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티움 해전

플루타르크가 묘사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역경의 장군이다. 그에게 행운은 쉽게 찾아왔다가 덧없이 사라진다. 손쉽게 로마의 일인자가 될 기회를 얻었다가 강력함이 도리어 덫이 되어 자살로 삶을 끝마치는 장군. 공화정 로마의 악덕을 체화한 것 같은 사람이면서도 전쟁터에서는 병사들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는 정감이 가는 패배자. 승리보다는 패배에서 더 진가가 드러나는 비운의 캐릭터. 이런 내용이 안토니우스에 관한 요약이다.

반면 플루타르크는 안토니우스의 상대가 되는 옥타비우스는 꼭 필요한 부분만 언급한다. 그렇기에 앤소니 애버릿의 『아우구스투스』와 로널드 샤임의 『로마혁명사』를 읽기 전까지 옥타비우스(평민의 성)로 태어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귀족의 성)가 되었다가 아우구스투스가 된 승리자에 대하여 잘 알지 못했다.

배리 스트라우스는 20년 전에 읽은 『살라미스 해전』과 유사한 구조로 이야기를 쌓아간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이끈 해전을 설명하기 위해 1차 페르시아 전쟁과 테르모필레를 마지못해 다룬 것처럼, 『악티움 해전』은 안토니우스・클레오파트라 연합 세력과 옥타비아누스의 승부를 설명하기 위해 카이사르 암살부터 옥타비아누스・아그리파 콤비가 섹스투스 폼페이우스(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차남)을 타도하고 안토니우스의 이탈리아 상륙을 방어하기보다는 먼저 이오니아해로 공격해 들어가는 시점까지 다소 빠르게 이야기를 쌓아간다.

많은 책에서 ‘악티움 해전’은 세력이 약했던 언더독의 역전극으로 묘사된다. 젊은 두 로마인이 더 강하지만 교만했던 안토니우스에게 승리를 거두는 상황이다. 더 강한 군단병을 거느렸던 안토니우스가 해전을 벌였던 이유가 클레오파트라의 영향이었다고 하는 편한 변명으로 그의 패배를 설명한다. 소설이라면 적당한 설명이 되겠지만 배리 스트라우스가 그려내는 현실은 좀 다르다.

먼 훗날 레판토 해전까지 지중해를 지배한 오스만 제국이 승리한 프레베자 해전이 벌어진 장소가 고대의 악티움이다. 이오니아해에 연결된 깊은 만을 가진 암브로키아만과 악티움은 이탈리아 침공을 위한 안토니우스 군대의 동절기 집결지가 된다. 그러나 이탈리아 상륙은 부대의 집결과 병참을 모으는 와중에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안의 보급기지인 메토네에 대한 아그리파의 강습으로 선택지에서 지워진다. 메토네를 잃게 됨으로써 이미 이오니아해 진출한 안토니우스의 군대에 대한 해상 보급이 끊기게 된다. 그 사이에 옥타비아누스의 그리스 상륙이 성공하고, 악티움 북쪽에는 육군이 남쪽에는 해군으로 봉쇄에 성공한다.

코린토스 지협을 통한 육상 보급을 제외하면 보급이 끊긴 상황에서 거대한 안토니우스 군대의 규모는 덫으로 작용한다. 굶주림과 여름이 되며 습지에 위치한 진영에는 전염병이 돌고 결국 안토니우스는 군단병을 버리고 해전을 통한 역전극 또는 탈출을 노리게 된다. 전투는 하르팍스를 통한 백병전과 화공에 성공한 옥타비아누스의 승리로 막은 내린다. 하지만 이집트 함대와 로마 함대의 일부는 무사히 이집트까지 후퇴하게 된다. 파르살루스 전투 이후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를 쫓아 나일강까지 향한 것처럼 악티움 해전 이후의 흐름도 다르지 않다.

배리 스트라우스는 승리의 원인으로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의 전쟁을 통해 사르데냐와 시칠리아를 안정화 시켰고, 해군 전략에 대한 경험을 확보한 점, 일리리아 대한 군사 작전을 수행하며 아드리아해를 먼저 장악한 점, 대담한 기습으로 보급선을 끊은 사실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대참사가 될 뻔한 악티움 해전에서 군선과 자금을 지킨 점이나 성공적인 탈출은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집트에서 안토니우스가 재기에 성공했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작가는 양측의 프로파간다와 승자에 의해 채색된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모습을 최대한 우호적으로 복원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계자로서 여왕이 고민할 수밖에 없는 정치적 선택과 지중해의 패권국 로마 정치인으로서 안토니우스를 어디에도 치우침 없이 깔끔하게 묘사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애정도 존재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상호 의존적인 협력관계다. 셰익스피어의 『앤서니와 클레오파트라』의 비극적 묘사와 달리 두 사람은 필요성이 깨지면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내전 시기 ‘여자들’에게도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안토니우스의 아내였던 풀비아의 내전과 옥타비아누스의 누이인 옥타비아의 기묘한 역할, 여왕이자 전략적 동반자인 클레오파트라 7세의 삶까지 빼놓지 않고 녹여낸다.

아내와 달리 나는 13살부터 읽기 시작한 컬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시리즈를 완역이 되었음에도 브리타니아에서 크라수스의 죽음을 전달받은 카이사르 장면부터 몇 년째 읽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는 내전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까지 어두운 시기가 시작됨을 예고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티움 해전』을 읽고 나니 이제야 다음 장을 넘길 용기가 생긴다. 아니 일을 좀 줄이고 마리우스와 조부 카이사르가 만나는 첫 장면부터, 술라가 그리스인 정부와 양어머니 사이에서 이글거리는 눈길로 카피톨리노를 응시하는 장면부터 카이사리온의 처형까지를 천천히 음미하면 다시 읽고 싶어진다.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

가끔은 예상해도 눈으로 확인할 때야 확신이 드는 순간이 있다. 아내와 서재를 결혼시켰을 때가 그랬다. 아내와 내가 가진 책 가운데 골즈워디라는 공통분모가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누구 책을 남길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어떻게 끝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딸아이 키가 아내와 비슷할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 수도, 골즈워디의 책들이 갑작스레 많이 번역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골즈워디는 로마사 그것도 전쟁사의 전문가이다. 그런 작가가 쓴 『필리포스와 알렉산드로스』는 어떨까 하는 의문으로 시작한 책을 다 읽기까지는 여섯 달이 걸렸다. 회사 때문에 여력이 부족했노라 변명을 해보지만, 이전에 읽었던 다른 저작들에 비해 조심스럽고 주저하는 망설임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아서 그런 부분도 존재한다.

플루타르크의 『비교 열전(영웅전)』에서 필리포스는 독립된 인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아들 알렉산드로스와 포키온, 데모스테네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애꾸눈 왕’일 뿐이다. 영웅의 고난을 강제하는 강대한 적이나 영웅적인 아들을 위한 조연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으리라. 페르시아를 제압한 마케도니아 ‘전쟁 기계’를 설계하고 육성한 공로는 무시되고, 말년의 왕은 헤픈 결혼으로 영웅의 삶을 망칠 뻔한 주정뱅이로 그려진다.

골즈워디는 많지 않은 기록을 토대로 왕위를 쟁취할 가능성이 낮았던 인질로 테베에 보내졌던 왕자가 어떻게 왕이 되고, 테베와 아테네라는 두 강국 사이에서 어떻게 작은 왕국을 유지하였으며, 종국에는 승리를 통해 작은 왕국이 지역 강국으로, 마지막 단계에서는 그리스 전체를 제압할 정도로 강력한 국가가 되었는지를 서술한다. 한 번의 패배로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었던 사냥꾼과 농부들의 작은 군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경험을 축적하고 조직을 갖추어 나갔으며 종국에는 페르시아를 무찌른 기병과 팔랑크스로 역사에 기록되는 과정을 추적한다. 국내에 번역된 책 가운데 필리포스를 위해 이 정도로 노력을 할애한 책은 없었다고 단언해도 될 정도로 작가가 그려내는 필립포스는 정교하고 생생하다.

많은 이야기 속의 알렉산드로스는 부케팔로스를 다룬 명민한 젊은 소년으로 시작한다. 부친의 권위에 반항하는 젊지만 훌륭한 지휘력을 지닌 청년이 되고, 부친의 계획을 이어받아 페르시아 원정에 떠나 다리우스 3세의 페르시아를 제압한다. 그리스가 알고 있던 세계의 끝까지 정복한 영광과 명예를 좇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일종의 스테레오 타입의 영웅으로 말이다.

골즈워디는 이런 알렉산드로스 像에 적극적인 반기를 드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은 새로운 시선을 더한다. 전제정의 왕이자 음모가 일상인 아르게아스 왕가의 후계자로 집행하는 숙청과 조직적인 살해와 약탈, 힘든 행군과 요새 공략으로 점철된 가우가멜라 전투 이후의 군사작전을 빼놓지 않는다. 작가가 그려내는 알렉산드로스는 플루타르크가 그린 젊지만 산뜻한 영웅과 거리가 있다. 골즈워디가 그려내는 알렉산드로스는 한 번 구르기 시작한 수레바퀴를 멈출 방법을 찾지 못한 위험한 사내다. 영웅이나 어떤 의미에서는 평범한, 천재적이나 항상 천재적일 수는 없는 모순 형용의 삶이 조심스럽게 그려낸 영웅의 모습이다.

나폴리 고고학 박물관에는 그 유명한 이수스 전투를 묘사한 모자이크가 있다. 전차를 타고 도망가는 다리우스 3세의 당황스러운 표정과 대비되는 기계적인 차분함이 담긴 알렉산드로스는 오랜 시간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폼페이의 폐허에서 발견한 이 모자이크는 골즈워디가 그려낸 알렉산드로스와 가장 비슷한 느낌이다. 실제로는 작은 키에 단단하지만 금발에 ‘오드 아이’를 가졌다고 전해지지만 말이다.

서재 한편에는 아리아노스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기』와 디오코도이(후계자들의 전쟁)를 다룬『알렉산드로스 제국의 눈물』이 나란히 꽂혀 있다. 아리아노스가 이미 오래전 영웅이 된 대왕의 행적을 로마의 경험으로 따라간다면, 후자는 알렉산드로스 4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발굴로 시작하여 제국의 유산을 갖기 위해 싸우는 ‘자칭’ 후계자들의 전쟁을 그려낸다. 골즈워디의 이 책은 두 책 사이의 빈틈을 메우기에 최적의 선택이다.

흉노와 훈

어린 시절부터 로마사는 재미난 역사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제정 후기보다는 제정 황금기가, 제정 황금기보다 공화정의 역사가 더 재밌다고 생각했다. 오현제 시대 이후 로마는 반복된 내전의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제정 후기 본격적인 만족들의 침략 시대에 접어들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광서림 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이런 내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인과관계가 불명확하고 서술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을 위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쪽에서 등장한 ‘훈’의 존재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피터 히더의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을 서재에서 꺼내 드는 것이 쉽지 않았던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봄에는 이시차다의 『중국중세사』를 읽으며 ‘팔왕의 난’ 이후 서진의 몰락을 가속한 5호 16국을 드디어 머릿속에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서진을 멸망시킨 호한의 유연과, 염위에 의해 기세가 꺾인 흉노와 갈족이 중국사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점차 작아지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여름에는 에드워드 루이스의 『하버드 중국사 진・한』을 읽으며 한나라와 흉노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다. 이제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에 이십 년 가까이 생각만 해왔던 르네 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민족사』를 사들였다. 『흉노와 훈』을 서점에서 발견한 것은 이런 즈음이었다.

『흉노와 훈』은 내전을 거쳐 분리된 서흉노가 스텝에 머물며 흉노의 정치적 정체성은 유지한 채 광범위한 종족 융합이 일어났다고 정의한다. 중요한 것은 종족이 아니라 흉노가 지닌 초원 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이며, 이 정체성을 지닌 서흉노는 아틸라로 대표되는 로마사에 굵직한 영향을 미친 ‘훈’과 사산 페르시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백훈(에프탈)’으로 분리되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이 요지다. 광범위한 종족 융합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란계 민족인 ‘알란인’과 ‘훈’의 관계도 어렵지 않다. 몽골리안과 이란계 가운데 외모에 어느 쪽의 피가 더 강하게 영향을 미쳤냐도 중요하지 않다. 아틸라의 이름과 피부색도 궁극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부락 단위로 나뉘어졌던 게르만족의 국가 형성에 미친 초원의 영향력이다.

위・진시대 남흉노와 병주를 상황을 고려하면 서로마의 최후를 책임졌던 아에티우스와 오레스테스와 ‘훈’의 관계도 보다 쉽게 그려진다. 궁기병과 등자를 도입한 중기병을 통해 충격력과 기동성을 모두 갖춘 군대를 이기는 방법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훈족’ 과 ‘알란인’은 ‘팔왕의 난’ 당시 5호가 그랬던 것처럼 충성도에 차이는 존재하지만 점차 ‘로마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권력이 되었을 것이다. 한고제가 백등산의 패배로 세폐를 지급했던 역사는 서쪽 로마에서도 반복되었을 것이다. 원정을 통해 얻은 부를 재분배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과 경제적 분배도 한 세기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동과 서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흉노와 훈』을 읽기 전까지 5세기 유럽의 역사는 ‘신의 채찍’, ‘재앙’으로 묘사되었고, 공포에 마비된 서술은 실체를 이해하는 것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세기의 차이가 존재하고, 인종적 구성에서는 조금 차이가 존재할지라도 동과 서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파악하면 ‘흉노’와 ‘훈’은 미지의 존재라기 보다는 보편적 역사의 흐름으로 보인다. 스키타이에서 흉노로, 나중에는 유연과 돌궐로, 몇백 년 후 거란과 여진, 몽골로 이어지는 초원의 정체(政體)라는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