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雪을 기다리며

小雪을 기다리며 한가롭게 잡담을 풀어 놓다.

1.
점심 무렵 친구와 이야기 중에 감히 ‘애인보다는 책이 더 좋은 법이지’ 하고 실언을 해버렸다. 문제는 한 문장으로도 충분히 커다란 실수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목 조목 이유까지 부연해하며 크기를 늘리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실 이런 발언의 배경에는 요즘 내가 이덕무의 산문집을 읽고 있다는 미쳐 알리지 못한 상황이 존재한다. 청장관 이덕무의 ‘책사랑’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그 뜻에 취해 버렸다고 변명하기에는 너무 늦은걸까?

2.
3년 만의 수강 신청이다. 과거의 노하우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쓰라린 교훈을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학교에 다닌다는 사실만으로도 8살 꼬맹이의 첫등교처럼 설레인다. 작은 브리프케이스 하나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즐겨 쓰는 브랜드의 가방을 하나 더 들여 놓기로 마음 먹었다. 아이처럼 신나하는 나를 보며 친구와 누이들은 그렇게 좋냐고 몇번씩 묻곤 한다. 솔직히 매우 신이 난다. 그토록 지겨웠던 휴가가 끝나간다는 것에 관하여, 그 휴가 동안 넘긴 책장의 두께에 관한 자부심으로, 마지막으로 수많은 사건 속에서도 내 자신을 완벽하게 잃지 않았다는 사실때문에 신이 난다.

3.
인근 도시에 위치한 치과에 다녀오다가 몇년 전에 즐겨 산책했던 길을 다시 걸어 봤다. 소설에 접어 들자마자 거짓말처럼 내리던 눈과 까닭 없는 노곤함으로 마냥 쉬고만 싶어 했던 겨울을 회상해 봤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난 당시 이른 합격으로 벌어놓은 시간을 산책과 모험. 책읽기로 낭비했다. 그 시간에 잃어버린 공부하는 습관을 다시 찾은 것은 이번 휴가 때였고 허무하게 내던진 시간의 가치를 그제야 깨닫고 꽤나 배아파했던 듯 싶다. 결국 마지막 모퉁이에 접어 드는 순간 스스로를 아끼는 사람은 시간에 제대로 가치를 매길 줄 아는 사람이란 말과 자신의 시간만큼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친구로 사귀란 말이 떠올랐다. 뜬금 없는 산책의 교훈이긴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어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4.
친구들의 대부분은 내가 꽤 잡다한 기억력을 자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는 아예 처음부터 안들었거나,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일일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길을 걷다가 메세지 하나를 받았는데 그 녀석이 학교에 있는지 아니면 휴학을 하고 내려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정보수집용 답신을 보낼 수도 없어 고민하다가 결국 답장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마저 까먹고 말았다. 궁색한 변명을 하자면 초여름부터 오늘까지 시간이 꿈결처럼 흘러가는 통에 무언가를 기억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고 이렇게 슬쩍 변명해 본다.

murmur

1.
<나니아 연대기>가 도착했다. 묵직한 두께에 단색의 깔끔한 장정이 입혀진 책이었다. 어떤 이들은 시공사라는 이유만으로 이책을 외면하겠지만 근래에 보기 드물게 정직한 책이었다. 누구나 선택의 자유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단지 시공사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면 혹은 ‘증오받아 마땅한 사람’의 아들 역시 증오 받아야 한다면 구족을 멸하던 과거와 오늘의 차이가 과연 무엇일까 하고 조심스럽게 고민해 본다. 길게 썼지만 사람들이 이 매력적인 판본을 책과는 아무런 연관 없는 이유로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
오후에는 반주 덕분인지 깊은 낮잠을 잤다. 평화로운 오후의 낮잠을 얼마만에 즐겨 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스르르 잠에 빠져 해가 저문 다음에야 일어났다. 사위는 벌써 어둠에 젖어 있고 바람은 겨울 바람처럼 차다. 어느 사이에 겨울이 훌쩍 다가온 모양이다. 의지를 모으고 가능한 모든 실행 수단을 끌어 모아야 할 겨울이 벌써 다가왔다.

3.
플루타크의 <비교열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문장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먹지 않으면 그만이다’라는 문장이다.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아스파라거스가 나왔을 때 카이사르가 했다는 말인데-물론 그는 그말을 던지고 아무 상관 없이 특이한 조리법으로 요리된 그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이 문장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된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조용히 식탁 밑으로 손을 내려 놓으면 된다. 조리법이 이상하다며, 손님을 맞는 예의가 아니라며, 미각을 거스르는 음식이라며 주인을 비난하는 것은 혹여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더라도 추태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이 경우 정당한 이유같은 것은 없으며 수십년 동안 다른 태도를 가지고 살아온 이런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이란 쉽지 않다. 또 모든 어려움을 감수해야 한다면 충분히 논의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이거나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당한 이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논의의 가치까지 없다면 무엇때문에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야만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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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요즘 아버지와 나의 애청 프로그램은 명대와 청대의 역사를 다룬 두 편의 역사 드라마이다. 아버지와 나는 강희제의 통치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숭정제가 자살하는 장면을 보며 중국이란 나라에 대해 생각한다. 겉으로는 강력한 제국의 위용을 뽐내고 있지만 내부는 허약하기 그지 없는 중국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책들이 중국의 부상과 미래의 초강대국으로써의 위치를 고찰하고 있지만 화려한 수치 뒤에 숨겨진 역사의 수레바퀴가 더 또렷하게 보이곤 한다.

국가의 적정 규모에도 내부화를 통한 거래 비용의 절감이라는 논의의 가정을 도입할 수 있다면 확언하건데 중국은 내부화를 통한 거래 비용의 절감보다 규모로 인한 비경제가 더 큰 비효율적인 거대 기업에 비견될 수 있다. 외부의 충격과 내부의 혼란 한방이면 흔적조차 남지 않을 것이 분명한 그런 거대 기업 말이다.

효율적인 시스템은 시스템에 대한 시스템 하부의 신뢰에서 비롯된다. 조직의 건강성의 바로 미터인 기율과 복종의 미덕이 쉽게 깨지는 시스템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조직의 건강성을 자유로운 분위기와 의사 전달의 속도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연 이것이 조직의 존재 목표에 보다 근접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기율과 복종이 없다면 조직은 아예 유지 될 수 없는 반면 자유로운 분위기와 의사 전달의 속도는 장기적인 성공의 조건이지만 생존의 필수 조건은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5.

_M#]

Love’s Labour’s Lost

횡단 보도에 서 있는 뒷모습을 본 순간 지독했던 헛사랑이 정말로 끝났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헛사랑의 끝을 인식하는 순간 적당히 냉정하고 이기적이며 좀처럼 동요하지 않던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왔다. 농담처럼 원래 그런 사내였고 단지 애정이 시야를 가리는 동안만 친절했을 뿐이었다는 누군가의 조롱 섞인 읊조림이 떠올랐다. 다리가 풀리며 까닭 없이 노곤함이 밀려 왔다.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사납게 휘저은 폭풍의 끝치고는 허망한 결말이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마음 속에는 여전히 미적거림이 남아 있다고 믿었던 환상의 끝은 이렇게 초라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고혹적인 표정이지만 그 표정 속에서 나를 미치게 만들었던 매혹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신 오랜 시간 속에 익숙해진 친구의 얼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 남긴 추억은 곱게 풍화되어 있었고, 상처의 잔금은 먼지와 이끼 속에 숨어 들었다. 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피곤함이 스며 들었다. 더 이상 꿈이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을 거란 사실에 안도하며 깊은 잠 속에 빠져들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도 잠으로 도피하려는 본성을 버리지 못하는 것만큼 사랑 또한 버리기 힘들어 했던 과거의 모습에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처음 그녀를 발견한 때는 스물 한 살 봄의 일이다. 지겨운 강의 대신 소설을 붙잡고 계단식 강의실의 두 번째 층에 앉아 있던 지기와 나에게 고개를 돌린 소녀는 성숙한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날카롭게 쏘아 붙이던 그녀의 당돌함에 놀랐지만 그보다 더욱 황망했던 것은 그녀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소설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후로 오랫동안 그녀는 내 시야에 늘 고정되어 있었다. 바쁜 걸음으로 낭하를 걸어 다니던 내 눈에 유난히 느린 보폭으로 걷던 그녀를 발견하는 일이 매우 쉬었다는 사실은 차제하고 말이다.

타인으로 인식 밖에 머물러 있던 내가 처음 인식 안으로 걸어 들어간 점심 식사가 기억 난다. 이제 막 가을에 접어든 스물 둘 9월의 어느 날을, 식당의 조리열이 을씨년스럽기 시작한 대기를 조금은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던 그 날의 만남을 내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가벼운 속임수를 통해 알아낸 핸드폰 번호를 외우던 어느 목요일 오후와 짐짓 누군지 모르겠다는 듯 답신을 보냈던 일요일 아침이 떠오른다. 지난 5년을 회고해 보면 그때가 내 삶의 황금기가 아니었나 싶다. 맡고 있는 일이나, 마음의 평화나, 미래에 대한 준비나 어느 것 하나 모자라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억은 어느 사이에 크리스마스 이브의 약수역과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그 해 겨울이 떠올린다. 친구의 전언을 통해 들은 intimate란 단어가 베푼 기쁨의 농도에 희희 낙낙하던 내 모습도 보인다. 지금 생각하면 마냥 귀여운 내 모습이다.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면서 내가 맡고 있는 일이나, 마음의 평화나, 미래에 대한 준비나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위기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단지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아릿하게 만들었던 추억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멈추어야겠다. 지금은 추억을 어깨 너머로 흘려 보낸 채 새로운 위치와 현실을 받아들일 순간이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사심 없는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리라. 4피트 8과 1/2 인치라는 궤간만큼 거리를 두고 반대쪽 차창에 펼쳐질 내 삶을 보리라 다짐해 본다.

짧은 여행을 끝내고 귀향하는 기차 안에서 지난 5년간의 시간을 꼼꼼하게 되돌아 보았다. 황금기에 근접하기 위해 들였던 노력의 시간과 그것의 단맛을 충분히 향유했던 행복했던 시간, 그리고 긴 몰락이 머리 속을 떠다녔다. 지난 5년을 되돌아 보면 성취감 이상을 보상해 주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어떤 상황에도 반응할 수 있는 준비 정도는 된 것 같다. 새롭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나, 새로운 기분으로 누군가의 친구가 되는 것, 새로운 마음으로 긴 항해를 시작하는 것. 이제는 어느 하나 두렵지 않다.

나흘 뒤면 시간의 유용함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시기가 끝난다. 짧은 막간극을 거치고 나면 새로운 장에서는 시간이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Anerriphto ho Kybos’ 란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닐까?

[#M_ P.S. | less.. |
Love’s Labour’s Lost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인 <사랑의 헛수고>의 원제이다. 왜 이런 제목이 생각났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