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rimination & Impartiality

난데 없이 걸려온 전화. 친구이면서 친구가 아닌 그녀는 이상한 질문을 했다.
[읽은 책이 아니라 네가 가진 책 가운데 여성이 쓴 책은 몇 권이나 되니?]
이럴 때 난 돌려 말할 줄 모른다. 아니 돌려 말할 줄 알아도 그 녀석에게 돌려 말하기란 쉽지 않다. 마음에서부터, 아니 몸이 거부해 버린다.

[브랜드마스터-낸시 코엔, 골드만 삭스-리사 엔들리크. 상품의 역사-리사 자딘, 코르티잔 매혹의 여인들, 며칠 전에 산 샨사의 소설. 펄 벅. 허난설헌. 제인 구달, 시오노 나나미의 책 몇 권,대충 20권 내외인 것 같은데]

[뭔가 느껴지는 건 없니?]
[책장의 성비를 50대 50으로 맞춰야 남녀 평등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가중치가 다른 셈이지. 내가 좋아하는 글들은 섬세함보다 직관과 분석력이 우선이거든.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성을 떠나 가중치를 부여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게다가 원작자가 아닌 번역자를 기준으로 바꿔보면 성비는 대충 65대 35에 근접할걸. 하지만 본연의 문제는 도대체 작가의 성이 왜 중요한 것인지 이해가 안된다는 사실이야]
[물론 책장에 성비를 맞추라는 의미는 아냐. 하지만 못내 지겨워 졌어. 수컷들의 세계와 수컷들의 글쓰기. 수컷들의 대화가 모두 지겨워]

가끔 사람들은 나의 성을 잊어버린다. 나역시 남자임을. 수컷임을 잊어 버린다. 그녀가 지적하는 수컷의 몰이해함을 태생적으로 물려 받은 사내임을 잊어버린다. 이해하려는 마음가짐은 늘 준비중이지만 태생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 수컷임을 감지하지 못한다. 마음 가짐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본질적인 벽 앞에 서서 흐리멍텅한 표정을 짓는 나를 보면서 얼마나 답답해 할까? 태어나서 단 하루도 여자로 살아보지 못한 내가 어떻게 여자를 이해한다 말할 수 있을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장의 가중치에 약간 수정을 가하는 것과 나 하나 바른 몸가짐을 가지는 것. 겨우 두가지뿐이다. 여자로 태어나 겪는 패널티를 이해할 수는 없지만 안다. 남자로 태어나 얻는 어드밴티지가 무엇인지 매우 잘 알고 이해한다. 다시 태어나 성을 택할 수 있다면 또 다시 남자를 택하리라 생각하는 나의 비겁함을 안다.

하지만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내가 이 문제 관하여 바꿀 수 있는 것들의 범위는 나 한사람을 넘지 못한다. 그래서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하지만 수컷들의 대화가 아닌 수컷들의 글쓰기에 대해서는 약간의 아량을 배불어 주었으면 좋겠다. 수컷들의 글쓰기를 삶에서 추방한다면 그녀가 좋아하는 로맹가리, 가브리엘 마르케스, 생텍쥐페리 모두 잊어야 할 것이기에…

6 thoughts on “Discrimination & Impartiality”

  1. 죄송하지만, 타로카드 이미지가 무척 맘에 들어서 그런데 어떤 덱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2. 세상에 재수없는 게 수컷도 암컷도 아닌 척하는 수컷이라고 생각해요. 여성향을 가장하고 알량거리는 수컷일수록 알고보면 더 찐한 마초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수컷에 머무르지 않는 사람이라면, 수컷이 아닌 척하기 이전에 말씀처럼 까맣게 잊어먹고 의식하지 못할 겁니다. 그런 상태라면 굳이 수컷이 아닌 척, 자기 패니스를 감출 필요가 없죠.

  3. 사실 여성향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몰라서 여기저기 한참 찾아보았습니다. 수컷과 암컷에 대한 문제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아요. 무엇이 올바른 성적 아이텐티티인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겠죠. 성적 아이텐티티가 개인의 섹슈얼 프리퍼런스와 혼용되는 현대 사회에서는 특히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단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 정도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끔 마초이즘을 경멸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해요. 하지만 마초이즘을 경멸하는 자신이 남성으로써 그것의 부당함을 경멸하고 있는 것인지, 지성이라는 가면이 그것을 경멸하도록 강제하고 있는 것인지 헷가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이 문제는 의당 저만 느끼는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교육을 통해 형성된 외피와 그 안에 존재하는 무지한 수컷 사이에서 적절한 포지셔닝을 찾아 헤매는 것이 현대 남성의 숙제일테니까요. 시간이 조금 더 흐르면, 생활 양식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면 보다 쉽게 포지셔닝을 찾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어렵기만 한 것 같습니다.

    써놓고 보니 마초이즘을 본성이라고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군요. 하지만 광의의 마초이즘에는 수컷이라면 이런 행동을(물론 긍정적인 행동이겠지만요) 해야 한다는 강제력을 지닌 관념의 지배까지도 포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광의의 마초이즘에서 자유롭기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고, 의지의 조화와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무튼 성적 정체성은 동일 계층의 수컷과 암컷의 컴포지션이 아니라 다층위의 관념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층위의 가중치가 성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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