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Dune)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하나는 90년대 후반에 이미 『듄 』을 읽고 있었다. 정식 판권이 아닌 해적판으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풀빛이라는 이름의 출판사였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이번에 개봉할 영화까지인 모래행성까지 겨우 읽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이었으니 말이다. 사구(沙丘)에 해당히는 ‘dune’이란 단어를 수능이 아닌 책 제목으로 만나는 것도 신기했으리라. 친구와 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개봉을 보며 제다이 따위 베네 게세리트의 아류이며, 아나킨에게 운운하는 포스의 균형 따위 쿼사츠 헤더락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기억도 난다.

 『듄』을 다시 읽은 것은 대학생이던 어느 겨울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그 겨울에는 ‘모래행성’을 넘어 ‘듄의 아이들’까지 읽었던 것 같다. 이렇게 부정확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듄』을 읽었던 중도관의 정경과 분위기는 생각이 나는데 막상 이야기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런 책들이 늘어난다. 읽은 때와 장소는 기억나는데 책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 다시 읽을 때까지  망각의 저편에 남겨져 흐릿한 것들 말이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17권에 이르던 책들이 6권으로 정리되어 다시 나왔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겠다는 마음 반,  서재에 넣어놓으면 누군가 읽을 거라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먼저 사들였다. 이런 마음을 먹은 것은 절판된 흔블로우 시리즈, 앰버 연대기 같은 다시 읽지 못할 책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한몫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꺼내보지 않더라도 추억의 소품으로 한 질쯤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도 한몫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감독들의 뮤즈인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한 덕분에 아내가 먼저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단순히 읽기 시작한 정도가 아니라 마지막 권 이야기까지 독파했다(대략 4,500 페이지 분량이다). 매그레 시리즈를 다 읽는 모습을 보며 느꼈지만 아내도 책에 관해서라는 끝장이 뭔지 아는 사람 같다.

사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망각 저편에 묻혀있던 내 기억을 전혀 꺼내 오지 못했다. 내가 상상한 칼라단은 열대와 아열대 사이에 있는 공간이었고, 인공지능을 배격하는 우주판 러다이트 운동인 버틀레리안 지하드의 결과로 아트레이데스의 본거지를 과학이 고전 유물로만 남아 있는 스팀 펑크의 성으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강퍅하지만 신의 있는 매와 같은 레토 공작은 사라졌고,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는 대협약과 스파이스, 우주조합과 초암공사, 카인즈가 프레멘에게 꾸게 만든 꿈도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 그 자체는 재미나고 멋진 영화였지만 기억의 문을 두들기다 만 것 같았다. 지독한 감기로 골골거리는 설 연휴 동안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읽었다. 애플TV+의 드라마가 내가 알던 소설과 달랐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제야  『듄』에 시선이 갔다. 이제야말로 다시 한번 시작할 순간이 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듄』을 세 번째로 다시 읽는 동안 기억이 서서히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야 그제야 내가 기억하는 인물들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레토 공작, 굳세지만 그만큼 연약한 레이디 제시카, 검술의 대가이자 멘타트이며 종국에는 세번째 인물이 되는 아이다호, 아이러니의 대가인 거니, 닻을 잃어버린 하야트. 무앗딥의 고뇌와 한계. 어느 순간에도 강인한 프레멘인 차니. 사랑받지 못하는 이룰란, 비극의 알리아와 아라키스를 변화시키는  궁국의 레토. 이번에 개봉할 영화에서 어디까지 다룰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은 영화와 다르다. 영화 같은 스케일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장대한 이야기의 첫 서두로 이보다 훌륭한 시작은 없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