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호의 악몽

오랜 시간을 투입했지만 결국은 실패로 끝맺음이 된 프로젝트를 마음속에서 흘려 보내고 나니 이제야 다시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춘천과 서울 사이의 길 위에서 보낸 3년 동안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던 애서가의 마음은 일에 온 마음을 뺏기는 동안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사라져 버렸다. 결국 이번 책도 2015년에 읽기 시작해서 2021년에 마무리를 지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냐면 우습게도 170년 전 사라진 진짜 ‘테러호’가 북서항로의 수중에서 발견되었을 정도이니 더 부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댄 시먼스는 내가 코니 윌리스와 함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일리움』, 『올림푸스』, 『히페리언』 시리즈까지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은 모두 SF소설의 수작이었고, 내 마음에 신선한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테러호의 악몽』 역시 내 기대를 벗어나지 않았으며, 되려 북서항로 개척이라는 북극 탐험과 결합하며 작가의 다른 SF소설에서 찾기 어려웠던 사실주의적 색채까지 묻어난다. 미비한 준비와 탐험대장인 프랭클린의 우유부단한 판단력으로 애초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탐험대는 겨울에는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극빙에 두 척의 함선과 갇히게 된다, 최신의 식량 보존 기술인 줄 알았지만 치명적인 보툴리누스균과 납중독을 일으키는 깡통 식량, 괴혈병으로 무너지는 육체들, 그 가운데 댄 시먼즈의 전매특허처럼 나타나는 빙하의 괴물-어떻게 보면 히페리온 시리즈의 슈라이크 같은 존재- 은 해조차 들지 않는 겨울 부빙에서 탐험대를 옥죄인다.

프랭클린 경의 북서항로 탐험은 19세기 탐험의 역사에서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내는 신비로운 사건에 속한다. 기범선으로 개조된 최신 탐험선 두 척이 실종되었다는 점에서, 두 척의 실종선에 참여한 탐험대원들 다수가 북극과 남극 탐험에 참여한 베테랑이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당대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왔고, 후속 탐험대에 의하여 보고서와 일부 대원들의 무덤, 무너진 캠프가 발견되면서 궁금증은 증폭되었다. 이누이트들은 캐나다에서 북해로 흘러드는 백강 어귀에서 실종된 대원들이 마지막으로 목격했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후속 탐험대원들은 실제 이들이 사용하던 소품들을 발견하기도 했다. 바다 한가운데 극빙에서 탈출하여 240여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사라진 탐험대가 남긴 잔해는 오늘날 극지탐험의 유물이 되었다.

댄 시먼스는 이 사건을 멋진 플롯과 섬세한 묘사로 이누이트 설화와 결합하며, 실존 인물인 테러호의 함장 크로지어를 통해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한다. 여름이 와도 녹지 않는 극빙에서 괴물과의 조우, 극빙의 압력에 쪼개지고 있는 함선을 탈출하는 선원들의 분투, 끝내 추위와 괴혈병, 식량 부족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반란과 식인. 그리고 밝혀지는 괴물의 정체를 통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탐험대에게 새로운 역사를 부여한다.

사실 이들의 실패는 극지탐험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두 척의 함선, 백 수십 명의 숙련된 선원들로도 – 사실 19세기 태평양의 대부분의 섬은 이 정도 인원으로 발견되었다- 극지를 정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는 인식을 토대로 유럽인들은 이누이트 족의 극지 생존 기술을 습득했으며 결국 북극과 남극의 극점 발견, 북서항로를 개척에 성공했다. 북서항로의 상업적 가치는 별론으로 하고서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