt;P&gt;과거를 바라보는 내 시각에는 일관성이 없었다. 때로는 구조주의와 결정론에 따라, 때로는 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역사에 미친 영향력을 중심으로 과거를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영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살아가야만 하는 미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그려내는 절망이란 드라마의 장엄함에 매료되기도 했다. 이름 높은 타인의 시선에 쉽게 끌렸고, 실체적 진실보다 미사여구로 포장된 사변적 논의의 세계에 몰입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더 이상 이른바 정치철학이라 부를 만한 사상이 만들어 낸 정의에 입각한 해석에 끌리지 않는다. &lt;BR&gt;&lt;/P&gt;
&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271267948.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61&quot; width=&quot;250&quot; /&gt;&lt;/div&gt;정치철학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정의와 역사란 인과의 거울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정의는 사뭇 다르다. 정치철학이 부르짖는 정의의 대부분은 공허한 문구 안에 담긴 프로파간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이어지다 보면 말과 문자로 이루어진 바벨탑에 불과한 이른바 &#039;진지한 논의&#039;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모던타임스』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요란한 프로파간다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역사적 진실을 여과 없이 펼쳐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와 거짓 믿음이란 의심스런 안개 저편에 보이는 진실은 소름끼치도록 잔혹하며 어리석은 인간군상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lt;BR&gt;&lt;/P&gt;
&lt;P&gt;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모던타임스』를 아우를 수 있는 서평을 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출판사의 홍보문구나 역자의 후기를 앵무새처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아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039;격동의 20세기&#039;란 말처럼 지난 세기가 만들어 낸 생각들과 사건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현재진행형이다.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이란 기껏해야 이렇게 변죽을 울리는 정도에 불과하다.&lt;BR&gt;&lt;/P&gt;
&lt;P&gt;좌파 저널리스트에서 보수주의 역사가로 변신한 폴 존슨은 그가 지닌 냉소적 태도 때문에 일급 역사가임에도 대중의 사랑을 받는 작가는 아니다. 그가 지적하는 진실이 때로는 불편하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폴 존슨은 말랑말랑하고 따듯한 시선으로 솜사탕 같은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는다. 대신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폭력과 광기, 개인의 권력욕, 특정 집단의 이기주의와 인간의 허약한 지성과 정신이 만들어 낸 파괴와 살육의 처참한 역사다. 더욱이 그는 빈틈없는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실체적 진실에 대한 끝없는 추적과 실존하는 힘에 대한 인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사고체계 안에 언어가 만들어내는 환상과 지식인들의 공론이 설 자리는 없다. 그렇기에 『모던타임스』에 담긴 사건들은 우리가 부정하고자 노력하는 20세기의 결함이며 사람들이 핏대를 세우고 논쟁하는 정의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돌이켜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lt;BR&gt;&lt;/P&gt;
&lt;P&gt;물론 폴 존슨도 완벽하게 탈정치사상적인 것은 아니다. 그는 개인주의와 자유의지에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좌파의 견해에 따르면 보수반동이라 부를만한 사항에 대해서 가족주의가 전체주의에 대한 해법이며, 보수반동을 통해 획득한 성과가 공론에 그친 이상주의 보다 더욱 실질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안정을 선사했음을 설파한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핵심은 지식인들과 직업정치가들, 사회공학자들이 만들어낸 유토피아를 가장한 디스토피아에 희생된 사람들에 위한 우울한 조곡이며, 상대주의적 세계가 만들어 낸 불합리와 불의에 쉽게 타협하고 무너지는 인간 본성의 나약함에 대한 경종이다. &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Modern Times</category>
			<category>Paul Johnson</category>
			<category>모던타임스</category>
			<category>폴 존슨</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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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11 Aug 2008 08:32: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치명적 실수</title>
			<link>http://hiscave.net/570</link>
			<description>&lt;p&gt;무엇이 좋은 추리소설의 기준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십인십색일 것이 틀림없다. 혹자는 추리의 공정성을, 다른 이는 속임수의
독창성을 어떤 이들은 추리의 난해함을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꼽는다. 여기에 문학적 완성도를 덧붙이는 이들도 있고, 캐릭터의
매력을 첨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복잡한 각양각색의 기준들보다 중요한 것은 오랜 경험이 말해주는 감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록 객관적이지는 않더라도 말이다.&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021359276.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318&quot; width=&quot;225&quot; /&gt;&lt;/div&gt;사실 『치명적 실수』는 추리의 공정성, 추리의 난해함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 추리 과정에서 제공받는 단서가 추리에 충분하다고 보기에는 보편성이 떨어지고, 범행에 사용된 총기가 리볼버가 아닌 피스톨일 경우에만 작가가 사용한 트릭이 온전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소설은 추리소설 애호가들에게는 조금 불쾌한 면도 없지 않다. 추리소설에서 사용되는 전형적인 미끼 캐릭터가 진짜 범인인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으로 볼 때 아무리 완벽한 동기를 가진 캐릭터라도 너무 노골적으로 암시를 뿌린다면 반전을 위한 미끼일 가능성이 큰데 이 소설에서는 반전이 없다는 사실이 되려 반전인 셈이다.&lt;br&gt;&lt;/p&gt;&lt;p&gt;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소설은 충분히 읽어볼 만한 아름다움이 있다. 반유대주의를 내세웠던 칼 뤼거가 빈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회공학자이자 직업정치인 가운데 하나인 히틀러에게 영향을 미쳤던 그 시대를, 겉으로는 평온하고 아름답지만 이미 정신은 병들대로 병든 벨 에포크의 빈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로 대표되는 새로운 빈의 지성과 전기치료에만 매달려 있는 그루거의 대비, 슈베르트와 베토벤이 남긴 문화적 유산과 말러, 클림트로 대표되는 전통을 터부시하는 새로운 성향의 예술가들. 그리고 다른 한편에는 영지주의와 무신론자들의 범람이 묘사되고, 절제 이면에는 문란한 성생활과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과 억압된 여성의 관계, 유곽으로 대표되는 퇴폐적 성향의 빈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lt;br&gt;&lt;/p&gt;&lt;p&gt;『살인의 해석』을 읽으면서 열광했던 이유는 근대와 현대의 여명의 혼란기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치명적 실수』역시 다르지 않다.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문화가 지닌 저력을 여실히 보여줬던 시대의 이면에서는 퇴폐와 어리석음, 용서할 수 없는 반문명이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추리와 심리 분석이라는 형태를 빌려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Frank Tallis</category>
			<category>Mortal mischief</category>
			<category>닥터 리버만 파일</category>
			<category>치명적 실수</category>
			<category>프랭크 탤리스</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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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0 Aug 2008 08:21:3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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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em>
			<title>웨스팅 게임</title>
			<link>http://hiscave.net/571</link>
			<description>&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256690084.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220&quot; width=&quot;150&quot; /&gt;&lt;/div&gt;열 살배기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소설이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반쯤 본 내 나이 또래의 청년에게 공감을 주기란 어렵다. 내
나이 또래의 청년이 원하는 추리소설이란 소름 돋는 살인과 악마적인 사고의 전환을 통해 인간의 악랄한 본성을 엿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등장인물을 보면서 스스로의 선함에 뿌듯함을 느껴보는 과정 역시 필수다. 하지만, 어린 시절 받은
추리소설에 대한 조기교육으로 말미암아 속임수와 복선이 복잡함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 선량하고, 어수룩한 소설에서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것을 상상하는 바람에 되려 헛다리를 짚고 말았다.&lt;br&gt;&lt;/p&gt;&lt;p&gt;사실 이 소설은
추리가 필요 없는 소설이다. 중반쯤에 작가가 음모의 주재자의 입을 빌려 해답을 넌지시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나로서는 이렇게 간단하고 단순한 트릭을 믿을 수 없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머릿속은 내가 쓰고 지운 소름끼치는
동기와 음모들의 쓰레기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동심과는 거리가 먼 인간이 되었으며, 더럽고
추악한 가능성을 그 무엇보다 먼저 떠올리는 사람으로 자랐음을 깨닫게 되었다.&lt;br&gt;&lt;/p&gt;&lt;p&gt;하지만, 이런 내적 교훈을 제외하면 어른이 읽기에는 지극히 선량하고 사랑스러운 추리소설임이 분명하다. 코넌 도일과 애거서 크리스티 사이를 범주하는 어린 조카들에게 선물할 만한 가벼움과 재치를 지닌 책. &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Ellen Raskin</category>
			<category>the Westing game</category>
			<category>앨런 러스킨</category>
			<category>웨스팅 게임</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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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s>http://hiscave.net/571#entry571comment</comments>
			<pubDate>Sun, 03 Aug 2008 08:34:00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일리움</title>
			<link>http://hiscave.net/569</link>
			<description>&lt;p&gt;내가 누린 행운 가운데 하나는 연령별, 수준별, 학년별로 추천된 책 무더기를 아이에게 떠안기는 오늘날의 무모한 젊은 부모들과
달리 읽을 자유를 인정해주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 동안 누구도 내게 무엇을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다. 무언가를 읽는 대신 공부도 좀 하라는 잔소리가 나를 뒤따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의 책장에서 빼어 든 70년대
수필집의 맛깔스러움, 누이들이 빌려온 추리소설의 짜릿함, 먼 시대 멀고 먼 나라의 이야기들. 심장을 조이는 비통함과 애절함이
담긴 대화들. 뭐 그런 것들을 벗 삼아 자랄 수 있었던 것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삶의 가장 커다란 선물이 아니었나 싶다.&lt;br&gt;&lt;/p&gt;&lt;p&gt;사실 사이언스-픽션에 서평으로 이런 서두는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굳이 언급해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이런 행운이 없었다면 이 소설을 이해하는 정도는, 이 소설이 얼마나 대단한 소설인지 깨닫는 일은 그 궤를 달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부모나, 선생이 권해주는 편집본, 축약본에 길들여 자랐다면 널리 알려진 캐릭터를 비트는 변용의 즐거움과 작가가 어떤 시선에 영향을 받았고, 또 어떤 식으로 주제를 변형시켰는지 알아가는 즐거움을 찾지 못했을 것이기 분명하다.&lt;br&gt;&lt;/p&gt;&lt;p&gt;『일리움』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정강이받이를 차고 물푸레나무창으로 상대의 창자를 꺼내는 아카에아 시대의 해상귀족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묘사되는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이해는 물론이고, 캐릭터에 대한 명확한 인식 또한 필수다. 거기에 더하여 셰익스피어 주요작과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어볼 필요성이 존재한다. 대개의 사람들이 지닌 편견과 다르게 사이언스 픽션을 즐기는 첩경은 고전으로 알려진 인류의 보고를 보다
넓고 깊게 이해하는 일이다. 사이언스 픽션 자체가 다른 어떤 장르보다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고전의 메타포와 캐릭터를 인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lt;br&gt;&lt;/p&gt;&lt;p&gt;『일리움』은 크게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모라벡으로 불리는 목성의
기계유기체와 미래의 지구에서 살고 있는 현존 인류, 그리고 트로이 전쟁 시대의 일리움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일리움에서 전쟁을 관찰하는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흙이 되어버린 고전학자들을 복원한 스콜릭으로 불리는
학자들이고 이들은 신들의 강요 아래 트로이 전쟁을 지켜본다. 하지만, 이들은 신들의 변덕에 희생되는
가련한 노예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미래의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신들은 아카에아 시대에서 절대자로서 군림한다.
한편, 목성의 모라벡들은 화성이 붕괴될지도 모를 정도로 빈번하게 일어나는 양자이동 현상의 원인을 규명하려고 탐사대를 파견한다. 이
탐사대 안에는 소네트와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모라벡 만무트와 프루스트 애호가인 이오의 오르푸가 타고 있다. 한편, 같은 시기
지구에서는 문자와 문명을 통째로 잃어버린 현존 인류 중 일부가 사라진 후기-인류의 비밀을 찾아 모험을 시작한다.&lt;br&gt;&lt;/p&gt;&lt;p&gt;일견
복잡한 이야기지만 각각의 이야기 축은 다른 이야기 축에서 언급되지만 설명되지 않는 간격을 메우며 이야기의 흐름을 더욱 밀접하게
만들고,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는 통로를 독자 앞에 드러낸다.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난 점은 사건 전개와 더불어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 불릴 수 있는 신화가, 과거와 미래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꼬이면서 새로운 역사가 진행되는 점에 있다. 『일리움』은 『일리아드』면서 더 이상 『일리아드』가
아니다. 호켄베리로 불리는 과거를 잃어버린 중년의 스콜릭에 의하여 트로이 전쟁의 흐름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뒤틀리고, 목성의
탐사대는 화성에서 신들의 거처인 올림포스산과 아카에아 시대와 연결된 통로를 발견한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보다 더 강인하며,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로스의 극중 성격은 셰익스피어의 『트러일러스와 크레시다』에 묘사된 캐릭터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리움』, 『올림푸스』로
연결되는 이 연작 시리즈의 전반부인 이 소설에서 아카에아-트로이 연합군은 호켄베리의 계략에 의해 마침내 신들을 향한 전쟁을
시작한다. 이 얼마나 멋진 전개인가? 신들에게 지급받은 변신도구를 이용해 파리스로 변신해 닥터 파우스트가 누린 행운에 동참한
호켄베리는 또 얼마나 독특한 캐릭터인가? 한 편에서는 신이지만 가련한 배덕자이자 망명자에 불과한 이들은 또 얼마나 가련한
존재들인가?&lt;br&gt;&lt;/p&gt;&lt;p&gt;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이언스 픽션을 헐리우드 영화로 접한다. 문학의 한 갈래로서 이 장르가 지닌
강점을 문장을 통해 접한다기보다는 타인의 해석에 의해 영상으로 옮겨진 파편만을 보고 판단하는 셈이다. 그렇기에 이 장르가 지닌
풍부한 문학적 함의와 철학적 고뇌, 정치적 선전에 장님이 되어버린다. 아이들을 위한 허황한 이야기, 영화를 만들기 위한
장작더미로 인식되는 이 장르에 대한 평가는 그렇기에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외곬으로 이 장르에만 열광하는 일들과 애써 이 장르를 무시하는 사람들. 그렇기에 이 장르의 소설을 읽으려면 제목을 가리기 위한 책커버가 필요한지도 모른다.&lt;br&gt;&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Dan Simons</category>
			<category>Ilium</category>
			<category>댄 시몬즈</category>
			<category>일리움</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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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15 Jul 2008 07:44: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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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Banality of Evil</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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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 누구에게나 요즘은 &#039;빛이 오고 난 뒤에도 우리가 한 번 더 이토록 캄캄한 어둠 속에 살아야만 했다는
사실을 후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039;란 인용문이 딱 알맞은 상황이다. 그가 어떤 정치적 입장이든 간에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짙은
안개 속에 놓여 있다. 무엇이 옳고, 잘못되었는지 설명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어느 설명을 들어도 속이 개운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처럼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난제 앞에서 모두가 어두운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다.&lt;/p&gt;&lt;p&gt;사실 요즘의
상황을 통해 깨닫게 되는 사실은 한국사회가 정말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개인으로 구성된 사회라는 사실이다. 그토록 다양한
입장과 생각이 수면 아래 숨겨져 있었다는 사실은 놀라움 그 자체다. 그리고 누구나 정의와 정당함을 주장하지만 그 이면에 담긴
것은 적당한 순도의 진실과 자기기만 혹은 자가당착에 불과한 불순물이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요즘의 문제는 19세기 프랑스의
드레퓌스 사건이나 다를 바가 없다.&lt;/p&gt;&lt;p&gt;폴 존슨은 모던 타임즈에서 양차 세계 대전 사이의 프랑스 사회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정치적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사회라고 평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 논의가 불가능했던 이유를 각자가 다른 사유체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같은 사실을 보고도 서로 다른 사유체계 안에서는 그 의미가 달랐기에 원활히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은 오늘날의 우리나 같았다. 개개인이 지닌 태도는 신념을 결정하고 그 신념은 사유체계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유체계는 정치적 의사결정에 사용되는 가장 중요한 도구다. 문제가 수면으로 부상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모른 척할 수
있었던 이 사실을 더는 모른 척 넘어갈 수 없다. 요즘을 통해 우리는 각자가 지니고 있었으나 의식하지 못했던 정치적
태도를 각성했고 나와 같은 태도를 지닌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다른 편으로&amp;nbsp; 편 가름을 냈기 때문이다.&lt;/p&gt;&lt;p&gt;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은 누구든 그가 감내할 수 없다고 믿는 야만적 폭력 앞에 노출되어 있고, 이웃과 친구의 낯선 표정과 마주하고 있다. 또
애써 외면했던 불편한 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다. 전투가 벌어지는 내전 상황은 아니지만 우리가 입은 상처는 내전이나 다름
없으며 이 상처는 영원히 치유할 수 없다. 우리가 적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과거 한나 아렌트가 표현했던
&#039;banality of evil&#039; 밖에 없다.&lt;/p&gt;&lt;p&gt;결국, 소소한 결론은 이렇다. 일단 다양한 정치적 인종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앞으로 서로 다른 정치적 인종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적용되는 기준은 정치적 공정성(political
correctness)에 따른다. political racism에 해당할 수 있는 발언은 삼간다. 설득하거나, 설득당하거나,
설명하거나, 논쟁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멋진 상대주의인가? 또, 이 얼마나 고결한 evil of banality인가? 우리
모두 이제는 &#039;웃는 남자&#039;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이 세상은 또 얼마나 우아한가?&lt;/p&gt;</description>
			<category>Historical</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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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30 Jun 2008 22:14:00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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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비밀의 역사 핑크 카네이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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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오랫동안 난 로맨스 소설에 일가견이 있다고 자부해 왔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단순한 치기에 불과하지만 그 시절 겁 없이 손 댄 수 십 권의 책무더기가 준 교훈을 마음으로나 몸으로나 허투루 잊지 않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겹도록 반복되는 플롯과 묘사, 판에 박힌 듯 똑같은 등장인
물 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곤 권태 밖에 없다는 것이 그 당시 내가 이 장르를 빠져나오며 내린 결론이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고해져 하나의 의지가 되었다. 혹자가 제인 오스틴 역시 조지언 시대의 로맨스 소설 작가가 아니겠느냐고 변명을
늘어놓을 때면 로맨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키스라든지, 애무를 인용하며 짓궂게 사람들을 놀려대던 편벽하고 못된 습관 역시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lt;br&gt;&lt;/p&gt;&lt;p&gt;&lt;div class=&quot;imageblock left&quot; style=&quot;float: left; margin-right: 10px;&quot;&gt;&lt;img src=&quot;http://hiscave.net/attach/1/1365080181.jpg&quot; alt=&quot;사용자 삽입 이미지&quot; height=&quot;412&quot; width=&quot;275&quot; /&gt;&lt;/div&gt;하지만, 관능이 무엇인지 이미 오래전에 알아버린 스물여덟의 청년이 되어서 다시 읽은 로맨스 소설은 조금 새로운 느낌이다. 올바르게 키스하는 방법마저 가물거릴 만큼 긴 시간 지속된 비자발적 독신증후군의 병폐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어보기도 하나 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금단의 열매를 맛본 이전과 이후가 같을 수 없는 것처럼 로맨스 소설 속의 묘사 역시 어린
소년이던 때와 전혀 다른 감각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오래전 로맨스 소설을 독파하던 친구가 나한테 던진 말처럼 참으로 &#039;뻐근한
느낌과 함께 사지가 노곤해지는&#039; 경험을 간만에 얻어 쓸 수 있었다. 입가에는 고양이처럼 만족스러운 웃음이 걸린 채 의자에 앉아 얼굴을 붉게 불든 스물여덟 청년의 모습은 참으로 대책이 없지만 말이다.&lt;br&gt;&lt;/p&gt;&lt;p&gt;사실
로맨스 소설에 대해 뒤바뀐 내 감상을 구구절절이 늘어놓는 이유는 이 소설이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스파이라는 포장을 뒤집어쓰고
있긴 해도 본질적으로는 로맨스 소설이기 때문이다. 첩자들이 벌이는 활극은 이 소설에서 부수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복잡하고,
정교하며 세련된 이언 플래밍식의 스파이를 발견하기란 불가능하지만 대신 사랑에 빠진 샐쭉한 청년 스파이가 하나 있다. 이중 스파이가 등장하지 않는 점이 흥미롭긴 하지만 그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청년 스파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시골 처녀를 아페리티프 삼아 음미하는 부분이다.&lt;br&gt;&lt;/p&gt;&lt;p&gt;『핑크 카네이션, 비밀의 역사』『검은 튤립 마스크』『에메럴드 링의 기만』『크림슨 로즈의 유혹』으로 이어지는 이 시리즈에서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을 설명하는 서장에 불과하다. 핑크 카네이션이란 스파이링이 형성된 시작에 초점을 맞추면서 앞으로 전개될 애정 전선의 서막을 살짝 들춘 정도가 이 소설에서 다룬 전부다. 하지만, 일견 유치해 보이는 제목만으로 이 소설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누군가가 프란체스코파의 수도사 같은 엄격한 눈빛과 결연하게 치켜든 턱으로 무관심을 가장해도 실상 그가 보는 것은 깊게 파진 앞섬 사이로 보이는 앙가슴이나 살품, 얇은 셔츠 사이로 보이는 르느와르의 &amp;lt;목욕하는 여인들&amp;gt;에서나 발견할 수 있을 만한 곧은 등, 혹은 한 팔에 감길 것 같은 세류요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나 여성미를 우아하게 그려내는 둔부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lt;/p&gt;</description>
			<category>Book</category>
			<category>Lauren Willig</category>
			<category>the secret history of the Pink Carnation</category>
			<category>로렌 윌릭</category>
			<category>비밀의 역사</category>
			<category>핑크 카네이션</category>
			<author>(찬익)</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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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12 Jun 2008 09:05: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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