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라구

장마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하루쯤 태양이 그 모습을 찬란하게 들어낼 때에는 길고 지루했던 장마가 끝나고 진짜 여름이 시작된 것 같은데. 다음날이면 흐릿한 날씨와 높은 습도,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내리는 비에 시달리곤 하지.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기대가 매우 근거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여. 한반도 남부지역을 오르내리는 강대한 두 기단의 힘겨루기가 지속되는 한 장마는 지속될 테니까. 다시 말해 태양은 장마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말이지.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많은 것 같아. 결과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않는 상수항임에도 변수로 착각하는 것들이 꽤나 많은 것 같아. 곰곰하게 생각해 보면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들에 너무 열중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어.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마저도 끊임없이 농락당하는 것을…

언제인가 싸이의 다이어리에 쓴 기억이 있는데 내 스스로가 평가하는 나의 실행력은 30점 정도였어. FM은 아니지만 성과면에서는 FM보다 늘 나았다고 자부하곤 했었는데 냉정하게 평가한 나의 실행력을 보니 웃음 밖에 안나오더라. 하지만 낮은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해. 낮은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지. 낮은 실행력이 문제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문제 해결 방법을 탐구하게 되지만, 이것을 문제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기 발전과는 안녕을 고했다고 봐도 무방하지.

어제 저녁 자네의 옛집에 보관되어 있던 글들을 워드의 노트패드 기능으로 묶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옛 글들을 읽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자네가 입대하던 그 시기만 하더라도 딱 1년만 더 학교를 다닐 요량이었고, 지금 우리 나이 무렵에는 CPA에 행시까지 패스한 인재가 되리라 다짐했는데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이제 막 공부를 시작해 놓고는 그마저 힘겨워서 잔머리를 쉴새 없이 굴리고 있지않는 것 같아. 부족한 실행력을 고취시키기 위해 [정신적 마약]을 투약하고, 내 경우에 있어서는 비겁한 짓도 서슴지 않고 있는 것 같아.

사실 무슨 말을 써야할지 모르겠어. 다만 내가 진짜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강인한 껍질 속에 숨겨진 나약함에 주목하다 보면 너 스스로를 잃어버릴 거란 사실이야. 아직까지는 무모하게 도전해도 되는 나이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좋은 나이이기도 하고.

주어진 목표와 해야할 일들이 많은데 왜 끊임없이 옆을 돌아보는지 모르겠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옆을 돌아보고 한숨 짓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최소한 중간쯤 갔을 때 옆을 바라봐야 폼이 나는 법이라고.

게임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앞으로 숨가쁘게 달려야 할 날들은 이제 겨우 첫머리를 살짝 드러내었을 뿐이야.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그 끝이 얼마나 멀리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몰라. 그러니 뭐든지 속단하지 말라고. 섣불리 결과를 오판하고 자학하기보다는 그 시간에 보다 많은 정보를 모아 게임을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나의 오랜 친구에게

아직도 선셋대로의 Perfect Year를 듣고 있노라면 눈꼬리가 심하게 떨려온다. 이성은 [나트륨마그네슘 부족이야]를 연발하지만 감성은 아직도 내가 살아있기에 그런다고 말한다. 아직 살아 있기에 눈꼬리가 떨려오는 것이라고.. 먼 훗날에는 그것마저 멈추겠지만 지금은 아직 살아 있노라고..

성우의 싸이를 발견했다아니 발견했다기 보다는 지금껏 찾지 않았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찾으려는 의지가 나에게 있었다면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키워드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나였으므로 이제야 발견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2000년 어두운 극장의 대기석에서 발음해주던 녀석의 아이디를 까먹었다는 것은 나조차 요령부득이다. 8살 때 외운 녀석의 집전화를 오늘까지 또렷하게 기억하는 내가 6개 문자로 구성된 아이디 하나를 잊어버렸을 리 없다.

사실 많이 아쉬웠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에 가서 원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한평생 그 부족함을 채우지 못한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난 경찰서 앞 사거리 신호등 옆을 지나칠 때면 그 날의 약속을 기억하곤 한다. 12살 꼬맹이의 약속이지만 난 그 약속의 반을 지켰고 온전히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기에..

다른 친구라면 그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만이 중요했지 그가 어떤 길을 걷고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던 듯 싶다. 다른 길을 걷고 있더라도 그와 나의 우정의 밀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친밀함이 우정 이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예의가 없어지고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쉽게 말하자면 그가 나와 같은 길을 걷기를 희망한다. 혼자 길을 걷기 보다는 그에게 의지하며 길을 걷고 싶기 때문이리라. 늘 저 잘난 맛에 취해 사는 것처럼 보여도 힘들고 고된 길을 걷고 있노라면 그 길을 같이 걸어줄 친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녀석이 아닌 다른 친구였더라면 견실한 카운셀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녀석에게만큼은 할 수가 없었다. 어딘지 삶의 중요한 축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같은 길을 걷기로 약속하고 점 찍어 놓은 친구 녀석의 반항에 솔직히 화도 났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내 삶에 가장 중요하던 믿었던 또 한 사람을 잃어버렸다.

시간이 흘렀다. 녀석에게도 시간이 흘렀고 나에게도 시간이 흘렀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아파했으며, 무엇보다도 원철군을 만났다.(요즘 마음에 안 들어. 이 폐인!!) 그리고 며칠 전 녀석의 싸이로 가는 키워드를 머리 속에서 꺼내 들었다. 물론 기청군의 한마디가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사진을 보았다. 글씨를 보았다. 문체를 보았다. 너무나 익숙한 존재라 단지 그것만으로도 머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졌다. 아주 작은 버릇마저도 여전히 모두 기억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티백에 메모된 숫자 하나를 통해서 내가 살려낸 기억이 얼마나 많은 줄 아는가? 18살 준호에게 보낸 내 편지를 네가 읽고 찬익스러운 문체라고 평했던 것 까지 기억한다고.. 16살, 연합고사 일주일 전 내가 건네준 초콜릿을 먹던 네 모습도 기억하고, 21살 같이 [미인]을 봤던 비오던 그 날도 기억한다고.. 10살 때 입었던 너의 세로줄 무늬 자켓마저 기억하고 있더군..

어쩌면 시간이 나에게 지혜를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 나와 같은 길을 걷자고 강요하지는 않을 거야. 다만 네가 가고자 하는 길이 조금 순탄하고 편한 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이것이 최선이라고 강요하던 버릇도 이제는 사양하고 싶어. 너에게는 네가 걷고 싶은 길이 있고, 나에게는 내가 걷고 싶은 길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 비록 다른 길을 걷더라도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우정이 희미해지는 것은 아닐 진데 너한테만은 왜 늘 많은 것을 바라고, 많은 것을 요구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미안해. 그리고 언제나 이것을 읽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온 것을 축하해..

기다림은 지루하다

당신이 보고 싶습니다.
이유따위는 묻지 말아주세요.
연유를 알았다면 기다리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인내심만큼은 남다르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런 나의 자부심도 오늘에 와서는 종언을 고합니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아무말 없이, 아무런 행동없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바닦까지 껴져 버리거든요.

불안감과 초조, 그리고 무력감.
이런 느낌이 나에게 얼마나 낯선 것인지
당신은 모르실 것입니다.

그런데 당신을 기다리고 있노라면
이런 감정이 나를 스쳐지나 갑니다.
그것도 끊임없이.

거울을 보고 있노라면
나조차 놀랄 정도로 냉정했던 내 마음이
당신을 생각하면 선량하게 풀려 버립니다.

당신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당신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익숙한 거리를 걷고 있을 당신을 상상하노라면
삶은 즐거운 것이 됩니다.

그런데 당신은 절대 모르겠지요.
표현하지 않은 마음 따위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삶의 법칙일테니까요.

당신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책임도 무겁지 않을텐데�
무정한 당신은 늘 나를 기다리게 만듭니다.
왠지 훔쳐오고 싶었다. 내가 쓴 것 같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