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루타르코스의 『비교 열전』에는 스키피오도 한니발로 독립된 장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스키피오는 테베의 에파미논다스와 묶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나 유실되었고, 한니발은 파비우스 막시무스와 마르켈루스 편에 적敵으로만 등장한다. 리비우스의 저작은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으나 다행히 포에니 전쟁과 관련된 부분은 살아 남았다. 한때 서지중해 바다를 사실상 지배했던 해상 제국 카르타고, 그 가운데 한니발에 대한 기록은 이 정도가 전부다.

고등학생 시절 리델 하트의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를 읽으며 이 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인물인 한니발에 관한 책도 읽어보면 재미날 것이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필립 프리먼의 『한니발』은 딱 이 조건에 부합하는 책이다. 저자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구성에서 양자의 유사성은 놀라운 정도다. 의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의식하고만 결과라고나 해야 할까?
그러나 이 책은 역사학자가 쓴 저술임에도 지나치게 가볍다. 같은 작가가 쓴 『카이사르』를 읽지 않았다면 실망했을 정도로 서술의 깊이에서 차이가 크다. 빈약한 사료를 아무리 읽고 해석해도 이 이상을 쓰지 못했을 거란 생각에 이르고 나서야 이해가 된다. 왜곡된 서술을 걷어내고 나면 ‘로마를 거의 멸망시킬 뻔한 한니발’이란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에게 알려진 사실이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장점은 오늘날 한 국가와 다를 바 없는 고대 도시 공성의 어려움을 과소평가하지 않은 점, 이베리아라는 새로운 개척지가 카르타고에 풍요를 선사했을지는 몰라도 한니발 원정의 초기를 제외하면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점, 알프스 진격과 굶주림으로 거대한 군대는 사라졌지만 남겨진 군대는 정예화되었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르노강 상류의 늪지대를 관통한 고통스럽지만 놀라운 기동으로 승리를 얻은 순간을, 칸나에 회전에서 거대하지만 소년병에 불과한 로마의 군대를 무너트린 장면을 묘사하는 필치는 잔혹하지만, 놀라운 승리를 거둔 군대가 차단선 안에 갇혀 서서히 몰락하는 불편한 과정에 눈감지 않는다. 부족함 속에서 최선을 다한 얇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