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SF 영화 가운데 하나인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바이센터니얼 맨’도 아이작 아시모프의 작품이다. 대학생 때 본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 덕분에 아시모프는 수능의 지문으로 등장하는 로봇 3원칙을 제창한 소설가에서 사람들이 실제 읽는 작가 되었다. 사실 우리나라에 『파운데이션』이 출간된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시모프는 그리 유명한 작가는 아니었다. SF라는 장르가 문학으로 인정받기에는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나에게는 어땠을까? 아시모프가 『파운데이션』에서 보여준 ‘심리역사학’과 ‘파운데이션’을 통한 인류 문명의 회복이라는 주제가 너무 유치해 보였다. 대개의 SF 소설이 그렇듯 노벨라에나 어울리는 짧은 단편을 쌓아 올린 구성도 SF의 한계를 보여주는 듯했고, 인물의 내면도 너무 단조로웠다. 결국 반쯤 읽다가 포기한 소설이 되었다. 그 후로 십 년이 더 지난 어느 시기에는 ‘루카스 비판’을 공부하며 ‘심리역사학’과 조금은 비슷해 보인다는 생각했던 것 같다. 애플TV+로 스트리밍 되는 ‘파운데이션’을 보기 전까지 내가 기억하는 이 소설과 나의 약사(略史)는 이랬다.
텔레비전 시리즈인 ‘파운데이션’은 소설과 소재만 같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반쯤 졸면서 첫 화를 보고, 두 번째 화에 접어들었을 때나 내가 알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달았다. 셀던의 ‘역사심리학’이라는 소재를 제외하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사실은 분명했는데 원작 『파운데이션』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결국 텔레비전 시리즈를 읽기 위해 소설을 서재에 들였다. 프랭크 허버트의 ‘듄’ 시리즈도 서재에 들였고, 필립 딕도 있으니, 아시모프도 응당 함께 있어야 하는 법이라고 제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말이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파운데이션』은 시작되었다.
총 7권의 이야기 가운데 지금까지 클래식에 해당하는 전반부의 세 권을 읽었다. 이제는 시퀼과 프리퀼에 해당하는 4편이 남았다. 두께로 따지면 고작 1/3쯤 온 셈이지만 총평하자면 소설과 시간은 때로 역설적 관계를 보여준다. 90년대에는 매우 낡아 보였던 이야기가 30년쯤 뒤에는 낡기보다 시간의 흐름에 살아남은 날카로운 통찰이 돋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걸작이 걸작인 이유는 시간의 흐름 속에 그 가치가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90년대 초반 팩트 소설과 함께 뜨거웠던 SF가 고전이 될 수 있냐는 물음은 그 당시 고민할 가치가 없었다.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계속 읽히고, 시간의 흐름에도 새로운 독자에게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선사한다면 고전이 되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글로벌리제이션’과 ‘신자유주의’라는 ‘9.11’과 함께 사라진 개념이 활보하던 지난 세기에는 30년 뒤에는 물리적인 측면에서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태동하기 시작한 정보기술을 밑바탕으로 우주기술과 에너지 기술이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해서 생활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발전에도 불구하고 정보기술은 속도와 공간의 압축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현실 자체를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에 실패했고, 우주를 향한 타이탄의 매머드급 투자에도 인류의 영역은 달과 지구 사이에 머무르고 있다.
당장 끝날 것 같았던 화석 에너지의 시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며, 되려 기후변동 앞에서 과학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기술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불러왔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행위가 일상이 아닌 취미가 될 만큼, 딸아이가 메시지를 보낼 때 타이핑 보다 구술(口述) 빈도가 더 높은 것처럼 말이다. 시차 때문에 발생하는 생활 시간대의 차이를 제외하면 지구상에서 공간은 같은 평면이 되었다.
그러나 『파운데이션』의 가치는 90년대의 낙관이 사라지고 발전과 제자리걸음이 공존하는 지금에서야 더 큰 의미를 지닌다. 미래를 향한 큰 도약을 위한 잠시간의 휴지기인지, 아니면 인류가 활력을 잃고 느리지만 꾸준한 쇠퇴가 시작되는 지점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 속의 ‘진보’ 또는 ‘ 믿음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역사심리학’이 연구 주체로 삼는 군상(群像)인 ‘인구’가 아닌 개인들이 상황 속에 발휘하는 재치와 용기다. 그렇기에 오래된 이 소설은 고전으로, 30년 뒤에 다시 읽어도 충분한 의미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