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이렇게 시간 전쟁에서 패배한다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혼란스러운 때가 있었다. 순수문학의 열화와 장르문학의 전성기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둘 사이의 차이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세상에서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는 일 자체가 부질 없이 느껴진다. 국내의 대표적 포털인 네이버에서는 더 이상 서지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네이버가 바라보는 책은 학문적, 예술적 가치를 가진 매체가 아니라 최저가 검색을 통해서 판매되는 상품에 불과하다. 이런 개탄스러운 세태보다 더 슬픈 부분은 예술적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이야기를 찾는 일이 해마다 어려워진다는 사실이다. 문단은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닌 쓰이기 위한 글을 제단에 올려놓고 그들만의 의식을 치르고 있고, 장르소설의 반짝거림은 디지털컨텐츠의 상업화에 휩쓸려 사라졌다. 이런 세상에서 장르문학인  SF소설에는 어떤 미래가 남아있을까? pastedGraphic.png

SF소설계의 주요 상을 휩쓴 작품임에도 이 소설의 초반부는 읽기 힘들다. 짧든 길든 모든 SF 소설은 독립된 하나의 세상을 담고 있고, 그 세상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정보를 통해 독자는 이야기를 따라 갈 수 있는 법인데 이 소설이 그리는 세상을 이해하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가든」과 「에이전시」의 목적, 시간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구체적인 방식과 결과. 소설 속의 두 세력이 두 주인공에게 지시하는 임무가 각각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이 소설의 핵심 배경이라 불릴 만한 위의 것들은 불친절한 공란으로 남아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전까지 이 세계는 기괴망측할 뿐 울림이 없다. 과도한 부정형의 인물, 명확한 배경과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현란하기만 한 세상은 읽으면 읽을 수록 작위적일 뿐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챕터가 지날 때마다 쏟아지는 졸음과 사투를 벌여야 한다. 이 소설에서 일어나는 시간 전쟁의 목적은 모르겠지만, 내가 졸음과의 전쟁에서 왜 패배하는지는 분명히 알겠다.

다행히 중반부를 넘어선 순간부터는 그나마 나아진다. 뻔하고 상투적인 전개이지만 결말을 풀어나가기 위한 복선의 매듭이 명쾌해지기 때문이다. 여전히 소설의 배경은 미지의 영역이지만 이야기의 얼개를 이해하는 순간 페이지는 폭발적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 잘 쓰인 글이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이 없는 익숙한 플롯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두 작가의 공동작업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의 씨실과 날실이 정교하게 얽히는 정교한 느낌보다는, 서로가 서로에게 쓴소리를 내뱉지 못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느낌이 더 강하다. 두 사람의 작가가 각각 「레드」와 「블루」로 나뉘어 각자의 세계를 그리고, 만나지 않은 채 이메일로 이 소설을 썼다면 매우 훌륭한 창작 실험이 되었으리라. SF소설의 창의성이 메마른 이 시대에 어찌 보면 이것도 새로운 상상력의 표본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험이 예술성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쓰이기 위한 소설, 아이디어로 쓰인 이야기의 한계는 분명하다. 내 마음을 씻어내기 위해 코니 윌리스의 『마블 아치에 부는 바람』을 다시 읽어야겠다. 뭔가 진기한 재료와 화려한 레시피로 만들었지만, 맛은 없는 장식품 같은 음식을 먹은 기분을 달래기 위해 말이다.

20년 후

딸이 ‘SNS’가 ‘Social Network Service’의 약자가 아니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SNS’가 아니라 ‘SM’, ‘Social Media’라고 정정해 주곤 한다. 싸이월드를 경험하지 못한 딸에게 인터넷 공간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중독성을 알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뭐든지 빠른 딸 세대에서는 이미 어린이들마저 유튜브 스트리밍을 하는 시대이니 어쩌면 내 걱정은 진짜 공염불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중독되기에는 너무 빨리 변하는 세상에서 김빠진 것에 어떻게 열광하고 중독될 수 있단 말인가?

갑자기 ‘SNS’와 ‘SM’으로 글머리를 여는 이유는 이 블로그에 대한 글을 남기고 싶기 때문이다. 이 블로그를 개설한 것은 2003년 장마가 끝나가던 7월의 어느 날. 어느 사이에 이십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시대를 풍미했던 블로그(web+log)라는 단어는 구차해지고 낡았다. 이제는 트위터, 페이스북의 시대도 끝났고, 틱톡과 인스타그램, Reels의 세상이 되었다. 한때 매일 같이 쏟아지던 피드는 거의 소실되었고, 내가 자주 방문하던 블로그 가운데 살아 있는 블로그는 4개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2003년 처음 블로그를 만들던 날, 당시의 나는 블로그라는 전자적 매체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기술의 발전 속도로 볼 때, 이십 년 정도의 시간이라면 화석이 되기에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이십 년 뒤 내 젊은 날을 돌아볼 수 있는 기록이 되기를 바라며 막연한 마음으로 이 블로그의 첫 글을 남겼다. 마치 삼총사의 후일담인 뒤마의 ’20년 후’처럼 말이다. 이 시간에 쓴 글은 거의 600편 정도 되는 것 같고, 대부분의 글은 처음 2년, 그리고 그다음 5년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그 사이 이 블로그는 서비스형 블로그인에서 설치형인 태터툴즈로 갈아탔고, 태터툴즈마저 사라진 십 년 전쯤에는 워드프레스로 글을 옮겼다.

사실 꽤 오랫동안 블로그에 관심이 없었다. 중년의 내 삶은 회사와 가정으로 양분되었고, 나는 더 이상 애서가가 아니다. 책 없는 삶은 죽음과 같을 줄 알았는데 나는 요즘 라면 받침 수준의 잡서를 읽으며 활자중독증을 이겨낸다. 아름답고 좋은 글을 읽으며 내 삶이 황홀하기를 바라기에는 내 마음이 무섭도록 꼬여있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삶의 순간을 글로 남기는 것은 오해를 쌓는 일이며, 그 순간이 삶의 전부가 아닌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을 내 삶의 진짜 독자인 나 스스로는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음에도 타인은 쉽게 오해한다는 사실을 지겹도록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는 독립된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그 귀중한 순간을 더 이상 이 블로그에 남기지 않았다. 딸이 태어나던 그날의 기억. 매해, 매 계절 우리 세 가족이 쌓은 기억들. 함께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여행하며 아내와 나누었던 대화들. 삶의 힘들었던 순간들과 내 마음에 쌓인 울분에 대한 기록은 여기 없다. 그저 기억 속에만 있을 뿐. 기억은 기억이 아니라 글로 표현되었을 때 더 견고해진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지만, 나이를 먹을 수록 이러쿵 저러쿵이 귀찮아졌다.

그러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갑작스레 2003년 7월부터 역으로 글을 읽기 시작했다. 중년이 된 지금의 기준으로는 아무 일도 아닌 짝사랑에 힘겨워하던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부끄럽기보다는 재밌었다. 횡설수설하고 괴로워하는 젊은 내가 그 안에 있었다. 암호처럼 꼬아놓은 문장을 다시 해석하는 일은 좀 버거웠지만 한번 기억의 물꼬가 터지니 글 속에 담긴 순간들이 어제 일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그렇게 읽다 보니 갑자기 몇 개의 글에는 후일담을 쓰고 싶어졌다. 내가 비밀처럼 언급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후 이십 년 동안 그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후로 나는 무엇을 경험하고 보았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주석처럼 옛글에 덧달고 싶어졌다.

사실 옛글을 읽으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밝게 빛나는 친구들의 존재와 다시 조우했을 때였다. 모든 것이 희미해져만 가는 중년의 내게 젊음으로 밝게 빛나는 친구들의 흔적이 제일 반가웠다. 젊은 아내의 흔적을 만나는 일도 좋았고, 내가 읽었던 책들과 공연들, 전시회와 여행은 세파에 찌든 내게는 새로운 구원이었다. 그 시절 기대했던 그대로. 이 블로그는 20년 후 과거를 만나는 훌륭한 장치가 되어주리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사실 이 블로그에 등장하던 많은 것들은 이제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변한 부분도 있고, 시간이 훼방을 놓은 부분도 있고, 오해가 악재가 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엇이 되었든 지금 내가 느끼는 가장 큰 감정은 내가 사랑하던 것들에 대한 그리움이다. 삼십 대의 내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아쉬움도 조금 있기는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던 소설인 『표절』의 주인공 에드워드가 니콜라 파브리에 대한 복수를 끝내고 이제는 더 이상 원고 냄새를 맡는 편집자가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로 글을 쓸 수 있는 작가가 되었다는 끝마무리가 떠오른다. 앞으로 다시 20년이 지난 다음에는 ‘다시 찾아온 20년 후’라는 제목의 글을 쓰며 내가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되찾았는지, 어떻게 다시 책을 사랑하게 되었고,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넘어가는 친구들에 대한 후일담과 행복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 대한 찬가를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다시 가을!

내게는 지난가을에 대한 기억이 없다. 날이 추워짐에 따라 옷이 두꺼워졌다는 사실과 어둠이 일찍 내려앉았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늘 똑같이 바쁘고 여유 없는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아니 가을이 깊어질수록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졌고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추운 시기에는 취객으로 가득 찬 새벽 한 시의 마지막 버스를 타는 것이 일상이었다. 배신당할 부질 없는 노력임을 알면서도 해야 하는 순간이기에 그냥 견딜 수밖에 없었다. 서푼짜리 망한 연극이 되리라는 사실이 매일 분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올해의 일상은 거짓말처럼 작년과 정반대이다. 이사한 지 여덟 해라는 시간을 보내고서야 처음으로 산책하는 기분으로 집까지 걸어서 퇴근을 시작했다. 다섯 시에 회사에서 걸어 나와 공사로 번잡한 삼성역을 지나면 하루하루 황량해지는 가로수가 나를 반긴다. 고시 공부를 하며 들었던 음악을 다시 들으며 좁은 삼성교를 지나 탁 트인 탄천과 한강을 바라본다.  11시 방향에는 지난가을 새로 그리고, P & L을 뽑았던 주경기장과 야구장이 들어온다.  번잡한 회사 동네에서 딸아이가 기다리는 우리 동네로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귀계로 북적이는 복마전에서 벗어나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평화로운 베드타운에 도착했음을 몸과 마음 모두가 알기에 나오는 웃음이다.

지어진 지 40년에 가까워진 야구장은 내 이십 대와 전혀 다를 바 없다. 갈수록 줄어드는 노점상 사이로 담배 연기가 솟아오르고 야구팬의 구성도 그때와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야구장을 지나 주경기장을 만나면 새로운 막이 열린 것처럼 날마다 새로운 퇴근길의 매력을 발견한다. 어느 날에는 김수근의 콘크리트 덩어리가 궁궐의 유려한 처마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고, 어느 날은 태양의 서커스를 위해 설치하는 빅 텐트의 반짝거림에 감탄할 때도 있다. 하지만 늘 나를 평안하게 해주는 것은 주경기장에서 체조경기장으로 이어지는 대로의 가로수길이다. 수령이 얼마인지도 알 수 없으나 아파트 8층 높이로 자란 나무들은 말없이 나를 반긴다. 이제 집까지 절반 남았다.

나머지 절반의 걸음은 매일 다르다. 어느 날은 느린 음악에 맞춰 짧은 보폭으로 느리게 걸을 때도 있고, 허기가 느껴지는 날에는 큰 보폭으로 휘적휘적 걸어간다.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뒤엎고 전시장과 호텔이나 지으려고 몇 년을 보냈나 하는 후회는 늘 같다. 그리고 그 일을 더 이상 내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이제 마지막 횡단보도다. 아직 이 횡단보도를 기다리지 않고 마법처럼 한 번에 건너본 적은 없다. 그러나 올해가 가기 전에는 그마저도 성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