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개인적으로 난 대한극장을 좋아한다. 넓은 스크린이 주는 만족감도 만족감이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많은 추억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좁은 에스컬레이터와 스타벅스, 바람이 시원한 발코니에 얽힌 수많은 시간들은 분명 영화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훼손되지 않은 순결한 상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내 삶의 개인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대한극장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보는 행동은 과거란 캔버스에 덧칠을 해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았던 기억을 구겨버리는 행동이랄까? 아무튼 그랬다. 그리고 마음 속이 개운해짐을 느꼈다.

사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이하 세상의 중심)>는 열다섯에 보았던 <러브레터>만큼의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사춘기의 가장자리에 접어든 나에게 <러브레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문이 커져 가는 격랑과 같은 것이었는데 <세상의 중심>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시종 일관 밋밋한 평면 구상을 보고 있는 기분이랄까? 옆에서 하나가 작게 말한다. [인디영화 같았는데 해외 로케이션도 다녀왔네요] 정말 그랬다. <소품>의 섬세함은 좋았지만 <소품>을 <소품>답게 만드는 것은 보편적 공감이다. 우리처럼 쉽게 감동하지 않는 사람조차도 마음을 열게 만드는 그 무엇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눈시울이 붉어진 나의 지기에게는 남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나 보다. 마음이 허전함으로 가득 채워진 나의 친구에게 남자 주인공의 토로는 [결코 자기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내심]을 표출하는 기능적 편익을 제공했다. 한번쯤은 이 녀석도 저렇게 말하고 싶었겠지. 나도 저렇게 비에 젖고, 다리가 풀린 몰골로 울먹이며 말하고 싶은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이야기의 매력은 대리 만족에 있다는 말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매력은 간결하지만 많은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편리성에 있다는 말도 떠오른다. 입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야기에 공감을 표하는 끄덕임 하나만으로도 전달되는 메시지의 최종 수신자의 장기부재가 안타깝긴 하지만 말이다. 사랑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수용하려 하는 어리석음이라던데… 우리는 끊임없이 어리석은 자가 되려 한다. 어제도 그랬고, 심지어는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도 그랬다.

그런데 <세상의 중심>에는 이상한 특징이 하나 있다. 영화의 완성도를 묻는다면 다양한 말이 나올 법한 영화인데 친구(male)가 보러 갈만한 영화라고 묻는다면 너의 십대 시절 로망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는 화답이 즉각적으로 튀어 나온다. 극중에서 그려내고 있는 여주인공 아키의 이미지는 청소년기 누구나 꿈꿔봤을 환상 그 자체다. 큰 키에 조각 같은 몸매, 길고 곧은 다리와 나를 위해 웃어주는 이름 모를 소녀의 이미지. 거기에 용기 없고 두서 없는 나를 위해서 먼저 내밀어주는 손.

필연적으로 죽음을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는 플롯이지만 죽음에 담담한 것은 영화 전반부의 아름답고 환한 이미지에 압도당해 죽음을 지각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진행되고 있는 순간에도 파리한 안색 위에 젊고 건강했던 시간이 겹치는 것은 우리네의 잔인한 심성 때문인지 의도된 효과인지 알 수가 없다.

단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토록 오랫동안 주인공의 마음 속이 공허했던 이유에 대한 심정적 동의 하나뿐이다. 건강하고 아름다웠던 시간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나 강렬해서 죽음이 장난처럼 느껴지는 것. 그래서 죽음이 끝마무리가 덜 된 것 같은 느낌. 여전히 존재하고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래서 더욱 외롭고 공허한 빈곤의 악순환 단지 그것뿐이다.

7 thoughts on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1. 영화를 너무 전투적으로 보지 말란 말이야!
    미국식 코미디가 우리나라에 통하지 않는 이유가 여럿 있지만,
    ‘어디 웃길테면 웃겨봐라!’라는 다짐으로 무장한 채 감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에 따른 것도 무시 못한다고 하던데,
    나이가 들었어도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영화 아니던가?
    공감이나 찬반을 떠나서 상영시간만큼은 마음껏 타인이
    되어보는 일이 좋아서 난 영화를 보러 다닌다.
    하긴 그래서 분석적인 영화평은 못 쓰는 것이겠지만.ㅋㅋㅋ

  2. 평소와 다르게 긴장을 완전히 풀은 채 몰입의 즐거움을 누리러 갔는데.
    도대체 몰입이 안되는 것이야. 기억은 더듬어 비슷한
    감정 이입의 소재를 내 삶에서 찾았지만 그것도 유효 기간 만료!

    타인이 되어보려 했으나 내 즐거움은 마음에 있지 않고
    눈에 있었던 까닭으로, 연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선에 있었던 까닭으로 또 불가!

    타인이 되어 보는 것은 오로지 책에서만 가능해.
    감독이 안내하는 시점에 충실한 나로서는 그것도 불가!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소슬한 눈물 한방울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에 실린 생기와 즐거운 표정이라는 사실을 다시 인식

  3. C.P. 아마 너도 나와 같은 감상이 나왔을 걸^^
    어제 11시에 쓰려져 잤음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너무 피곤하다.
    한참 새벽에 학교 다니던 시절. 따스한 햇볕을 쐬기 전까지
    의식이 깨어날 줄 모르던 그 때가 같아.
    물론 의식이 죽어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느릿하게 움직인다.
    잠시 햇살 좀 쐬주고 다시 책상에 앉아야 겠어

  4. 차마시면서 산책하고 왔다.
    우리가 소년이었을 때는 스물 넷이면 대학 졸업하고,
    당연 좋은 직장 다니면서 결혼하려고 폼잡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았네.

    이런 날씨에 이렇게 차마시면서
    좋다 못해 쪼개지는 햇살을 보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최대한 눈에 담아두려고 애썼는데
    부드러운 조명에 적응된 내 눈으로는 무리다.

    life in Mono듣고 있는 중. 벌서 시월 중순이네.
    끝내놓은 것들도 많지만, 아직 해야할 것들이 더 많다.
    늘어나는 책들과, 나빠지는 시력만 기억에 남을 것 같은 가을을 보내며!

  5. 솔직히 영화는 아니라고 봐요

    시간이 되신다면 11편짜리 원작 드라마를 보아주시길 ^^
    진정한 소품의 섬세함을 느끼실겁니다
    동시대성이랄까 촌스러움이랄까 순박함이랄까….순수랄까.

  6. 예. 솔직히 묽은 장국 같았어요.
    하지만 고등학교 중간고사때 뒷뜰에서 친구들과 나누던
    이야기가 생각나 무료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키에 대한 설정이 친구 녀석들이 원하던 딱 그 모습이었거든요.

    소품의 섬세함에 관해서라면 드라마쪽이
    우세하다는 평가가 대세인 것 같습니다.(휠씬 아기자기하다는 평이…)
    전 일어를 전혀 못하는 까닭으로(한자만 읽는다는…)
    소설로 다시 한번 읽게 될 것 같지만요.

    사실 < 소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오늘날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소품으로 이해될까봐 고심했습니다.
    소설과 소품에 대한 연암의 글을 감명깊게 읽은 저로서는
    소품이 작은 생각 혹은 생활의 주변에서 발견되는 소소한 깨달음을
    나타내는 단어였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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