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와 훈

어린 시절부터 로마사는 재미난 역사이지만 굳이 나누자면 제정 후기보다는 제정 황금기가, 제정 황금기보다 공화정의 역사가 더 재밌다고 생각했다. 오현제 시대 이후 로마는 반복된 내전의 시대를 맞이하였으며, 제정 후기 본격적인 만족들의 침략 시대에 접어들면 실체를 파악하는 것조차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대광서림 판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이런 내 생각에 쐐기를 박았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인과관계가 불명확하고 서술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의 멸망을 위한 존재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동쪽에서 등장한 ‘훈’의 존재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피터 히더의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을 서재에서 꺼내 드는 것이 쉽지 않았던 이유도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다행히 올봄에는 이시차다의 『중국중세사』를 읽으며 ‘팔왕의 난’ 이후 서진의 몰락을 가속한 5호 16국을 드디어 머릿속에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서진을 멸망시킨 호한의 유연과, 염위에 의해 기세가 꺾인 흉노와 갈족이 중국사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점차 작아지는 것에 재미를 느꼈고, 여름에는 에드워드 루이스의 『하버드 중국사 진・한』을 읽으며 한나라와 흉노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깊어졌다. 이제야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에 이십 년 가까이 생각만 해왔던 르네 그루세의 『유라시아 유목민족사』를 사들였다. 『흉노와 훈』을 서점에서 발견한 것은 이런 즈음이었다.

『흉노와 훈』은 내전을 거쳐 분리된 서흉노가 스텝에 머물며 흉노의 정치적 정체성은 유지한 채 광범위한 종족 융합이 일어났다고 정의한다. 중요한 것은 종족이 아니라 흉노가 지닌 초원 제국으로서의 정체성이며, 이 정체성을 지닌 서흉노는 아틸라로 대표되는 로마사에 굵직한 영향을 미친 ‘훈’과 사산 페르시아에 거대한 영향을 미친 ‘백훈(에프탈)’으로 분리되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것이 요지다. 광범위한 종족 융합을 받아들이고 나면 이란계 민족인 ‘알란인’과 ‘훈’의 관계도 어렵지 않다. 몽골리안과 이란계 가운데 외모에 어느 쪽의 피가 더 강하게 영향을 미쳤냐도 중요하지 않다. 아틸라의 이름과 피부색도 궁극적으로는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부락 단위로 나뉘어졌던 게르만족의 국가 형성에 미친 초원의 영향력이다.

위・진시대 남흉노와 병주를 상황을 고려하면 서로마의 최후를 책임졌던 아에티우스와 오레스테스와 ‘훈’의 관계도 보다 쉽게 그려진다. 궁기병과 등자를 도입한 중기병을 통해 충격력과 기동성을 모두 갖춘 군대를 이기는 방법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훈족’ 과 ‘알란인’은 ‘팔왕의 난’ 당시 5호가 그랬던 것처럼 충성도에 차이는 존재하지만 점차 ‘로마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권력이 되었을 것이다. 한고제가 백등산의 패배로 세폐를 지급했던 역사는 서쪽 로마에서도 반복되었을 것이다. 원정을 통해 얻은 부를 재분배하는 권력의 작동 방식과 경제적 분배도 한 세기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동과 서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흉노와 훈』을 읽기 전까지 5세기 유럽의 역사는 ‘신의 채찍’, ‘재앙’으로 묘사되었고, 공포에 마비된 서술은 실체를 이해하는 것에는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 세기의 차이가 존재하고, 인종적 구성에서는 조금 차이가 존재할지라도 동과 서에서 발생한 역사적 사건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파악하면 ‘흉노’와 ‘훈’은 미지의 존재라기 보다는 보편적 역사의 흐름으로 보인다. 스키타이에서 흉노로, 나중에는 유연과 돌궐로, 몇백 년 후 거란과 여진, 몽골로 이어지는 초원의 정체(政體)라는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이 일목요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