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row mind

몇 해만에 녀석과 열람실에 마주쳤다. 졸업은 언제냐는 물음에 이번이 졸업이란다. 그러더니 다문 입술로 3월에 논산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까닭 없이 목이 매어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우정이란 굳건한 바탕 위에 서있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하기만한 사이이건만 딱 한번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2003년 2월의 어느 시험장이 떠올랐다. 점심 무렵 답답한 시험장을 벗어나 느린 걸음으로 십여 바퀴쯤 돌며 걸었던 운동장과 시험장을 빠져나오는 길에 발견한 산만양이 떠올랐다. 지친 마음으로 먹던 철에 맞지 않던 아이스크림의 맛이 그 날의 걱정과 함께 되살아 났다.

나나 주변의 친구들이나 모두 실패보다는 성공을 전제로 생각하도록 키워진 것 같다. 가능하면 실패의 두려움은 마음 속 깊이 숨기고 되도록 가능성을 바라보며 우직하게 뛰어가도록 키워진 것 같다. 위험과 보상에 관한 계산은 가장 깊숙한 곳에 숨기고 열정과 노력만 들어내도록 그렇게 배우며 자란 것 같다. 하지만 삶은 그 누구에게도 녹록하지 않다. 경쟁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치열해지며 한 번의 실수가 게임의 전체적인 국면을 결정한다. 모범적이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기에 나이를 먹을수록 삶은 더욱 모범적으로 변모해 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슬픈 눈으로 공허한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하루를 넘긴다. 한 고비를 넘기면 다음 고비는 더 어렵다는 사실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잘 알고 있지만 일단 한번 가는 데까지 ‘개겨’ 보는 거다.

넓은 등판때문인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내게도 두려움은 곧잘 찾아오는 손님이다. 누구의 말대로 세상은 ‘uncertain world’가 아니겠는가? 내일을 장담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경험으로 내일을 추측해 볼 수 있겠지만 내일은 랜덤워크 가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uncertain world’에서 장담은 철모르는 아이나 능숙한 거짓말쟁이들의 전유물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수많은 불운이 나를 비껴가고, 행운만이 나를 맞이할 것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장담해야한다.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두려움에 굴복해 시작도 해보기 전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속이 뻔히 들어나 보이는 장담이란 거짓말로 스스로를 꼬드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머리수가 아니라 집중력과 그것을 성과로 연결시키는 노련함이라고 밑천이 들어날 때까지 스스로를 속여야 한다.

사실 이런 현실을 직시하다보면 인생의 ‘좋은 시절’이 정말로 지나갔음을 깨닫게 된다. 남은 삶이 지겨운 허위와 속임수로 스스로를 달래며 견디는 것이라면 삶의 의미는 절반쯤 아니 극도로 퇴색해 버린다. 행복이라고 자위하는 짧은 만족들만이 남아 있음을 깨닫는 순간 인생의 신기루는 산산히 부셔진다. 결국 이런 상태에서 의존할 것은 사랑 하나뿐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난 ‘좋은 시절’이 모두 지나가 버렸다는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내 ‘좋은 시절’은 이제 겨우 반쯤 지나갔다. 게다가 난 어디까지 갈 수 있나하고 스스로를 속여보며 의연한 척 걷고 있다. 사랑 하나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잠시 현혹되는 순간들도 있고, 우아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사람들에게 눈이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직 나에게는 ‘개겨’ 볼 힘이 남아 있다.

2년 후 녀석이 제대할 무렵. 그때 내가 사는 술이 ‘개길’ 마지막 힘마저 소진해버린 사내들의 처량한 술자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정한 놈이라도 욕을 먹을지언정 꼬리를 말아버린 老狗가 되어 ‘인생 그런거지’라고 말하며 술잔을 털어 넣기보다는 시간이 너무 비싼 몸이라 술 한잔 살 여유가 없는 그런 인생을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정인군자 흉내는 집어 치우자. 서푼짜리 자존심보다 못한 것이 그 서푼짜리 겸손과 서푼짜리 배려다.

이제 한 주!

이제 한 주 뒤면 다시 학생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처럼 복잡한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은 없다던데 요즘 내가 바라보는 하늘은 이렇다. 주말에는 <퍼플 라인>에서 <마리 앙뜨와네트>,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으로 연결되는 Fr. story에 빠져봐야 겠다.

[#M_ To. | less..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가끔 타인의 이야기처럼 애둘러 말하는 내 이야기지 뭐겠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진리이기도 해. 수많은 사람들이 불필요한 경험으로 입증한 결과물이기도 하고. 네가 한번쯤 경험해 보고 싶다고 아무리 우겨도 내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막아 낼 터이니 소슬한 겨울 바람 맞으며 엉뚱한 상상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을 잃는 것은 무한한 희생을 업으로 삼은 종교인들에게도 해당없는 일이라고.

네가 어떤 풍경을 보고 그런 마음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아. 나역시 그랬으니까. 시험을 한 주 남겨놓은 지금쯤. 그러니까 2002년 12월의 둘째주를 내가 뭘하면서 보냈는지 너무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눈물나게 황량한 교정을 걸으며 듣게 되는 화려한 웃음 같은 것이 아닐까? 거기에서 비롯되는 자괴감과 한숨.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헛웃음만 나오더라. 원래 사소한 부분들의 운명이란 것이 그런 것 아니겠어? 자네나 나나 이미 심장이 타버리는 고통은 경험해봤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세나. 한번만 더 겪고나면 노쇠해져 쓰려질지도 모르거든…

그 옛날에 지녔던 햇살처럼 환한 미소는 아니지만 드문 웃음 속에서 여전히 멋진 자네의 웃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그 웃음이라면 아직도 특정 연령층에서는 매력으로 통하니까 나에게 매력 따위는 하나도 없다고 우울해 하지 말라고. 니콜리처럼 뭇사람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에드워드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과 노인들에게는 건실한 청년이 될 수 있는 법이야. 음 이것은 슬픈 이야기인가? 하지만 그 젊음이란 것이 고작 십 년 주기 밖에 안되는 것이잖아? 로맨스의 시작은 언제든 결코 늦지 않은 것이라잖아?

황량한 대기 속에서 외로움을 느꼈던 그 날 견고한 성실성과 신중한 통찰력, 겸손과 배려의 중요성, 자만과 확연하게 구분되는 자부심이야 말로 이십대에 얻어야 할 ‘진짜배기’란 사실을 깨달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해. 물론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지만 말이야. 어느 대문호의 일기에서 읽은 것인데 사랑 없는 삶은 빈곤하지만 사랑만 있는 삶도 그만큼 빈곤한 법이라고 하더라. 가능성을 처음부터 거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A posse ad esse’라고 생각해.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