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책?



You’re The Guns of August!
by Barbara Tuchman
Though you’re interested in war, what you really want to know is what
causes war. You’re out to expose imperialism, militarism, and nationalism for what they
really are. Nevertheless, you’re always living in the past and have a hard time dealing
with what’s going on today. You’re also far more focused on Europe than anywhere else in
the world. A fitting motto for you might be "Guns do kill, but so can
diplomats."


Take the Book Quiz
at the Blue Pyramid.

Brevior saltare cum deformibus mulieribus est vita

_길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뜬금없이 그녀가 전하기를 봄바람처럼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맑고 뽀얀 얼굴의 옛 연인이 아이를 가졌다고 한다. 그녀의 어설픈 친절이 밉살스러웠다. 그녀의 상냥한 마음이 내게는 풍문의 여신인 파마의 주름진 얼굴을, 유배지에서 고통받은 시인의 삶을 떠올리게 하였다는 것을 빼곤 사실 그녀의 잘못은 없다.

세상에는 좋은 소식이 분명한데도 모르고 넘어가는 편이 나은 소식도 있다. ‘잘 됐네’ 하고 대답하고 바보처럼 웃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이었을 줄이야. 차라리 주정뱅이처럼 소리치고, 착한 것을 빼고는 가진 것이 없는 자처럼 불쌍한 표정을 지을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먼 훗날 길에서 이 아이를 안은 그녀를 만나게 된다면 난 어떤 표정을 지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어느 사이에 ‘서른 즈음’에란 노래를 부르기에 어색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on the street where you live’를 콧노래 하며 걸었던 그 길은 도시개발에 지워졌고, 처음 아라비카 커피를 맛보았던 찻집은 볼썽사나운 음식점이 되었다. 단 하나 변하지 않고 남아있으리라 믿었던 나무 등걸도 지난여름 태풍에 몸쓸 정도로 상해버렸다. 어느새 소년이 청년으로, 소녀가 처녀가 될 만한 시간이 지났음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_인파에 시달리는 퇴근시간이 한가로운 퇴근길보다 좋은 유일한 이유는 핸드폰을 만지막거릴 공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사라졌다 믿었던 옛 버릇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되돌아왔다. 빡빡한 장문의 문자메세지를 작성했다가 이유 없이 지우기를 반복한다.

통화버튼을 눌렀다가 이내 연결종료버튼을 눌러버린다. 사람의 마음을 정직하게 전달할 방법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마음은 항상 조심스럽다.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도록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언제까지 마음을 여밀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불행은 나를 지나치지 않기에 풀린 여밈 사이로 보인 언저리만으로도 난 반 보 전진 일 보 후퇴의 행로를 반복하게 될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 삶은 또다시 책읽기를 좋아하고, 쉬이 술 한 잔을 비우자 청할 수 있으며, 홀로 있는 것이 자연스런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 될 것이 명백하다. 사실 그것도 나쁘지 않다. 밀린 책이 책장 가득 이고, 공부할 것이 쌓여 있으며, 배울 것이 많으니 이런 것들에 시간을 보내며 서른을 맞는 것도 좋지 않을까? 다시 쌓인 십 년을 비웃으며 서른을 맞이하는 끝에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는 요즘이다.

_나에게는 아주 가끔 ‘힘내’란 말을 건네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친구 하나가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삶의 고비마다 이 녀석에게 대가 없이 얻은 ‘힘내’란 말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오늘도 이 녀석에게 힘내란 말을 또 한 번 염치없이 요구해버렸다. 걱정스레 시작한 녀석과의 통화는 유쾌한 농담으로 끝났다. 이 녀석이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으면, 평생 좋은 친구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또 혼자 되뇌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나란 사람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참으로 무치한 사람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누이들이 이 시집에 열광했을 때 솔직히 난 저 시집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문구가 궁상스럽고 못나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의 난 아주 가끔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되뇌게 된다. 지금 알고 있는 냉혹한 진실을 알았더라면 내 삶을 더욱 사랑하지 않았을까? 누군가를 사랑하며 보냈던 시간을 나를 위해 쓰지 않았을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요즘의 난 과거의 태만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천금과도 바꾸지 않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치르는 대가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쓰고 불쾌하며, 음습한 뒷골목의 좌판에 놓여 주인을 기다리는 방물처럼 처량하다. 참을 수 없는 비겁함에 나를 내던지는 거리낌도 사라졌고, 모욕에도 익숙해졌다. 자부심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제 더 빼앗길 것이 남지 않은 셈이다. 메마른 기계처럼 대답을 뱉어내는 내 입술은 어느 때보다 능변이지만 그 결론은 왜 이리 허무한 것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드디어 지난 화요일에는 모욕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것과 부딪쳤다. 그날 아침, 삐뚜름하게 안경을 쓰고, 담배에 불을 붙이며 그 남자는 ‘줄만 서면 붙는 시험’에 떨어진 나를 비웃었다. 꽤 알려진 경제신문사의 보스가 던진 한 마디는 몇 년 전 그 남자가 내게 보여준 겸손하고 사려 깊은 행동과 맞물려 나를 혼돈의 한가운데로 밀어 넣었다. 박봉을 감내하더라고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에 대한 내 순진함을 저주하며 조용히 마주 웃어주었다.

어린 시절이나 예전이나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왜 난 잠시 잊었던가? 삶에는 잔인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패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울 때는 내가 아닌 다른 이의 모습일 때뿐이라는 사실을 어째서 잊었던 것일까? 평범함이라는 피할 수 없는 굴레가 내 삶을 조이기 시작하는 이 즈음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탈출을 꿈꾼다. 삶이 이 창과 같다면 새로 고침이란 단추를 누름으로써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지 상상하는 내가 혐오스럽긴 해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은 나의 얼굴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내가 나 자신에게 줄 수 있었던 최고의 찬사였다. 하지만, 요즘 그것은 참 어려운 일이 되었다. 어린 시절 난 스물여덟의 내가 이런 글을 쓰게 되리라 단 한 순간도 상상하지 않았건만 지금 내가 쓰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백서다.

여기저기서 받은 면접비로 제법 비싼 만년필 한 자루를 샀다. 책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는 라틴어 문구를 각인시키며 한순간 의기양양해졌지만 이내 몸과 마음 모두 가라앉아 버렸다. 이 펜으로 무언가를 쓰기 위한 기다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P.S.

결국, 고용통계에서 포지티브항이 되는 데 성공했다. 오래전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학창시절 한 번도 내 첫 직장이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연수를 받기 시작했다. 주변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지만 요약하자면 의외의 선택 혹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 대세다. 하지만, 수상한 시절에 오랜 고민 끝에 내린 내 결론이 틀릴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