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책장이 꽉 찼다. 추석 명절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소설 2권, 폴 크루그먼의 국제경제학3e, 장하준 교수의 에세이 한 권과 번역본이 나오기만 기다렸던 GM&TOYOTA.&… 그리고 가을 시즌용 문제집 2권을 주문했더니 책장 걱정이 앞선다. 지금도 포화 상태인 책장인데 주문한 책들이 도착하면 어디에 이 녀석들을 보관할까 하고 말이다.

사실 대학에 처음 입학하던 무렵의 책장은 꽤나 한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해마다 꼭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책 몇 권을 제외하고는 신입생 시절의 내 책장은 휑할 정도로 비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슬금슬금 조금씩 빈자리를 채워가더니 이제는 빈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

나의 커피 메이트인 친구 녀석은 본인이 커피에 쏟아 부은 돈을 모았으면 진작 자동차를 살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책장을 보니 나 역시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책을 소장하느라 쏟아 부은 재원을 고스란히 굴렸으면 자동차 한대쯤은 되겠구나 하고. 커피와 홍차에 중독만 되지 않았더라도 조금 더 많은 옵션을 달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포션티와 리미티드 에디션 블랜딩 같은 레어 아이템을 맛보기 위해 투자했던 재원이라면, 가끔 마신 미주들에 쏟아 부은 재원이라면 정말 상당히 많은 것들을 소유할 수 있었겠구나…

하지만 후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책의 가치는 소장이 아닌 읽는데 효용이 있는 것이라 말하지만 난 좋은 책은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게다가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느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매우 자주 다시 읽는다고 말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도 있겠지만 내 컬렉션은 이런 작은 시골 도서관 정도는 가볍게 압도하는 수준이다.

머리 속에 저장된 기억이란 기실 방대한 자료의 인덱스에 지나지 않는다. 인덱스를 가지고 일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수많은 지식과 경험은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곁에 두어야만 불안하지 않다. 인터넷 덕분에 백과사전의 장정이 닳을 일은 줄어들었지만 작은 메모 하나를 하는 순간에도 책장은 한가롭게 쉴 수 없다.

그나저나 새로운 책들이 도착하면 이 녀석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난감하다. 기억에 형성된 인덱스와 유사한 구조로 재편해야 하는 데 8칸 짜리 책장으로는 조금 버겁다. 아무래도 책장 하나를 늘려야 할 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책장이 늘어날수록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과연 그랬는지는 의심스럽긴 하지만….

9 thoughts on “책장”

  1. 씨디와 책에 쏟아부은 돈이 상당하지.
    난 듣지 않거나 읽지 않더라도 일단 좋아보이면 사놓고 보는 성격이라서.
    이틀 전에도 집에 내려갔다가 모아둔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있자니
    이런저런 욕망들을 참아가며 잘도 사 모았더군. 덕분에 처분하기에
    너무너무 버거웠지만, 당시에는 무엇이 그리도 좋았는지. 버릴려니
    아까운 생각 뿐이더라. 비록 잡동사니에 불과했지만.

    성숙한 사람이 안 되었다고 해서 뭐 큰일이라도 나겠어.ㅋㅋ
    이제부터 그런 편견은 버리시길. 자네는 아무래도 누님들의
    영향이 너무나도 큰 것 같아. 여러가지 고정관념들이 아직까지
    자네에게 영향을 주거나 말을 하는 것을 보면. 몰론 그런 기준들이
    자네 누님들의 영향이라는 가정에서 말야. ^^

  2. 녀석 이번에 책장에 모아 놓은 것은 언제 다 읽을래?
    지난 학기에 모아 놓은 것이랑
    또 이번 학기에 모아 놓은 것이랑
    그것 전부 읽으려면 딴 공부는 하나도 못할 듯…

    그나저나 책장에 대한 것은 누나들이 심어준 고정관념이 아니라구
    책에 대한 열정은 9살때 읽은 닥터스의 한 문장에 기인하고 있다고.
    ‘그날 이후 바니는 바닐라 아이스크림만큼이나 책을 좋아하게 되었다.’
    뭐 대충 이런 문장인데 9살 나에게는 삶을 바꿔버릴 말이었다고.

    지금 생각해 보면 닥터스는 9살짜리에게 조금 버거운 소설일텐데
    거기 나온 모든 단어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심지어 사랑에 관련된 기술까지.
    9살이나 24살이나 어휘력에서 별 차이가 없는 것을 보면
    난 도태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군.

    그리고 우리 형제들은 각자의 책자을 따로 소유학 있다고
    물론 좋은 책의 대부분은 내가 사들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각자의 컬렉션이 특색이 없는 것은 아냐.
    (그런데 잊어버린 책도 꽤나 많은 듯… 이사 한번 할 때마다
    책이 줄어들어…)

  3. 맞는 말이야, 난장이!
    넌 원래가 따라쟁이지만 책을 소장하는 취미는 누나들 것이 아니지. 그런데 말야,
    닥터스는 둘째언니가 가져와서 사춘기 누나들이 재밌게 읽다가 지겨워져 방치했던 소설인 것 같군.
    아무튼 너의 책읽는 취미는 누나들을 뛰어넘는 재창조 수준이야.
    누이는 언제나 너의 콜렉션을 다 소화해낼까?
    난 이방 저방 쌓여있는 책들이 무거워보여 싫더라.
    누나방에 책이 없는 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인가?
    아님 내가 문화인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님 누나가 소장하고 싶어하는 책들이 비싸기 때문일까?

    실컷 자고 일어나니 심심하네.
    앞으론 네 코멘트에 딴지걸기를 취미로 삼아볼까해. ㅋㅋ 각오해라. 난장이

  4. 체스도 그렇고.
    몇가지 취미는 순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아닌가? 내가 워낙 잘 물들는 편이라
    누가 내 취미의 윈주인인지 나도 잘 모른다고.

    그나저나 닥터스를 비록한 통속소설은 다 어디로 간거야?
    집을 아무리 뒤져도 한권도 안보이네
    아니군 야망의 계절 딱 한권 있네.
    제프리 아처가 여자인줄 알았던 때도 있었는데…
    혹시 저번에 이사할 때 헌책방에 팔아버린 것이야?

  5. 그 닥터스에 관한 진실은…
    그건 내가 대학입시신체검사가 할때 기숙사에서 기다리기 지루해서 사서 본 책이다… 내 참 그리고 그건 아마 은숙이 빌려줬다가 시집가면서 땡한것 같은데..
    물론 나도 책을 소유하는 건 그다지 별로..
    맘이 무거워져서 왠지 의무감이 날 누르는 것 같거든…
    가능한 난 가슴속에 집어넣으려 하지….
    난 도서관이 좋아.. 신기한 걸 구경하는 늙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이랄까…
    막 흥분이 되거든….
    그런데 요즘 종이에 인쇄된 글자의 묶음은 많아도 진짜 책은 어디로 갔나…

  6. 여기서 잠깐.
    세상에 닥터스가 누나가 사온 오직 한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리고 누나가 사온 것은 달랑 상권 하나였다고…
    게다가 하권을 빌려온 데가 은숙이 누나네고.
    9살인지 10살인지 그무렵 봄에 서점의 베스트셀러에 진열된
    닥터스가 내가 읽은 최초의 에릭 시걸식의 통속 소설이었다구.

    게다가 양들의 침묵을 한챕터씩만 읽고와서는 날마다 찔끔찔끔 이야기해주는
    누나들이 그때는 왜 그렇게 얄미웠는지. 결국 3일째 되는 날에는
    학교끝나고 서점가서 다 읽고 와서는 누나들 이야기에 심드렁했다는….

    그리고 도서관 서가에서 딱 1년만 살아봐.
    다시는 그런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
    알다시피 내 스무살은 통째로 서가에 바친 시간이라서….
    아무튼 추석때 내려오면 재밌는 활자묶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야.
    그리고 누나가 몰라서 그러는데 내 책상에 꼽힌 가이스 밀턴의 책도 꽤나 재밌어.

    참. 누나가 어렸을 때 사온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 때문에
    시공사하고 변호사 모두 싫어하게 된 것 알아?
    내가 법대에 안간 것은 순전히 그 탓이라구.

  7. 에라, 난 모르겠다. 내 기억엔 중1땐가 둘째언니가 보는 걸 이틀동안 넘보다가 겨우 차례를 얻어 읽었던 기억이 나네. 아무튼 논쟁은 만나서들 하라구. 아~ 내가 시작이었지. ㅋㅋㅋ

    그리고 익군! 너 꼬마때 체스 말로 군대놀이하던, 그 시절 기억나는가? 그때 하수구에 빠져있던 체스말 주우러다니며 다신 체스 안사준다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불현듯 스치는 군!
    ㅋㅋㅋ. 네 블로그 테러도 생각보다 재밌군.

  8. 그때는 겜비트의 오묘한 세계를 잘 몰랐었다구.
    수를 읽는 기쁨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뭐 그리고 학교 다니기 전 코흘리개가 다 그렇지 뭐.

    체스 피스하고 도미노 블록 이용해서 참 다양하게 놀았던 기억이 나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름대로 복잡한 룰이 있었다고.
    아무튼 닥터스에 대한 기억 되살리기는 끝내자구.
    우리 세대에서는 잘 읽지도 않는 구닥다리 책이 되어버린지 오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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