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loftiness of ‘the humanities’

개인적으로 <인문학의 서재>라 약칭하는 블로그에 가면 꽤나 재미있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서평 주제로 고른 책 가운데 상당수는 익히 읽어온 것이고 그 가운데 어떤 책들은 내가 가장 아끼는 책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의 서평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책을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시각차에 놀라게 된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인문학적 교육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똑같은 텍스트를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할 수도 있구나. 나에게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이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니구나. 이래서 인문학이 배고픈 학문으로 오해받는 것이었구나. [입은 거칠지만 행동은 젬병이다]라고 인문학을 혹평했던 한 사람이 떠올랐다. 당시에 나는 그런 혹평에 반감을 가졌는데 오늘의 나는 그의 의견에 슬금슬금 긍정을 표한다.

담론은 항상 필요하다. 철학의 부재가 안타까운 세상을 살고 있기에 철학적 담론과 사유하는 방법에 대한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항상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이 없는 담론은, 실행력을 겸비하지 못한 담론은 결론 없는 소설처럼 공허하다. 단지 최선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차선을 포기하기에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다. 물론 <차선의 역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내가 아는 인문학 교육의 밑바탕에는 <차선>의 인정도 <차선의 역리>도 없다.

사실 오늘의 인문학이 설정하고 있는 최대의 적은 자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처럼 보인다. 자본주의와 프래그머티즘이 최선의 아니라는 사실은 잘알고 있다. 어쩌면 최악은 아니지만 차악에 해당될지 모른다는 사실도 안다. 하지만 가장 나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결론 없는 담론을 양산 하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최악이라면 차악을 보여달라. 인문학이 차악을 발명해낼 수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지난 한 세기 동안 인문학이 발명해 낸 것은 형체조차 흐릿한 발명의 그림자뿐이었더라는 사실이 이제는 너무나 명백해 보인다.

어쩌면 이런 내 글이 상식 없는, 혹은 생각이 없는 글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화의 여지조차 막아 놓은 답답한 글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영역에 발을 담그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인문학이야말로 대화의 작은 여지조차 막아 놓은 오만한 학문이다. 그들은 인문학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인문학의 단어와 용례를 사용하며 타 영역 고유의 언어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은 비난의 기미라도 보이면 그들은 교양으로서 지니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진짜 현실과 마주하기보다는 현실로 의제된 현실과만 마주한다. 인문학의 언어로써 다룰만한 가치가 없는 현실은 현실이 아닌 것으로 부당한 취급을 당한다. 하지만 인문학이 교양이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더 이상 인문학은 모든 학문을 이해하는 기본 언어가 아니다.

가령 경영학이나 경제학의 영역에서 이런 농담을 던진다고 생각해 보자. [솔로우에게는 저축이 미덕이겠지만 그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저축은 악덕에 가까운 것이다] 사실 이 명제 하나를 위해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심지어 지금도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저축과 소비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는 문제는 여전히 정책의 핵심부에서 중요하게 논의되는 사항인데 인문학은 [소비의 시대를 비판한다]는 한마디로 일축한다. 그렇다면 저축은 좋은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대답이 없다. 그저 나쁘지 않다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내놓을 뿐이다. 수 백년 간의 논란,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찾기 위해 사유한 공든 노력이 인문학의 언어로는 전혀 무가치한 것이 된다.

사실 난 인문학을 좋아한다. 하지만 인문학의 언어로 다른 모든 영역을 이해할 수 있다 믿는 오만함만큼은 버려줬으면 좋겠다. 앞에서 설명한 예처럼 인문학과 다른 영역은 같은 단어라도 서로 다른 체계와 관념을 표상 한다. 인문학이 모든 학문의 어머니로 군림하려는 태도를 유지하는 이상 인문학은 배고픈 학문이 될 수 밖에 없다. 인문학이 진짜 현실에 적응력을 지닌 진짜배기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그럴듯한 사실만을 현실로 의제하는 그 못된 버릇 먼저 버러야 한다. 아니 인문학이 보기에는 당연한 어떤 사실이 우리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이상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인문학에서는 당연하지 않는 문제에 귀 기울여 줄 이유가 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인문학의 울타리에서 인문학의 언어로 세상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다른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그 고유성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인문학의 새로운 발명에 목말라 하는 것처럼 인문학도 타 학문의 발명과 발전에 목말라 해달라. 인문학의 위기, 혹은 배고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문학의 개방성이다. 우리는 인문학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왜 어째서 그들은 다른 영역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아니 이해하면서도 외면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인문학의 위기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인문학의 순수성을 수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문학은 인문학만의 순결을 유지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직 멀었다. 시대에 맞은 인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인문학은 조금 더 진창을 구르고 조금 더 잘 놀아야 한다. 순결성 따위에 얽매여 고고하게 늙어가는 인문학은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 인문학의 빈곤, 발명의 부재 이 모든 것은 스스로에게 비롯된 것임을 직시할 때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2 thoughts on “toploftiness of ‘the humanities’”

  1. 점심먹고 잠시 나온거라 길게 쓸수도 사실 길게 쓸 능력도 없지만 동의는 하지만 역시 옹고집 인문학이 남아줬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못하지만 다른사람이라도 어떤순수인지는 차치하고 순수함을 지켜나가겠다는데 옳다 그르다고 말하기가 꺼려지네요. 시대가 변했기에 더 그런걸지도요 ^^ 물론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면 ‘밖으로 나와’라고 말해주겠지만요.

  2. 인문학이란 거대한 카테고리에 대한 제 감정은 애증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보고 있노라면 답답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요. 균형 잡힌 사고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저 역시 그렇게 자신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근래 들어 인문학이 보여주는 균형 감각의 상실에 실망이 크답니다.

    사실 요즘의 인문학적 관점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담론은 생기가 없습니다. 이른바 주된 테마라는 것이 있죠. 열이면 일곱은 이런 테마를 기초로 논리를 전개해 나갑니다. 하지만 테마에 연연할수록 담론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칭얼거림’으로 전락할 소지가 커집니다. 누구나 아는 테마를 토대로 논리를 재구성하는 것이 인문학이라면 그것은 학문의 기본 토대인 사유를 왜곡하는 것이 될테니까요.

    궤변처럼 들리겠지만 순수성은 교류를 통해서만 확고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상태의 교류는 순수성을 저해하는 독이 되겠지만 오늘의 인문학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혼미에 접어든 것 같습니다. 세분화 속에서 노인에 접어든 인문학의 발화(담론)는 이제 유형화의 길에 접어든 것처럼 보이거든요.

    감히 이런 단어로 묘사해도 될련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의 몰락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유형화와 미세화를 통해 형이상을 향해 달려가는 인문학을 이해하기란 힘에 부치는 일이거든요, 순수를 지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일이라 해서 항상 적절한 일이 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정체성을 지키는 것 혹은 학문적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과 거만함을 구분하지 못하는 인문학의 문제점이 내일의 인문학을 사람들의 의식에서 불가해한 것으로 만드는 첨병 역할을 한다면 그것은 이른바 ‘고결한 죽음’이 되겠죠.

    하지만 테네사님의 의견에 유혹을 느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군요. 순수란 혹은 퇴폐란 하나같이 아름다운 것이어서 눈을 떼기 어려운 것이잖아요. 하지만 시대를 거스를 힘이 인문학에게 없다면 추세에 순응해서 영속하는 학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결한 죽음’을 맞이하는 인문학보다는 ‘늙어가고 노련해지는’ 인문학이 저에게 더 많은 의미를 깨닫게 해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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