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딸 아이의 일곱 살 생일을 맞아 오랫동안 생각했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열 살 소년이던 내게 아버지께서 『일리아드』와 『중국의 붉은 별』을 ‘나만의 책’으로 선물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딸에게 ‘나만의 책’을 선물할 계획을 말이다. 딸아이가 평생 쓸 수 있는 해남석으로 만든 장서인도 마련했고 –  우리 부부의 장서인보다 아름답다-  뉴베리상 수상작도 몇 권 책장에 채워 넣었다. 딸아이가 책 읽기를 아이스크림처럼 좋아하기를 바라며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리 내 읽어주기로 자신에게 약속했다. 장서인을 찍는 규칙도 딸과 함께 만들었다. 부디 딸이 나보다 좋은 서재관리인이, 삶에 바빠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희망한다. 

 엄밀하게 말해 『어린 여우를 위한 무서운 이야기 』는 딸아이가 스스로 읽은 첫 번째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어린이 전집의  그림책이 아닌 아빠와 두 달 가까이 읽어야만 했던 긴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림이 아닌 문자를 토대로 이야기를 상상해야 했다는 점에서는 첫 번째 책으로 봐도 무방하다. 

 공수병에 걸린 선생님 여우로부터 탈출하며 형제를 잃은 미아라는 암여우의 이야기로 시작한 책은 아버지로부터 탈출한 절름발이 숫여우 율리와의 만남을 통해 확장되며, 두 여우의 모험을 통해 대단원에 이른다. 매일 밤 부녀는 침대에 앉아 수많은 위기 속에 죽음의 문턱을 건너 두 어린 여우가 가을을 넘어 어른이 되기를, 급작스레 어른이 되어 맞은 첫 겨울을 무사히 넘기기를 기원하며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겼다.  나이를 먹어 혼자 다시 읽을 즈음에는 감상이 바뀌겠지만  그 날이 올 때까지 딸아이에게 이 책은 용감한 미아와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가진 율리라는 여우의 이야기로 기억될 것이다. 사실 이런 감상보다도 아빠로서 중요한 부분은 이 책이 딸에게 첫 번째로 장서인을 찍은 평생  간직할 책으로 마음에 남을 거란 사실이다.

 자연도태와 독립, 영역싸움이 저변에 깔려 있어 어른의 시각에서 보자면 동화라기에는 다소 잔혹하지만, 그마저도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높아지는 이야기의 밀도 덕분에 흠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 어쩌면 삼강이란 소학적 질서가 관습적으로 남아 뼈에 박힌 한국인이기에  잔혹하다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완성도 높은 문학 작품에 익숙한 어른에게는 다소 진부한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겠지만 두 어린 여우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준 높은 모험기이자 복선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일곱살  어린이에게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적당한 긴장감과 짜임새 좋은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인물의 성격과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명쾌하게 전달하면서도 몇 달 동안 어린이의 흥미를 끌 만한 장편 소설은 많지 않으며 이 책은 그 희귀한 책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블랙아웃, 올클리어

젊은 시절 나는 책 없는 삶은 죽음과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며 책과 함께 하는 삶 대신 아내와 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책과 함께 하는 삶은 과거의 편린으로 남았다. 심지어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다. 텅 빈 종이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문장은 이제는 개조식에 길들어져 궁핍해졌다. 삼십 대의 나는 이십 대보다 더 많은 책을 읽을 줄 알았는데 실제 내가 읽은 분량은 부끄러운 수준이고, 나를 드러낸다고 혹은 내가 좋아한다고 믿었던 삶의 소품의 상당수는 이제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세월이 야속하게도 사십 대가 되었다

서평을 쓰기 전에 내 삶을 늘어놓았던 이유는 지금 이야기하려는 이 두 권 책이 내 삼십 대를 설명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첫 만남은 서른 살 초여름이었다. 회사에서 억지로 보낸 재미 없는 의무 교육을 듣는 동안 코니 윌리스의 신작 『블랙아웃』이 애플 북스토어에 올라온 것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그 후로 몇 년간 몇백 페이지를 읽고 다시 몇 달 동안 방치했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반복했다. 내 인내심은 매번 호드빈 남매의 말썽에 무너졌다. 그 와중에 후속작인 『올클리어』가  출간 되었고 코니 윌리스의 주요 작품들이 때로는 신간으로 때로는 개정판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내 나이는 어느새 삼십 대 후반이 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코니 윌리스를 알리는 것에 성공했고 어느 순간 아내의 독서는 나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아내의 응원에 도움을 받아 나도 드디어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했다.

코니 윌리스가 창조해낸 옥스퍼드 시간 여행자 시리즈의 사람들은 시공연속체인 ‘네트’를 통해 과거에 접근할 수 있다. 제2차세계대전을 관찰하기 위해 ‘네트’를 통과한 젊은 세 명의 역사학자들은 어느 순간 ‘네트’가 봉쇄되어 본인들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현재로 돌아갈 수 없는 외통수 상황에서 이들은 독일군의 야간 폭격으로 신음하는 런던에서 제2차세계대전의 하루하루를 경험하게 된다. 백화점 점원으로, 폭격을 회피해 교외로 이동한 아이들을 돌보는 하녀로, 덩케르크에서 부상당한 종군기자로 하루를 보내는 이들은 혹 실수로 역사를 바꾸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영원히 이 시간대에 갇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압박감 속에 일상을 보낸다. 운이 나쁘다면 폭격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암전 속에서…

그러나 이 책은 비극이 아니다. 결과 때문이 아니라 코니 윌리스라는 작가 자체가 비극도 희극으로, 가벼운 소품으로 만들 수 있는 재주를 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삶은 지난할지라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으며, 폭격과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일상은 지속한다. 더욱이 이 책은 경탄할 만한 솜씨로 시간 여행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통해 이야기를 능수능란하게 씨줄과 날줄로 엮어낸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 세계에서는 시간 여행자의 여정에 따라 미래가 과거일 수도, 과거가 미래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더 아련해지고 이야기의 색채는 진해진다.

언제부터 시작된 버릇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출장길 비행기 속에서는 이륙과 동시에 전자책 한켠의 『올클리어』를  열게 된다. 짧다면 몇 시간, 길다면 열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옥스퍼드 시간 여행자 시리즈에 푹 빠져 폴리와 고드프리 경의 마지막 대화를, ‘the day of VE’에 펼쳐지는 비니와 아이린의 말다툼을, 무엇보다 트라팔가 광장의 마지막 장면을 반복해서 읽고는 한다. 답답한 비행기 안이지만 내 마음은 자유롭게 세인트 폴 대성당과 화재감시원을, 성 매리 병원과 구급차 대원을, 마블 아치에 부는 바람을,  기쁨으로 가득 차 트라팔가 광장의 사자상에 뛰어오른 알프와 비니를, 마지막으로 함께 고난의 세월을 견뎠으며 앞으로 고난의 시간을 보낼 친구의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멀리서 인사를 건네는 이 책의 진짜 주인공을 떠올린다. 세상에는 이 책보다 더 완성도 깊은 문학성을 가진 소설도 많고, 이보다 더 훌륭한 플롯을 가진 소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내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인생의 책은 이 책이라고 자신해 마지않는다.

바다의 늑대

어린 시절과 다르게 중년이 된 지금의 나에게 독서가 주는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어린 시절의 독서가 새로운 세상과 지식을 열어주는 통로였다면, 지금의 독서는 물론 그런 기능도 있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거나 파편화된 기억을 묶는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바이킹의 역사란 부제가 달린 『바다의 늑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십 대의 나는 영국을 여행하던 중 레딩에서 사우샘프턴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던 적이 있다. 기차는 잠시 윈체스터에 정차했고, 부지불식간에 기차에서 내린 나는 정복왕 윌리엄 이전 시대 에식스 왕국과 초기 잉글랜드 왕국의 수도였던 이 도시의 한적함에 매료되었다. 앨프레드 대왕이라 불리는 바이킹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낸 왕을 기리는 도시를 걷는 동안 앙드레 모로아의 『영국사』에서 읽었던 데인겔트와 데인법 시행지역, 위대한 크누트 대제와 앨프레드의 관계에 대해서 잠시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이내 영국답지 않은 찬란한 햇살과 가을꽃 향기에 이내 모든 것을  털어버렸다.

 사실 이것만이 아니다. 테러호가 사라진 캐나다 배핀섬 인근에서 발견된 바이킹의 유적, 비잔티움 황위에 충성을 다한 바랑기안이라는 바이킹 근위대의 존재,  시칠리아 노르만 왕조의 유적, 슬라브족과 바이킹 혼혈로 알려진 키예프의 대공들과 루스의 근원,  드네르프 강 하류에 위치한 크림반도와 하자르족의 멸망. 중년에 이르기까지 나는 책과 여행을 통해 수많은 바이킹과 만났지만, 단편적인 정보를 엮어낸 계기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바이킹의 발호 같은 지극히 대서양과 지중해 관점의 지도를 통해 습득한 편견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바다의 늑대』의 가장 큰 장점은 여기에서 드러난다. 머릿속에 흩어진 바이킹의 정보를 완결된 흐름을 가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주기 때문이다.

『바다의 늑대』는 아쉽게도 역사의 통찰력이 담긴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바이킹이라는 불가해한 역사의 족적을 남긴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친절한 책이다. 넷플릭스 드라마인 ‘바이킹스’나 ‘라스트 킹덤’을  보고나서 각색과 역사적 사실을 조금 더 파헤쳐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책. 아울러 고백하자면 난 지금까지 동유럽의 바이킹은 비잔티움을 통과해 흑해로 진출했다고 생각했다. 롱십을 타고 북해에서 강을 따라 흑해와 카스피해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지금껏 이해하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은 좀 충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