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one says I love you.

사람에게는 [해마다] 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해마다 옛 애인에게 안부를 묻는 자상함 반, 집요함 반이 섞인 이상한 버릇을 가진 사람도 있고, 해마다 똑 같은 곳을 여행하는 사람도, 해마다 같은 선물을 같은 사람에게 선사하는 사람도 있다. 나 역시 이런 버릇에서 예외는 아니어서 해마다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영화를 본다.

에밀리 브론테의 웨더링 하이츠,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 게팅 메일리의 아르마다, 레이 황의 1587년 아무 일도 없었던 해, 완독을 목표로 하지만 해마다 2/3지점에서 무너지고 마는 율리시즈와 유리알 유희, 그리고 이런 저런 이유로 꼭 보게 되는 우디 앨런의 Everyone say I Love you…

우디 앨런 그리고 영화 따라 하기
한참 영화에 매료되던 시기에는, 평범한 소비자가 아닌 비평가가 되고 싶던 시기의 나에게 우디 앨런이란 이름은 괴짜란 말의 동의어였다. 뉴욕 시리즈에서 마이티 아프로티테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에서 보여준 우디 앨런만의 비틀림과 위트는 그것을 소비하는 나까지 지적이고 위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만들곤 했다. 그를 보고 있노라면 어딘지 또래와 다르다는 만족감에 흐뭇했던 것 같다. (물론 실제의 내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먼 훗날이었다)

말러의 4번 교향곡을 좋아하게 된 것도, 틴토레토의 유화를 좋아하게 된 것도, 베니스에서의 사랑을 꿈꾸게 만든 것도 전부 이 영화 탓이다. 겉은 허름하지만 속은 화려하게 꾸며진 안락한 다락방에서 타이프 라이터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생각한 것도, 이성의 어깨 선과 쇄골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전부 이 영화를 보고 난 다음이다.

유쾌한 소극
Everyone says l Love you(이하 에브리원)은 뮤지컬 영화다. 노튼과 줄리아 로버츠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영화는, 가수 뺨치는 골디 혼의 노래 실력을 감상할 수 있는 영화는 에브리원이 유일하다. 게다가 최근 십년 동안 제작된 영화 가운데 에브리원만큼 능숙한 솜씨로 발랄하게 빚어낸 뮤지컬 영화는 전무하다.

생각보다 무겁고, 진지한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행복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름다운 음악과 재기발랄 때문이라 말하는 친구의 말을 하나 더 인용하자면 에브리원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 한 순간도 중심을 잃지 않는 위트 때문이라 한다. 똑 같은 장면을 보고 있음에도 볼 때마다 다른 위트를 발견하는 것은 위트는 해석자에 따라 깊이가 달라보이는 신기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에브리원은 영화보다 에드워드 노튼이 드류 베리모어에게 한 청혼 시퀸스로 더 유명한 영화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디저트에 반지를 넣어 청혼하는 방법은 이 영화가 나온 96년 이후 영원한 고전(혹은 교범)이 되었으며, 각종 시트콤에서 단골로 우려먹는 소재가 되었다. 하지만 단지 꽤나 괜찮은 청혼법으로 에브리원을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하다.

이상한 가족, 이상한 사람들, 그래도 모두 사랑을 말한다.
에브리원에 나오는 가족은 어딘지 비현실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다. 친구의 아내를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 남자, 자신보다 더 아내를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아내를 포기한 남자, 남편의 친구와 부부가 되고, 전 남편을 친구로 거느린 여자.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하나의 대가족,

부자연스럽고 부담스러워야 정상일 텐데 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설정 만으로도 영화 감이다) 이들은 되려 밉살 맞을 정도로 행복하고 서로를 사랑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단어에 격식과 형태를 부여함으로써 진짜 사랑을 왜곡시키는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도 지켜야 할 룰이 있으며 격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야말로 사랑을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언제쯤에야 사랑은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강도나 지속성, 합리성 따위는 무시해도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6 thoughts on “Everyone says I love you.”

  1. 아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해.
    그런 생각이 가능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크게 달라졌을 테니.

    더위가 한풀 꺾였다.
    이젠 선풍기 바람도 제법 시원하다니까.
    진정 공부하기 좋은 계절로 들어서고 있어. 좋다.

  2. 더위는 한풀 꺾였는데
    습도가 높아서 이상스럽게 짜증이 나는 날씨인걸
    다음에 만날 때까지 연필 한자루를 몽당 연필로 만들겠다는 약속은
    사람을 엄청나게 압박한다.

    그나저나 내 방 책상에 드디어 액자가 들어섰다.
    액자 속 주인공은 이미 자네도 짐작하고 있을 테고
    저녁에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 요즘에는
    어때? 부럽지?

  3. 글쎄…
    요즘 회계가 더욱 재밌어져서..ㅋㅋ
    암튼 재무도 그렇고 회계도 그렇고 숫자와 관련된 학문은
    즐겁게 느껴진다니까. 아..경제는 아직…-_-

  4. 처음에는 다 그런다고.
    그러다가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워지면
    숫가락을 놓고 싶어지지.ㅋㅋㅋ

    아무튼 열심히 하시게 비록 방학이 보름밖에 안남았지만
    보름이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놀다보면 눈결에 지나가지만 말이야.

  5. wc군 몽당 연필을 만드는 방법을 오늘 아침에 알아 냈어.
    연필이 한 자루 더 필요해서 누님의 수동형 연필깍이에
    새 연필 한자루를 집어 넣었는데 도대체 끝을 모르겠는거야.
    돌리다 보니 연필이 반만 남았다는…ㅡㅡ;

    편법이긴 하지만 우리의 내기는 내가 필승할 것 같은데.
    뭐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은 없고
    날씨 시원해지면 법대 후문의 만두국집에 애들이랑 가자.
    못가본지 일년쯤 되었더니 오늘처럼 비오는 날이면 무지 땡기거든

  6. 오늘 아침 난장이가 한짓

    어쩌면 누나가 어렵게 구한 멀더 연필을….
    그것도 딱 한개 밖에 없었는데…..

    한번도 안 깍은 새 연필을 종잇장처럼 갈아서 내가 제일 아끼는 FABER-CASTELL 색연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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