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적 독신증후군

내 주변에는 연인의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발적 독신증후군에 감염된 사람들이 유난히 많다.-혹자는 비자발적 독신증후군이 만성화될 겨우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고도 한다-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 하면 유부남을 제외한다면 mating을 시도하고 있거나, 지속적인 관계를 구축에 성공한 사람이 단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따라서 언제부터인가는 우리의 이야기에서 mating이 차지하는 비중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혹여 누가 mating을 시도하려는 상태 자체를 비정상적인 상태로 간주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을 정도로 우리한테 mating 낯선 단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다들 이런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는 있다. 누구나 서로에게 대뜸 하는 잔소리가 ‘이러다 꽃다운 젊음에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해보고 어른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잔소리를 듣는 쪽이나 하는 쪽이나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작 하는 말이라는 것이 일단 바쁜 한고비만 넘겨놓고 생각해 보기로 했어 따위의 망발이 아니면 귀찮아라는 일고의 여지도 대답 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 제대로 된 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떠올리기를 거부하는 추억이 하나쯤은 담겨져 있다. 누구는 조금 더 많은 경우도 있고, 누구는 정말 단 하나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추억의 숫자가 아니라 추억이 남겨 놓은 흔적이다.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추억이 남겨 놓은 흔적은 꽤나 무겁다. 결국 ‘제대로 된 사랑 한번’ 이라는 잔소리 속에는 나에게는 숨겨진 추억이 하나쯤은 있다는 미묘한 뉘앙스가 숨겨져 있다. 사실 듣는 쪽도 별다를 바가 없다. 말하는 쪽이나, 듣는 쪽이나 애틋한 추억하나쯤은 있으며 이것 하나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다른 수많은 가능성에 관해서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의논하면서도,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한다. 추억은 아름답지만 추억 속에 담긴 희미한 씁쓸함의 여운이 삶에 진하게 배어있기 때문이다. Mating은 성공과 일관된 의지의 적이라는 미신에 가까운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이렇게 자발적 독신증후군에 감염된 채 하루 하루를 살아간다.

겉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척, 바쁜 일상에 완벽하게 헌신하는 흉내를 내지만 아무도 없는 늦은 밤이면 애틋한 추억의 음악을 들으며 과거를 반추한다. 과거와의 작은 흔적에 설레임을 느끼며 스스로가 결코 벗어나지 못할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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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난 비자발적 독신증후군에 감염된 초기 증세의 환자이며 어디까지나 관찰자에 위치한다. 결국 이것은 내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전부가 내 이야기인 것도 아니다.

사실 난 지금 내가 어디쯤에 서 있는지 모른다. 컬러링을 들으며 잠시 내장까지 통증이 밀려왔지만, 대리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큰 키 덕분에 그대로 시선에 드러나 보이는 앞가슴에 잠시 민망해 하면서도 껴안고 싶은 익숙한 충동과 태연을 가장하려는 억제된 본능, 신뢰라는 서로간의 맹약에 묶인 의무감과 사려깊은 뒤에 숨겨진 감정의 치졸함, 천박한 타락과 시간에도 퇴색하지 않을 고결함 사이에서 번뇌하는 것은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던 친구가 떠오른다. 나 역시 그순간 그랬다._M#]

동네 아저씨를 부러워하다

휴학이후 삶에서 멀어진 것들은 많지만 그 가운데 가장 파격적인 거리를 보이는 것은 술이다. 물론 그때에도 날마다 이어지는 술판에 몸을 내맡기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술자리를 좋아했던 그때와 달리 요즘의 난 술과 담을 쌓은 듯 녀석을 멀리한다.

물론 술과 멀어진 데에는 다 그럴만한 연유가 있다. 첫번째는 이곳에 남은 친구들이 적어졌다는 것이고, 유행처럼 번진 금주 열풍이 모임마다 빠질 줄을 몰랐던 술자리를 식사를 같이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대체했다는 데 있다. 소소하게는 불경기와 물가 상승으로 용돈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점도 한몫 했음이 분명하고, 운전이 보편화된 생활의 변화가 눈빛만 번쩍여도 술자리로 이어지던 과거를 청산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을이 다가오면서 까닭 없이 술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쏜 살처럼 내 곁을 스쳐간 이성의 숨결에 담긴 주향이 달콤하게 느껴지고, 저녁이 되면 혹 누군가가 술 한잔을 청하지 않을까 핸드폰을 매만진다. 심지어 술에 취해 나른하게 풀린 걸음마저 부럽다. 늦은 밤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에 마주치는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네들의 혈관 속에 담긴 알코올을 동경한다.

결국 어제는 귀밑머리까지 달아오른 어여쁜 아낙이 아닌 짧은 다리를 열심히 놀려 호프집에 들어서는 아저씨들에게까지 부러움을 느꼈다. 사실 난 더 이상 맥주의 더부룩함과 소주의 화학성분냄새를 견디지 못한다. 무엇보다 오늘 하루만이 아닌 내일까지 요구하는 술자리의 희생을 참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오늘 난 동네 아저씨들의 경쾌한 발걸음을 부러워한다. 단지 그들이 술을 마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P.S.
결국 친구 녀석들의 mid-term이 끝날 즈음에 요즘 동아리에서 술 좀 마셨노라며 어느 사이에 술에 대한 겸손함을 잃은 J군의 끝을 보기로 합의했다. 본인은 우리의 음모를 모르겠지만 삼가 조의를 표한다.

P.S 2nd
하악에 좌측에 위치한 치아를 대폭 정리했다. 앞으로 반년은 술은 꿈조차 꾸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는 협박 겸 조언을 들었다.

First Deck, Blog, and 31 Aug.

8월의 마지막 날은 나의 여름이 끝나는 날이다. 비록 오늘이 지나도 한낮에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하수가 입에 걸리는 처서마저 훌쩍 지난 요즘은 이미 마음으로는 완연한 가을이다. 사실 오늘쯤 되면 가을에는 여름과 다른 계획 아래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무에 쫓기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절과 나누는 인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게다가 여름에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끝낸 오늘 하루는 여유롭게 보내도 되는 나만의 자유 시간이다. 밀린 책을 읽고, 미쳐 마무리 짓고 못한 글을 완성하며 하루를 보내는 가을을 준비하는 덤인 날이다.

1.

덤인 하루를 보내며 누이에게 생일 선물 받은 첫번째 덱을 셔플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시작될 이번 가을에 생각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카드를 집어 들었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라이더 덱의 magician에 해당되는 intellect였다. 안도의 한숨을 나왔다. 지금 내 마음과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나타나는데 이보다 더 좋은 카드는 없다. 2001년 3월 회기역 앞 어떤 까페에서 첫번째 카드를 뽑았을 때 나의 신문사 생활을 지목한 카드가 7 of Wand인 것에 비하면 이 정도면 뽑을 수 있는 최고의 패를 집은 것이나 진배 없다.(그때 내가 뽑은 카드는 7개의 Wands를 힘겹게 지고 가는 농노를 그린 카드였고, 지금 가진 Dante에서는 적 혹은 충돌을 나타나는 카드다)

2.
이틀 사이에 읽은 두 개의 포스팅은 이곳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의사 결정에 관한 복잡한 프레임워크를 실행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면 이곳을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난 활자중독증에 빠진 사람이고 설령 주변의 지인들로부터 경력에는 하등에 도움이 되지 않는 악취미라는 잔소리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의 생활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올 겨울과 내년 봄의 이곳은 조금 황량한 곳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 고집스러운 지속성과 좀처럼 변하지 않는 기질을 고려해 볼 때 이곳이 불의의 사고가 아닌 자의로 사라지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첫번째 홈페이지을 채워 넣은 negative한 글들을 사랑했던 것보다 이곳을 더 많이 사랑한다. 시작은 조각난 마음에 대한 넋두리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더 이상 내 마음은 깨진 거울이 아니고-거울은 나도 모른느 사이에 오래 전에 수선이 끝나 있었다- 되려 이겨내야 할 일상과 위험으로 흥미진진한 모험 그 자체인 삶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내게 있어 한니발을 수행한 실레노스와 같은 존재다. 그가 있기에 우리가 오늘날 한니발에 관해 아는 것처럼 이곳이 있기에 먼 훗날 나를 알았노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한 사랑이 없는 것처럼, 영원한 어색함도 없다. 그저 시간 속에 녹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하지만 단 하나만큼은 영원에 가까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바로 애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순백의 우정으로 보기도 힘든 사람에 대한 ‘필리아’다.

또 다시 꿈꾸는 표정으로 우정이 주는 행복한 느낌을 음미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과정이다. 비록 내일 또 다시 천둥이 치고 번개가 떨어진다 하더라도 가끔은 찰나를 음미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느끼는 이 행복한 상상을 그녀도, 그도 느꼈으면 좋겠다. 시간 앞에 고정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나도 모르게 변하는 것이며 가능성을 봉쇄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삶은 없다. 물론 때에 따라서는 잠시 문을 닫아 두어야 할 필요성은 있겠지만…

4.
내일부터 나의 가을이 시작된다. 이번 여름은 작년 여름보다는 덜 만족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꽤나 진지한 여름이었다. 게다가 이번 여름의 아쉬움은 가을에 벌충하면 된다. 무엇보다 이번 가을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계절이란 사실이 행복하면서도 서글프다. 가을이 끝날 무렵의 나는 얼마나 변해 있을까? 다만 지금보다는 조금 더 발전한 나이기를 기원한다. 발전하지 않는 것은, 욕망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은 삶은 서글픈 정도가 아니라 진정 불행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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