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me

홀로 보는 영화를 즐기는 나에게 친구는 궁상맞아 보인다는 말을 던지고는 한다. 하지만 그녀의 표현과 다르게 항상 궁상맞은 것은 아니다. 궁상스런 순간은 티켓팅을 하는데 걸리는 30초 정도와 다시 불이 켜지고 홀로 극장을 빠져나오는 잠시뿐이다. 게다가 홀로 보는 영화에는 그만의 장점이 있다. 가령 마지막 한 시퀸스까지 마음에 든 영화에 동행이 기분을 상했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의자에 허리를 깊숙히 묻고 음료수와 팝콘을 건내달라는 방해 없이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다. 무엇보다 왜 이 영화를 보고 싶은지 상대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가끔은 홀로 보는 것이 안타까운 영화가 드문드문 스쳐간다. 옆자리 앉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을만큼 심적인 동요를 일으키는 영화를 홀로 보는 것은 마음 상하는 일이다. 지난 금요일에 본 Prime이 그랬다.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부터 우리의 우상이었던 우마 셔먼은 여전히 gorgeous했고 거기에 더해 사랑스러운 진짜 여자의 매력을 한껏 발휘하고 있었다. 감각적인 면에서 이 영화는 막 청년이 된 소년이 성숙한 여성에게 느끼는 매력에 관한 다양한 경험들을 여기 저기에 배치해 놓았다. 하지만 스테레오 타입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흐름은 되려 이런 가벼움 덕분에 더욱 탄력을 받는다. 우마 셔먼은 아름다운 여인을 연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닌 여성을 표현하려 노력했고 결국은 기발한 소재에서 비롯된 갈등 양상을 무로 돌릴만큼 사랑스런 느낌을 잘 표현하는데 성공했다. 또 이런 배경을 전제로 한 영화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관객이 이들의 사랑에 관해 부정적인 판단을 할 여지 자체를 없애는 것인데 나처럼 보수적인 사람조차도 그들의 사랑에 이견을 제기하거나 비합리적인 선택이라 매도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스크린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반대쪽의 시선은 잘 모르겠다. 난 아직 하루도 여자로 살아보지 못했다-

사실 이 영화는 한국내 프로모션처럼 로맨틱 코메디 장르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커플들을 위한 겨울 영화도 아니다. 더욱이 트레일러처럼 소재의 기발함이 전부인 영화도 아니다. 올해 개봉된 영화가운데 가장 우아한 사운드 스코어를 자랑하지만 이마저도 이 영화를 설명하는 전부는 아니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오직 ‘사랑’ 하나 뿐이다. 하지만 매우 경쾌하면서도 현실감 있게 ‘사랑’을 조명해 낸다. 게다가 이 영화가 지니는 사실감은 캐릭터의 성격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의 경혐해서 비롯된다. 배우들의 섬세한 몸짓과 카메라의 움직임이 멈추는 곳에는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 경험해 봤을 다양한 시선들이 녹아 있다.

그러나 정작 내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영화 속에 담긴 섬세한 묘사가 아니라 이들의 사랑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사춘기 소년도 아닌 다 큰 청년이 타인의 사랑 이야기에 부러움을 느낀다는 사실이 이질적이긴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몰입의 정도를 넘어서 곁에서 영화가 아닌 곁에서 지켜보는 실제 사건처럼 느껴질 정도였던 듯 싶다. 아니 그 순간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식탁 위에 앉아 고리타분한 표정을 짓는 감색 슈트의 남자처럼 보일 것 같아 숨이 막혀 왔다.

물론 이 영화의 이야기 흐름은 앞에서 언급한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매우 매끄러운 편은 아니다. 개연성이 부족한 장면 연결도 있고, 불필요한 시퀸스도 있다. 이야기 지루함을 방지하고 흥행을 위한 갈등 관계지만 100%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불필요한 플롯은 하나도 없으며 그래서 더욱 현실감이 있다. 사랑은 결코 논리정연하지 않다. 사랑은 결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아래 첫발을 내딛는 것도 아니고 차갑고 냉혹하게 뒤돌아서며 끝나는 것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Before Sunrise’처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장면 하나하나가 머리 속에 살아 남게 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비평가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사람들의 호응을 얻지 못해도 이 영화를 보면 언제든 사랑하는 감정을 지니는 것 자체는 옳은 일이란 사실을 깨달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이,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을 지닐 수 있다. 사랑한다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2026. 3

우마 셔먼은 승마 사고 이후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는다. 그러나 ‘카타카’에서 함께 공연한 에단 호크 사이에 미아 호크를 낳았고. 18년이 흐른 뒤에는 그 딸과 젊은 시절 우마 셔먼의 닮음에 놀라곤 한다. 서평에는 시간이 지나도 영화가 기억날꺼라 했지만, 음악과 달리 시퀸스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상담의인 메릴 스트립의 아들과 사랑에 빠진 우마 서먼에게 조언을 하며 괴로워 하는 메릴 스트립의 모습과, 귀지와 면봉에 대한 짧은 에피소드가 되려 더 자주 생각난다. 음악은 20년이 지났어도 가끔 여전히 어느 가을 날에는 찾아 듣는다.

찰리와 초콜릿공장

사람들은 가끔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를 다시 읽고 싶어할 때가 있다. 그런 기분에 함몰되는 순간의 지인들은 곧 잘 읽을 만한 책 한 권을 권해달라고 청하곤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면 어김없이 나왔던 답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읽어보라는 대답이었다. 사실 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한번 밖에 읽지 않았다. 그것도 1990년 오늘 같은 가을 오후에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초콜릿 공장의 비밀>은 달콤한 맛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향에 관한 소설이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공장에서 흘러나오던 초콜릿향에 대한 묘사와 한 이불을 공유하는 네 명의 노인, 반 기니가 가져다 준 행운이 나에게 남아 있는 전부다. 하지만 초콜릿 한개를 오롯이 먹어보고 싶은 욕구와 처음 맛본 그 달콤한 중독의 유혹을 이보다 더 잘 설명했던 묘사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 복권의 존재를 몰랐던 당시에 윌리 윙카의 초대장은 얼마나 커다란 행운이었던가?

하지만 윌리 웡카의 캐릭터는 당시 내 마음의 중심이 아니었다. 그의 시니컬한 성격과 과장된 징벌도 초콜릿의 향에 대한 묘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소설의 맨 마지막장에서 윙카의 시종일관 무뚝뚝하고, 냉혹한 행동과 성격에 일관성이 없어졌던 문장이 돌연 등장했던 것에 의아해 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그때서야 난 중절모를 쓴 나이든 영국 신사의 이미지에서 <무어의 마지막 한숨>의 주인공처럼 조로증에 걸려버린 늙은 청년을 잡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초콜릿으로 만든 강 앞에서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막 십대에 접어든 소년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문이기 때문이다.

팀 버튼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은 내가 읽었던, 혹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과 다른 느낌의 영화였다. 끊임없이 비가 내렸던 지난 여름의 어느날 읽었던 리뷰에 등장했던 중세적 괴담이란 묘사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속을 차지했다. 내가 읽었던 달콤한 유혹이 윌리 윙카라는 캐릭터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팀 버튼의 불우한 상상력 속에서 초콜릿의 특유의 향은 고사하고 있었던 셈이다.

반 기니의 행운이, 가난한 소년의 마음과 초콜릿 공장이라는 환상적인 공간이 그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초콜릿쟁이인 윌리뿐이다. 소설 전반부의 찰리에 대한 묘사는 착한 아이에 대한 고전적인 묘사만이 아니다. 윌리 윙카의 기행을 마무리 짓는 상대역이자, 잔혹한 중세적 징벌에 대한 괴담을 다소 가볍게 만드는 균형추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찰리다. 하지만 스타 시스템과 산업화된 영화 제작은 더 이상 캐릭터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영원한 청년인 조니 뎁과 악동 팀 버튼, 그리고 초콜릿 공장이라는 마케팅 이슈만이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상업성 속에 문장이 만들어 낸 가장 잔혹하면서도 달콤한 위대한 상상력 하나가 쇠잔해 버렸다.

읽혀지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에는 사실성의 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발화와 침묵 사이에도 비슷한 관계가 성립한다. 문장은 이토록 끔찍한 징벌이 과장된 상상력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킴으로써 허구가 실제가 될 때 발생하는 충격을 최소화한다. 그러나 팀 버튼이 만들어낸 하나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런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10월에 개봉할 그의 새로운 영화인 ‘corpse bride’를 보려는 내 심리가 우습기는 하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는 초콜릿의 또 다른 맛인 쌉살함이 묻어난다.

Closer

월요일 오후. 졸지에 single이 되어버린 J군과 회합을 가졌다. 또 다른 J군의 청탁을 해결하느라 오전을 보낸 나는 세수조차 하지 못한 채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의외로 담담한 녀석의 모습에 놀랐다.

불과 이년전 까지만 하더라도 실연은 꽤나 진중하고 무거운 소재였는데 이제는 보는 사람이나, 당한 사람이나 모두 무덤덤하다. 시간의 횡포 앞에 굴복하지 않는 감정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삶의 교훈을 체득한 것인지 아니면 만남과 헤어짐의 일상성에 모든 감흥이 사라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천연덕스럽게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신 우리는 공부를 할지 영화를 볼지 심각하게 망설이다가 Closer를 빌리러 나갔다.

사실 Closer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Jude Raw와 Natalie Portman, 그리고 Julia Roberts가 나온다는 casting에 대한 사소한 정보 뿐이었다. 하지만 늘 그런 것처럼 타인의 해석에 오염되지 않는 영화는 꽤나 재미있다. Jude가 연기한 Dan이라는 캐릭터가 사랑이란 허구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나, 사랑의 완전성에 집착하는 Dan의 캐릭터가 결국에는 모든 것을 잃을 거라는 예상이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며 흐뭇해 하는 것이나,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인간 심리의 빈틈을 솜씨 있게 짜 맞춘 Larry가 거둔 절반의 성공에 의의를 부여하는 나를 바라보는 것이나, Alice의 절제된 사랑과 Anna의 의미 없는 사랑을 관찰하는 일은 꽤나 다양한 재미를 선사한 듯 싶다.

그러나 사실 지금에 와서는 closer가 혹 원작이 따로 있는 소설이 아닐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원작이 따로 있다면 영화에서 제대로 들어 나지 않는 인과율과 심리적 뉘앙스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텐데 극중에서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는 사실은 거짓일지 모르는 진실과 진실 같은 거짓 뿐이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사이의 불확실성이 이 영화가 지닌 전부는 아니다. 잘빠진 Jude의 맵시와 투박한 Irish style의 Clive가 보여주는 매력이 이 영화의 나머지도 아니다. 지적이지만 그럼에도 약간은 천박해 보이는 캐릭터를 선보인 Julia와 스트리퍼라는 극중 직업에도 불구하고 아둔하기 보다는 단정한 매력을 선보이는 Natalie의 들어나지 않는 긴장 관계를 관찰하는 것이야 말로 이 영화에 숨겨진 진짜 재미다.

[#M_P.S. | less.. | Jude와 Julia가 함께 등장하는 첫 장면에서 단정한 하얀 셔츠 속에서 더 두드러져 보이는 브라와 낯선 키스, Natalie와 Jude의 침실에서 그녀가 입고 있었던 순진한 캐미숄의 대비가 꽤나 인상 깊었다. 지적이지만 약에 취한 코르티잔 같은 Anna의 극중 이름과 좁은 문의 알리사를 연상시키는 Alice의 작명 센스도 일품이었다. Actor보다 Actress의 연기가 더 뛰어났던 영화.

참. single이 되었던 J군은 영화를 보기가 무섭게 다시 couple이 되었다. _M#]

2026. 3

J군은 현시점에서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두 딸을 가진 아빠가 되었다. 영화를 보기 무섭게 다시 커플이 되었다던 그 사람하고 짧은 시간만에 헤어지고, 2011년에 이 글에 등장하는 헤어진 그 연인과 만나 결혼했다. 사실 난 J의 결혼식에서 어부인을 처음 봤다. 아무도 클로저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옛 글을 읽다 보니  J의 현재 생활을 기록으로 남긴다. 나탈리 포트만은 그 후에 블랙 스완을 통해 더 멋진 연기를 선보였고, 지금은 뭐랄까 그냥 평범한 배우가 되었다. 유명세는 있지만 특별할 것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