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그것이 갓 인쇄된 것일지라도 오래되어 눅은 종이냄새를 맡게 된다. 사실 환각처럼 머리를 맴도는 이 향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소설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점이다.
빌 벨린저의 소설에는 레이몬드 챈들러가 창조해낸 필립 말로우 같은 캐릭터가 없다. 무의미한 가정이긴 하지만 빌 벨린저의 소설에 필립 말로우 같은 시대의 아이콘이 존재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의문을 제기해보는 일은 독자로서는 꽤 매력적인 체험이다. 말로우 같은 캐릭터가 있었더라면 조금 더 쉽게 소설에 몰입되지 않았을까? 섬세한 배경묘사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낯선 시대 낯선 거리를 걷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돌이켜 보면 빌 벨린저에게 필립 말로우는 어울리지 않는다. 벨린저의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평범의 범주에 속한 이름 없는 사내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에게 필립 말로우 같은 전형성과 입체성이 동시에 부여된다면 벨린저의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안개 낀 모호함은 사라지고 우리는 흔한 누아르 한 편을 더 얻게 되었을 테니 말이다.
『연기로 만든 초상』은 한 여자의 변신을 그린 연대기이자 한 남자의 추적을 그린 서스펜스 물이다. 사실 병렬 구성을 지닌 이 소설에서는 어느 쪽에 마음을 쏟느냐는 전적으로 독자의 마음이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시카고의 이민자 가정에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비록 허무한 것일지라도-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다른 삶을 살게 된 한 여자의 여정과 어리석음에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는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로 나누어질 수 없는 미묘한 경계의 소설들이 있다. 빼어남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이야기에 대한 절망적인 탐식을 충족시켜주는 소설들이 바로 이런 소설들이다. 빌 벨린저의 소설은 이 영역에 속한다. 고전으로 살아남거나,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리라 예상하긴 어렵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쫓아 소설을 섭렵하는 바보들에게는 그가 묘사한 삶과 배경만으로도 눈여겨볼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