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우산이 필요하지 않으세요?

‘혹시 우산 필요하지 않으세요?’

며칠 전 길을 걷다 만난 첫마디였다. 난 가끔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새디스트일 거라고. 어떻게 이런 우연을 이렇게 태연하게 나와 마주치게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런 우연, 우연이기에는 너무 작위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일련의 당혹스러움과 마주하다 보면 그렇지 않아도 나쁜 성격이 배는 더 흉악해진다. 게다가 적재적소에 배치되고 말끔하게 진행되는 플롯(개성이라고는 전혀 없다)을 보고 있노라면 내 인생마저 값싼 소설처럼 남루해진다.

하지만 나의 신경을 더욱 거스르는 것은 이런 우연이 아니라 기억력이다. 순식간에 날짜와 시간, 상황을 검색해보며 2년 전 비슷한 시간에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반응하는 내가 더 싫어지는 것은 비단 혼자만의 경우는 아닐 것이다.

왜 난 항상 의도에 충실한 자동응답기가 되는 것일까? 결코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망각 속을 부유하고 잊어도 될만한 기억들은 항상 또렷한 것일까? 인생의 아이러니라 하기에는 입맛이 약간 씁쓸하다.

버스를 타려다가 나를 발견한 것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나한테도 비맞을 권리 정도는 있는 것이다. 내가 원할 때 내리는 비가 아니니까 녀석이 쏟아질 때 친철하게 마중나갈 예의 정도는 갖춰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튼 간만에 만남에도 불구하고 반가움에 몸둘 바를 모를 정도는 아니었다. 좁은 곳이기에 오래지 않아 마주치리란 예상을 하긴 했지만, 여우비가 내리는 날, 기분나게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 순간에 나를 웃게 만드는 그 대사란 무엇인가 말인가?
(그때의 난 말이다. 우울한 인상의 회색 인간이 되고 싶었다)

자신의 우산을 접거나, 내 손에 쥐어주고 품안에 뛰어드는 것마저 변하지 않았다. 갑자기 도큐멘트 폴더에 저장된 ’01 07 비오던 날’이란 제목의 글이 생각났다.

“내 품에 뛰어드는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란 문장이 머리 속을 관통하고 있었다.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와 추억을 되새기는 재치있는 대사가 나를 즐겁게 만들었지만 마음마저 포근해지지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었다.

시간이란 참으로 재미난 존재이다. 어쩌면 이렇게 단순한 플롯만으로도 나를 웃게 만드는 것인지. 비를 즐기며 우울한 사색가가 되어보려고 노력하던 나는 아이스크림이나 입에 문 동네 청년이 되었버렸다.

사실 지금도 친구를 만나러 몸을 움직여야 하는데 겁이 난다. 최소한 난 내 마음에 적당한 반성의 시간을 주고 싶은데. 예전만큼이나 길고 가슴 아픈 시간을 허락하러 하는데 신이란 존재는 자꾸 나를 우연에 희롱당하게 만든다.

혹여 경기전 근처에 친구와 차를 마시러 갔다가 또 다른 우연과 마주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답을 모르겠기에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혹여 그 우연이 나를 피하더라도 내가 그 우연을 먼저 찾게되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난 아이러니도 적당해야지 과하면 삼류 소극이 된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절의 에드워드 데스트리처럼, 데스트리처럼 야스미나를 잃은 데스트리처럼 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만 같은데 다들 걱정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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