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중세사

딸아이가 태어날 무렵 그 바쁘면서도 한가한 시간에 아내의 산후조리를 도우며 네이버 블로그에서 남북조 전쟁사라는 연재물을 읽게 되었다. 전공자가 아닌 이상 비슷하겠지만 중국사의 5호 16국 시대와 남북조의 역사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학을 떼게 만드는 거대한 수렁이다. 다섯 이민족이 세운 16개의 나라들. 심지어 몇 년 안에 망한 단명 왕조들은 16국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국사 전공자가 자치통감을 기반으로 서술한 이야기는 기전체 역사 에세이처럼 재미났으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다. 전자책으로 자치통감을 읽게 된 것도 이 블로그의 영향이다. 하지만 재미와 별개로 개개의 이야기는 머릿속에 남았지만, 전체 흐름에 대한 이해는 늘 부족했다. 이 시대에 대한 기본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호전을 역사로 읽다』의 절판에 놀라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남은 전작을 사들였고,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을 읽고 나니 이치사다라면 언제나 쉽지 않았던 이 시대를 관통하는 흐름을 잘 설명해 줄 것 같았다. 몇 년째 읽고 있는 『중국통사』는 잠시 무시하고 말이다. 이렇게 시작한 책이 『중국중세사』이다. 역제는 『중국중세사』이지만 이 책의 원제는 『대당제국 : 중국의 중세』이다. 한나라 말기부터 시작된 역사적 흐름이 어떻게 위진남북조로 이어졌고, 그 시간 동안 쌓인 요소들이 어떻게 당(唐)이라는 국가를 형성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75%는 후한말부터 수나라의 통일까지를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역제가 원제보다 책을 더 잘 설명하는 제목일지도 모르겠다.

오랫동안 나는 장거리 원정이 가능했던 전한이라는 국가가 후한과 삼국시대에 접어들면서 병참이 군대의 전략을 결정하게 만들 정도로 무너졌는지에 대한 설명을 기대했다. 어느 역사가는 전한 시대는 잘 발전된 상업망과 국가 단위의 병참 시스템이 존재했기에 무제의 흉노와 고조선 원정이 가능했다고 했고, 후한 시대에는 황건적의 봉기 이후 상업망의 붕괴하였고 오랜 평화로 병참 시스템 자체가 부재했기에 삼국의 분쟁이 그토록 오래 지속되었다는 설명이 그나마 내가 읽은 최선의 설명이었다. 결국 관도대전의 승패가 오소의 군량기지 습격으로 갈린 것도, 둔전제를 광범위하게 시행한 위무제(조조)가 삼국 통일의 기반을 닦은 것도 이를 통해 부족하게나마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치사다는 향(鄕) 정(亭)이라는 춘추전국시대까지 연원이 올라가는 농경 도시국가의 잔재인 지방자치 단위를 설명한다. 아울러 거주지인 도시와 배후지인 농경지로 구성된 이 농경도시 사이를 연결하던 상업망이 붕괴하며 호족과 귀족 중심의 장원제도가 정착되는 사회상을 섬세하게 풀어나간다. 서역 원정을 통해 열린 무역로는 되려 무역역조를 불러일으켰으며, 전황(錢荒)이 일어나며 상업은 쇠퇴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장원은 자급자족을 기본으로 하는 닫힌 세계가 되었다. 잉여생산물과 유통망이 사라진 세계에서 병참의 효율성은 당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으며, 둔전조차도 국가가 운영하는 조금 큰 범위의 장원에 불과했다는 설명을 통해 이 시대의 특성을 설명한다.

한발 더 나아가 향(鄕)・정(亭)・리(里)・린(隣)에 속하고 호적을 통해 관리되던 인구가 호족의 장원에 속한 사실상의 객(客)과 부곡(部曲)이 되고 이는 군사・조세제도의 붕괴를 일으켰으며, 이에 대응하고자 이민족 용병이 삼국시대와 팔왕의 난을 토대로 중국에 자리 잡으며 5호 16국 시대가 열렸다는 주장을 차분하게 설파한다. 후한 병주(幷州)를 중심으로 자리 잡은 흉노계가 전조(前趙)을 세우고 동진의 패망을 일으킨 것도 갈족의 석륵이 전조를 패퇴시키고 후조(後趙)를 세운 것도, 후조의 몰락을 기회로 저족과 선비계가 화북 일대에 자리잡은 것도 모두 필연적인 결론이라 느낄 수준으로 말이다.

이민족과 장원중심의 귀족 경제, 정치적 혼란과 권력 지향주의, 권력이 군사력에서 나오는 군인황제의 시대는 서구의 로마나 중국의 5호 16국・남북조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와중에 위문제(조비)가 만들어낸 선양의 전통과 전조(前朝) 살해의 악습, 도살자 황제와 군사 쿠데타, 귀족 계층의 정치적 한계와 이를 계기로 자리 잡은 관학(그리고 과거로 이어지는 관리 선발)까지 적은 분량이지만 이 책이 설명하는 범위는 다채롭고 풍부하다.

북조의 이민족과 군사적 전통은 무천진 군벌(관롱 집단)을 통해 수・당의 성립에 영향을 미쳤고, 북위(北魏)의 균전제와 북주(北周)의 요역제도는 부병제와 조・용・조라는 군제와 세제로 발전했으며, 남조 소량(蕭梁)의 관학은 과거라는 관리임용제도로 완성된다. 결국 당을 이루는 주요축이 이치사다가 서문에서 다루는 긴 골짜기의 시대에 완성되었음을 책의 끝머리에 가서는 실감하게 된다. 당의 몰락의 시작점인 안사의 난과 환관의 시대, 황소의 난으로 촉발된 5대의 혼란은 잠시 잊자. 여기까지 나가기에도 벅차니 말이다.

끝으로 이 책을 읽으며 이제는 5호 16국과 남북조, 5대까지의 모든 국가의 흥망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1996년 간행된 식자로 인쇄된 책을 읽는 경험도 오랜만이었고, 번역되지 않은 한자로 쓰여진 지도와 표를 읽은 재미도 쏠쏠했다. 덧붙여 이제야 박한제의 호한체제론을 읽을 준비가 된 같다.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좋은 책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가치를 잃지 않는 책이다. 좋은 역사책은 먼 과거의 이야기를 읽고 있음에도 오늘의 이야기 같은 기시감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수호전을 역사로 읽다』의 절판에 놀라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남은 전작을 사들였는데 『과거, 중국의 시험지옥 』은 이런 정의에 딱 맞는 책이다.

이치시다는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청조를 배경으로 과거 시험의 절차를 따라간다. 생원이 되기 위한 학교시인 현시, 부시, 원시, 중간점검인 세시, 거인이 되기 위한 과거시인 과시와 향시, 진사가 되기 위한 거인복시와 회시, 황제가 주관하는 회시복시와 전시, 한림학사가 되기 위한 조고까지 아찔한 과거 시험을 따라가고 있노라면 나 또한 몇 번은 과거에 낙방하고, 고생 끝에 진사가 되고 마침내 관리가 된 기분이다.

허생원이나 황진사 같은 우리에게 익숙한 호칭은 잠시 잊자. 조선의 생원・진사와 명・청대 생원・진사는 같은 단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치사다는 비단 시험의 절차뿐만 아니라 시험장의 풍경까지 세세하게 그려낸다. 향시와 회시가 치러지는 공원(貢院), 전시가 치러지는 태화전을 중심으로 그려내는 수험생의 일화는 풍부하고 재미난다. 아니 어느 순간에는 으스스하고, 어느 지점에서는 너무 깊게 이입하여 수험자들이 겪는 고난이 내 고통처럼 생생하다.

사실 이 책의 가장 놀라운 점은 1963년 담담하게 그려낸 사실이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의미를 가진다는 데 있다. 교육과 관리 임용이라는 과거제도의 두 가지 측면을 꿰뚫으면서 부실한 공공교육제도, 부와 명예를 보장하는 평생직장인 관리를 희망하는 방대한 지식계급과 부족한 관직이라는 미스매칭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이런 문제는 비난 청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중국, 일본, 우리나라 모두에게 적용된다. 과거 대신 대학 졸업자를 현대 중국에 끼워 넣으면 방대한 대학 졸업자들에게 돌아갈 충분한 (좋은) 직업 수의 부족을 ‘新하방정책 ’으로 이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우 첫 직장이 평생직장-혹은 직업-이 되는 경제구조에서 좋은 ‘첫 직장(직업)’을 구할 기회가 되는 대학이 왜 그렇게 첨예한 문제가 되는지 충분한 설명이 된다. 조선의 과거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중국의 과거는 1904년 생명력을 다한 것처럼 보이지만 2024년에도 이름과 절차가 바뀌었을 뿐 과거라는 경쟁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듄(Dune)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나 고등학교 시절 친구 하나는 90년대 후반에 이미 『듄 』을 읽고 있었다. 정식 판권이 아닌 해적판으로 기억되는데 아마도 풀빛이라는 이름의 출판사였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이번에 개봉할 영화까지인 모래행성까지 겨우 읽었던 것 같다. 어디까지나 고등학생이었으니 말이다. 사구(沙丘)에 해당히는 ‘dune’이란 단어를 수능이 아닌 책 제목으로 만나는 것도 신기했으리라. 친구와 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개봉을 보며 제다이 따위 베네 게세리트의 아류이며, 아나킨에게 운운하는 포스의 균형 따위 쿼사츠 헤더락의 변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던 기억도 난다.

 『듄』을 다시 읽은 것은 대학생이던 어느 겨울이었다. 기말고사가 끝난 크리스마스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그 겨울에는 ‘모래행성’을 넘어 ‘듄의 아이들’까지 읽었던 것 같다. 이렇게 부정확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듄』을 읽었던 중도관의 정경과 분위기는 생각이 나는데 막상 이야기는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런 책들이 늘어난다. 읽은 때와 장소는 기억나는데 책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는, 다시 읽을 때까지  망각의 저편에 남겨져 흐릿한 것들 말이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 17권에 이르던 책들이 6권으로 정리되어 다시 나왔다. 이번에야말로 끝을 보겠다는 마음 반,  서재에 넣어놓으면 누군가 읽을 거라는 마음으로 누구보다 먼저 사들였다. 이런 마음을 먹은 것은 절판된 흔블로우 시리즈, 앰버 연대기 같은 다시 읽지 못할 책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한몫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꺼내보지 않더라도 추억의 소품으로 한 질쯤 간직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생각도 한몫했을지 모르겠다. 다행히 감독들의 뮤즈인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한 덕분에 아내가 먼저 관심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단순히 읽기 시작한 정도가 아니라 마지막 권 이야기까지 독파했다(대략 4,500 페이지 분량이다). 매그레 시리즈를 다 읽는 모습을 보며 느꼈지만 아내도 책에 관해서라는 끝장이 뭔지 아는 사람 같다.

사실 드니 빌뇌브의 영화는 망각 저편에 묻혀있던 내 기억을 전혀 꺼내 오지 못했다. 내가 상상한 칼라단은 열대와 아열대 사이에 있는 공간이었고, 인공지능을 배격하는 우주판 러다이트 운동인 버틀레리안 지하드의 결과로 아트레이데스의 본거지를 과학이 고전 유물로만 남아 있는 스팀 펑크의 성으로 상상했기 때문이다. 강퍅하지만 신의 있는 매와 같은 레토 공작은 사라졌고, 소설의 배경을 설명하는 대협약과 스파이스, 우주조합과 초암공사, 카인즈가 프레멘에게 꾸게 만든 꿈도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 그 자체는 재미나고 멋진 영화였지만 기억의 문을 두들기다 만 것 같았다. 지독한 감기로 골골거리는 설 연휴 동안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읽었다. 애플TV+의 드라마가 내가 알던 소설과 달랐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제야  『듄』에 시선이 갔다. 이제야말로 다시 한번 시작할 순간이 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듄』을 세 번째로 다시 읽는 동안 기억이 서서히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야 그제야 내가 기억하는 인물들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레토 공작, 굳세지만 그만큼 연약한 레이디 제시카, 검술의 대가이자 멘타트이며 종국에는 세번째 인물이 되는 아이다호, 아이러니의 대가인 거니, 닻을 잃어버린 하야트. 무앗딥의 고뇌와 한계. 어느 순간에도 강인한 프레멘인 차니. 사랑받지 못하는 이룰란, 비극의 알리아와 아라키스를 변화시키는  궁국의 레토. 이번에 개봉할 영화에서 어디까지 다룰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은 영화와 다르다. 영화 같은 스케일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 장대한 이야기의 첫 서두로 이보다 훌륭한 시작은 없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