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는…

19살 10월에는…
얼마남지 않은 수능 준비 대신 달구경에 빠져 있었다. 바흐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들으며 어두운 복도 조명 아래 문제집을 푸는 척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루에도 몇시간씩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느긋하게 달구경을 할 수 있었다. 친구들은 시험을 앞둔 묘한 긴장감이 싫어서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오래전 외워두었던 시들을 음미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가을밤이 주는 정취라는 것. 소슬한 바람이라는 표현이 지닌 풍부함을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리고 치기 어린 낱말을 가지고 꽤나 그럴 듯한 표현을 곧잘 만들어 내곤 했는데 지금 내 손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20살 10월에는…
가난한 도서관. 낙엽을 쓸 사람이 없어서 낙엽 더미에 발이 한움큼 빠지는 그런 정원을 가진 도서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도서관 옆에는 고적하다 못해 쓸쓸함이 감도는 성당이 있었던 것 같다. 서고의 창을 통해 보이는 성당의 투박한 조각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 아마 그때 사진에 맛을 들였더라면 가을 햇살이 지닌 차분하면서도 말할 것은 다하는 그 빛에 매료되어 인생을 방치했을 지도 모르겠다.(지금도 난 사진을 찍을 때면 그 빛을 생각한다. 그리고 좌절한다. 사진에 취미를 붙이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며)

조금 높은 지대에 위치한 도서관의 발코니에서는 넓은 시내가 한 눈에 보였다. 하루에 드나드는 사람이라고는 채 열명이 넘지 않는 그런 도서관에서 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2>을 읽고 있었다. 눈부신 햇살에 격자살에 쪼개지는 그런 위치에서. 오늘에서야 생각난 것인데 내가 <오래된 정원1>이 아닌 <2>를 들고 있었던 이유는 <1>을 빌려간 아가씨에게 말을 붙여보기 위함이었다. 잘록한 허리가 매력적인 사람이었는데 예쁜 몸매와는 달리 목소리가 무척이나 탁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름과 목소리에 끌리는 나로서는 감기에 침범당한 아픈 목소리이길 바랬지만 내가 확인한 것은 신의 공평무사함이었을 뿐이다.

가을이 끝난 후 그 아가씨를 세번 더 보았다. 한번은 서점에서, 한번은 까페에서, 또 한번은 올 봄에. 책 대신 나를 관찰하던 시선과, 까페에 혼자 앉아 우리쪽 바라보던 시선이 기억난다. 그리고 올 봄에 보았을 때 흐트러진 차림새와 그곁에 서있던 거친 남자의 말투도. <오래된 정원>이 생각났다. 과연 그녀는 그 <2>권을 읽었을까?

[#M_ more.. | less.. | 21살 10월에는…
시작은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일거리로 압사당할 것 같던 일상도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고 <혼자 사는 삶>이 가져다 주는 나른함을 십분 즐기기 시작했다. 일요일에는 산책과 애플티를 즐기기 시작했고, 삶은 지극히 온건했다. 하지만 추석 연휴를 맞이해 집에 내려가는 길에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옥수역에서 마주친 초희와 그녀의 애인은 평화로웠던 일상은 격한 혼돈으로 밀어 넣었다.

가을 햇살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낮에는 책과 이런 저런 <일거리>에 미쳐 있었고 저녁에는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밤을 보냈다. 혈관을 열면 피대신 알코올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주변에서는 어긋난 시간대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추측만큼은 무성했는데 어느 것 하나 진실을 끄집어 내지는 못했던 같다. 수다스럽긴 하지만 침착하고 사려깊다는 소리를 듣는 나에게 숨겨진 또 다른 인격을 발견했다. 뻔뻔스럽고 블랙 러시안을 마시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나를 포함한 또 다른 인격을…

이분되었던 삶의 혼란을 정지시켜 준 것은 누군가가 뜻없이 던진 한마디와 겨울 못지 않은 매서운 바람 속에서 왼손을 잡아주었던 한 친구 덕분이었다. 뜻없이 던진 말과 친절이었기에 오래지 않아 효과가 사라지긴 했지만 지금도 녀석을 스치는 불운을 가장한 소소한 장애물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때의 친절을 빚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22살 10월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연락처를 주는데 인색하다. 한번 외운 연락처는 좀처럼 잊어버리는 법이 없지만 그만큼 새로운 연락처를 추가하는데 망설임을 가지고 있다. 외우지 못하는 연락처를 받는다는 것은 상대에 대한 실례라고 배운 까닭이다. 그런데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고 느껴지던 이른 아침 낯선 번호가 찍힌 메세지가 도착해 있었다.

낯선 번호의 주인공이 내뱉던 잠에 취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이상한 희열이 마음 속을 휘감았다. 삶은 일거리와 레포트, 발표 준비로 그 어느 학기보다 번잡했지만 하루 하루가 축제 같았다. 앉은 자리에서 원고지 40매를 작성하는 기염 선보인 것도, 바쁜 내 삶을 사랑했던 것도 알고 보면 낯선 번호의 주인과 공유할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였다.

다음 학기에 하려던 휴학을 한 학기 미룬 까닭도 실상은 축제를 임의로 연장하기 위함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학기가 나에게 앗아간 것들이 많은데도 당시의 난 상황에 취해 맹목이 되어 있었다. 행복감에 취해 장래에 다가올 먹구름의 전조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바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22살 가을의 햇살은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21살 가을보다도 덜 다채로웠던 것 같다. 빛은 한결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나 교조주의적인 느낌을 간직한 빛이다. 하지만 곁에 지켜볼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힘도 생명도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한 빛조차 상쾌하게 만들었다. 내 빗장뼈에도 오지 않는 녀석의 그림자를 내 키만큼이나 늘려주는 가을 햇살이 마냥 고마웠는데 지금은 아득한 먼 일이 되어 버렸다. 두리뭉실하게 뭉쳐진 한 덩어리의 기억 묶음이 되어…

23살 10월에는…
식탁에 앉아 까페 베로나를 마시고 있었다. 서예를 배우고 있었고, 접사와 높은 하늘을 담아 내는 데 정신이 없었다. <방각본 살인사건>을 읽었고 처칠의 <폭풍의 한가운데에서>를 머리맡에 놓고 살았다. 홍차를 우려내는 실력이 이 무렵에 최고에 이르렀으며 포스팅의 재미에 빠져 있었다. 절친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재밌다고 생각되던 대학 동기의 홈페이지를 읽는 재미에 저녁을 보냈고, 술과 전화, 친구를 모두 멀리했다.

평화로워 보이는 일상이었지만 비참함에 자존심은 난자당해 있었고, 이름으로 한 몇가지 약속에서 스스로를 꺼내주었고, 대신에 새로운 약속을 몇 개 받아내었다. 여전히 사랑이란 감정에 매달린 내가 싫었다. 잘 벼러진 칼로 비천한 감정 덩어리를 베어내고 싶었다.

그달 하순에 캠프에 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읽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바람이 급격하게 차가워졌고, 낙엽은 색을 감지하기가 무섭게 땅에 내려앉았다. 아주 오랜만에 아무 생각이 없는 나를 발견했다. 미래도 과거도. 현재도 없는 인형이 연병장에 앉아 있었다. 우연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는데 스무살 가을에 보았던 그 빛무리가 낮게 걸려 있었다. 고개를 돌리지 못하다가 뒷열의 소총에 부딪쳤고 입술이 찢어져 피가 났다. 꽤나 달콤했다. 입술과 입안에서 흐른 피가 혀과 코를 자극하는 순간에도, 쓰라림과 통증이 교차하던 순간에도 빛을 감상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마치 자신이 빛을 탐구하는 화가라도 된 듯이…

24살 10월은…
겨우 이틀 밖에 살지 않았지만 내 삶을 채우는 것은 해야할 일들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갖고 싶은 능력의 기다란 목록이다. 책상에 처음으로 액자가 놓였고 액자의 주인공을 경외하고 있다. 하지만 몸을 움직여, 팔을 움직이고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혼자인 상태이고, 친구들은 너무 멀리있다. 하지만 하룻밤쯤은 술과 바람을 벗삼아 허공에 날릴 필요를 못느끼고 있다. 두 눈이 감긴 것은 아니지만 미래라는 하얀 덩어리가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해 가을이 어떤 빛을 띄고 있었느냐고 십년 뒤 아내가 물으면 눈이 멀어 있었다고 대답할 것 같다._M#]

6 thoughts on “10월에는…”

  1. 20살의 그녀는 L이구나~크크. 그녀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걸.

  2. 때로는 모른척하는 것이 미덕이라구.
    맨마지막 본 모습이 너무 충격적이라 되도록 잊고 싶다니까.
    아무튼 ‘~크크’가 뭐야.
    의성어 흉내내는 버릇 내가 얼른 고치랬지!

  3. 하여간 잔소리는 누구한테나 하는구만.
    왠지 할말이 없을 때 버릇처럼 내뱉는 느낌이야.ㅋㅋ

  4. 내뱉는 것은 아니구.
    마음 씀씀이가 드러나는 것이지.
    그런데 이말 쓰고나니 갑자기 퇴계와 고봉의 4단7정 논쟁이 떠오르네.
    오늘 내일은 읽을 여력이 안되겠고, 일요일날 한번 찾아봐야 겠다.

    아무튼 할 말 없을 때 ‘갈굼’을 일삼거나
    ‘잔소리’를 하는 것은 필부필녀의 자연스러운 情의 발현이 아닐까?

  5. 설마 내포된 감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일까!!
    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ㅋㅋ
    어린왕자의 여우의 말처럼 벌써부터 설레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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