變身

막내 누이에 따르면 카프카의 변신이 충격적인 까닭은 변신의 과정을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축약 시키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대략 [오늘 아침 난 벌레로 변했다]라는 문장이 아닐까 싶은데…

사실 15분전만 하더라도 난 이 오래된 숙제의 답을 알지 못했다. 14살 무렵, 내가 처음 카프카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그 무렵은 심판과 변신이 유행처럼 대학가를 점령했던 시기인지라 독창적인 해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프카를 읽지 않으면 지성이 모자란 학생으로 취급 받던 그 시기에 대학에 입학하기 시작한 누나들 덕분에 난 심판과 변신을 강제로 주입 받았던 듯 싶다. 오롯이 나의 것이 될 기회를 박탈당한 채 말이다.

아무튼 20여분 전에 얻은 깨달음은 변화의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느릿하지만. 변화를 인식한 순간의 충격은 [오늘 아침 난 벌레로 변했다]라는 문장보다 더 격렬하다는 사실이다. 수 십년이 흐른 것도 아니고 고작 몇 년이 흘렀을 뿐인데 나란 사람의 영혼이 송두리째 바뀐 기분이다. 변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하고…

몇 해전의 난 사람 만나기를 즐기고, 떠들썩한 혼잡스러움을 좋아하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조용한 일상보다는 사건 사고 많은 하루가 더욱 즐거웠고,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의 비중이 더 컸던 듯 싶다. 그런데 오늘의 난 사람 만나는 것을 귀찮아 하고 떠들썩한 혼잡스러움은 그보다 더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했다.

복잡하고, 의미심장한 것들에 묘한 호기심을 가졌던 난 어디로 사라지고 요즘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딱히 볼 것도 없는 내 자신뿐이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간다는 것에 즐거움을 가졌던 내가 넓어져가는 인연의 고리에서 도망치고 싶어한다. 허락 받지 않은 낯선 사람이 내 삶에 참견 하는 것은 너무나도 싫은 일이 되어버렸다.

여행을 좋아했기에 역마살을 타고 태어났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내가 집 나서기를 두려워 한다.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들로 채워진 하루가, 피곤한 몸으로 쓰러지는 넓은 침대가 세상에서 제일 큰 만족감을 준다. 빽빽해지는 책장과 닳아가는 연필. 넘어가는 책갈피 속에서 안도감을 느낀다.

포션 혹은 포트넘 메이슨의 애플티를 즐기던 내가 이제는 에프리콧 실론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리쉬 커피를 안마신지는 얼마나 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베르가못 오일은 향만 맡아도 비위가 상한다. 십대 후반에는 얼 그레이를 가장 좋아했음에도 말이다.

변화는 충격적이다. 물론 전혀 변하지 않는 것보다는 덜 충격적이겠지만.

8 thoughts on “變身”

  1. 변신….저도 굉장히 좋아하는 소설이에요.카프카를 변신으로 시작했는데,좋은 출발이었다고 생각해요.읽은지 꽤 오래되었는 데도 어제 읽은 듯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정말 충격적인 소설이죠.

  2. 군에 다녀오면 사람이 변한다고 하는데,
    중학생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전혀 없다.
    아니지. 그때는 목표를 향한 부단한 노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심신의 황폐화를 위한 방탕함만을 위한 노력만이 있으니,
    그것도 변한 것이라면 변한 것이라 할 수 있겠군.
    또한 현실을 외면하는 버릇이 생긴 것도 변화로군.
    아니지, 변화가 아니라 퇴화로군.
    많이 더구만. 힘 내시게.

  3. 블로그에 들려 봤습니다. 살짝 구경만 하려는 생각이었는데
    몇시간동안 정신없이 읽어버렸습니다.
    간만에 만난 즐거운 블로그라 생각되더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제 블로그에 링크를 걸어 놓아도 될까요?

    참. 저도 카프카를 변신으로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심판을 먼저 읽었다면 변신은 손도 대지 않았을 것 같네요.
    한가지 카프카에 관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카프카는 처음 읽었던 그 순간이 제일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점입니다.

    논술세대인 까닭으로 언제부터인가는
    모범 답안 외우듯이 카프카의 해설집을 암기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덕분에 논술 성적은 꽤 괜찮았으나 카프카를 혼자 힘으로 이해 할 가회는 박탈당했죠.

    //wc
    변신이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이 내 삶에 생겨도 좋으니
    내년 11월 초엽에는 자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20대에 하기로 마음 먹은 목표 가운데 남은 것은 이제 졸업 밖에 없네 하고…

    .2%까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는데
    소수 자리를 하나 늘리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야.
    지금껏 이렇게 나를 혹사시키지 않아도 적당히 잘 해나갈 수 있었는데
    이번 게임은 내 모든 것을 원해. 무한정의 헌신과 노력.

    과연 이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네만
    양 어깨에 달린 기대를 충족시키려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리고 그것은 자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
    우리 삶이 우리만의 것이라면 함부로 퇴화를 해도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현실이잖나?

    26.8%넘었다. 에이브릴 라빈 콘서트까지는 일주일.
    너에게나 나에게나 망상을 품을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을
    극기의 한주가 될 것 같군.

  4. 카프카는 정말 처음 읽은 순간이 너무나도 강렬하죠.그래서 두번,세번 읽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 카프카가 아닌가 싶습니다.링크해 주신다면 저야 물론 영광이죠.전 이미 이곳을 제 리더기에 등록시킨지 꽤 되었거든요.
    이런 블로그를 만드시고,이런 포스트를 쓰시는 분이라면 카프카를 어떤 계기로 어떻게 읽으셨든 카프카를 자신만의 책으로 만드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5. 정말 딴지를 걸고 싶진 않지만…
    갑자기 이런생각이 든다.
    네 마음은 여행을 좋아한다지만 그렇게 돌아다니는 것 싫어하잖아
    일단 편안한것을 좋아하는 부르죠아인 너가 말이지..
    역마살은 정말 말이 안된다.
    자의든 타의든 진짜 역마살을 타고 난 이 누이가 볼땐 말이지…
    난 너가 정말로 땀내가 제대로 나는 경험많은 청년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항상 그게 맘에 걸려…
    아직까지 진짜 변신이라는 것 안느껴진다…
    삐지지 마라…. 약한자여…

  6. 링크 걸어 놓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머릭속에 저장된 해설본의 기억이 지워질 때가 되면
    바쁜 일상을 마무리 하는 주말에 카프카의 전집을
    꼭 다시 읽고 말겠다는 작은 소망이 하나 있지요.
    근래들어 기억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다지 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책은 인생은 성숙도에 따라 다른 맛을 알려준다는데
    그때가 되면
    아마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분한 칭찬 감사 드립니다.

    //큰누이
    정말 누나가 화낼까봐 이야기 안하려고 했는데
    누나의 시선이 한자리를 맴도는 동안 난 성장의 봄을 만끽 중이었다고.
    그 봄동안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나조차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는데
    멀리 떨어져 있던 누나가 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해.

    그나저나 늘 궁금한건데 누나가 말하는 땀내나는 경험많은 청년은
    어떤 사람일지 정말 궁금해. 만약 내가 그렇게 살았더라면 주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코멘트와는
    대조적인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삶을 촛농처럼 허비한다고 가장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지 않았을까?

    덧붙임:
    난 인정 못받아 배고파하는 틴에이저가 아니라고.

  7. 내 생각에 땀내나는 경험 많은 청년은(물론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아마도 ‘MJ’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와는 다른 쪽으로 경험이 많은 녀석이기에…ㅋㅋ
    그러나 그런 ‘MJ’가 자신보다 위라고 했던 사람은
    그녀석의 ‘동생’이더군.
    하긴 나도 내 동생을 내 자신보다 높게 평가하는 면이 있으니..
    일단 우리는 무모함이 부족하기에 ‘지식’이 많을 수는 있으나
    ‘경험’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

  8. 내 고등학교 친구들 가운데(이과에서는 그렇게 유명하진 않았지만)
    MJ에 필적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
    기인이사가 많은 학창시절이었네만 소문에 의하면
    MJ군을 능가할 이인은 없었던 듯 싶네.

    그런데 MJ가 무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해볼만 하니까 하는 거야.
    그래서 진짜 이인으로 평가 받았던 것이 아닐까 싶군.

    아무튼 경험에 관해서라면 진즉 포기했다고.
    세상에는 알아서 나쁜 것은 거의 없지만
    경험 가운데에서는 알아서 나쁜 것도 있거든.
    흠결처럼 평생을 괴롭히는 그런 경험도 있더라고.

    어떤 사람들은 진짜 힘겨운 것이 아니면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몸으로 하지 않으면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 믿는 사람도 있어.
    난 정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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