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gs of New York

아무래도 난 기자가 체질인가 보다. 펜을 떼자마자 처음 생각나는 문장이 내가 왜 이런 글을 쓰려했는가를 밝히는 일종의 편집자주였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쓰려던 처음 생각에서 벗어나 격식을 갖춘 첫머리를 상상하는 것또한 기자로서 버릴 수 없는 직업병이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신문이건만 지난 2년 동안의 삶이 내게 미친 영향력을 선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튼 갱스 오브 뉴욕으로 돌어가 보자.

기억조차 희미해져버린 영화지만 택시 드라이버나 카지노에서 보여주었던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와 비교해 보자면 허전함을 감출 수 없다. 폭력의 시작과 뉴욕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보여주겠다던 감독의 의도는 다분히 작위적이다.

감독이 가진 인식의 한계는 인간과 작은 조직이상의 것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천재는 드물고 자신을 천재로 착각하는 수재들만 세상에 넘친다는 말이 바로 여기에 해당되는 말이 아닐는지.

예술은 성숙한 자의식과 통찰력을 매개체 속에 투사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그는 성숙한 자의식이나 통찰력가운데 어느 것도 필름 속에 투사시키지 못했다. 무언가를 설명하려는 의지는 넘쳐나지만 무엇을 이해시키고자 하는지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설명뿐이다. 평범한 교육을 받은 훈련된 지성을 지니지 못한 예술가의 초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영화에서 마틴 스콜세지가 이해시킬 수 있는 사람들은 역사에 무지한 평균적인 미국인들뿐이다. 남북전쟁 중에 뉴욕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사람들에게 영화의 첫머리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연도표기는 기억 속에 함몰되어 버린 지식을 되찾는 수고를 위한 작은 배려일 뿐이다.

게다가 끊임없이 주목받는 군인들의 행렬은 무엇인가? 거리의 폭력에서 국가에 대한 폭력으로 영역를 확장한 의 폭력을 보여주기라도 하겠단 말인가? 결국 무의미한 고찰일 뿐이다.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거나 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고찰은 이미 사유로서의 본질을 잊어버린 잡념일 뿐이다.

어쩌면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닐지도 모른다. 적절하지 못한 스크립트 에디터에 의해 짜여진 각본이 잠시 노감독을 속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은 자신의 끝을 알고 부족함을 인정할 수 있어야한다는 격언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남북 전쟁 무렵의 뉴욕을 그림으로써 미국이 지닌 폭력성을 보여주겠다는 시도는 너무 미국인적인 발상일 뿐이다.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지식인들에게 미국의 폭력성이 가장 극명하게 들어난 사건은 19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고립주의 노선과 멕시코 전쟁이다. 비록 폭력이 인간이 지닌 원초적 본능이기는 해도 폭력은 공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탐욕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공포에서 시작되는 폭력보다는 탐욕에서 시작되는 폭력이 훨씬 오랜 역사와 유규한 전통을 지녔다는 사실을 다른 영화에서 투사시켰던 노감독의 생각이 바뀐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뉴욕의 깡패들의 핵심적인 요소는 폭력의 이중성이다. 가장 잔혹한 폭력마저도 국가에 의한 폭력보다 더 잔혹할 순 없다. 게다가 잔혹한 폭력마저도 그보다 강한 폭력앞에서는 비루먹은 강아지처럼 하찮은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폭력은 가장 나쁜 의미의 악순환 구조를 보여준다. 인내심을 상실한 사람들. 폭력에 굴복한 사람들, 폭력을 추종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폭력의 쳇바퀴에서 자신이 자존감을 상실한 채 하루를 연명할뿐이다.

사람들은 피와 죽음이 넘쳐나는 한세기 반 전의 뉴욕에 진저리를 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잔혹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들의 숫자보다 선의를 가진 바보에 의해 희생된 인류가 더 많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폭력이란 스펙트럼만으로 사람과 사회를 분석하다 보면 수많은 오류와 마주치게 된다.

가장 잔혹한 폭력마저도 단지 잔혹함의 노예가 된 이후에는 폭력 특유의 위험성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계해야할 폭력이야 말로 잔혹함을 제거한 무미건조한 하얀 폭력이라는 것은 노감독을 과연 알기나 할까? 하얀 폭력에 의해 부셔지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숫자가 잔혹한 폭력에 희생된 사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나 있을까? 계속된 물음으로 지치는 하루다.

잔혹함으로 물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둔 평범한 군인들에 의해 잔혹하게 죽는 장면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 했을까? 사람은 자기 의식 속에 숨겨진 매뉴얼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가장 새로워 보이는 영상에서 시선조차 끌지못하는 작은 시퀀스 하나까지 갱스 오브 뉴욕의 모든 신은 이미 과거 우리가 익히 봐왔던 해석의 카피 버전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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