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처럼 흘러가는 일상 속에

1.
간만에 학교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제법 긴 드라이브도 즐겼고 산등성이 탐색도 다녔다. 잠시 낮잠을 즐기기도 했고 점심마저 공짜로 먹었으며 일당 받은 만큼 수다를 떨고 가야만 한다는 아저씨 덕분에 한참이나 웃을 수 있었다. 6월에 다녀온 단체 소풍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다는 정도. 여비로 받은 3천 500원으로 마시는 맥주 한 잔의 시원함이 있기에 다들 싫은 내색들을 하지 않고 다녀오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법으로 보장된 사유로 인한 수업 불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이다. 더위에 녹초가 된 친구 하나는 일곱 시로 수업이 옮겨졌다며 지친 표정으로 수업을 들으러 갔다. 웃으며 기분 좋게 다녀오려고 노력하지만 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소집되는 훈련을 좋아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군복 주머니에서 깜지를 꺼내 틈틈이 무언가를 외워야 할 정도로 바쁜 시간을 앗아간 법이라는 존재 앞에서 무기력한 우리에게 어느 강사의 몰이해는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다가온다.

2.
이번 학기가 시작되면서부터 면도하는 주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면도를 거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사실 이런 다짐 이면에는 ‘복학생=아저씨’라는 대학 내의 평범한 진리 체제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아저씨로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아저씨로 보이고 싶지 않은 대상은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인상적인 다섯살 아래 터울의 한 아가씨이다. 아니 졸음에 취해 계단을 오르다가 발을 헛딛는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는 소녀 같은 아가씨 때문이다.

사실 옆 자리 혹은 건너 옆자리에 주로 앉은 이 묘령의 아가씨가 나에게 주로 던지는 질문은 상식적인 수준으로 요약이 가능하다. 이 묘령의 아가씨는 인상은 좀 험악해 보이지만 학구적인 복학생들의 친구인 나에게 ‘오늘 출석 불렀어요?’와 ‘시험에 뭐가 나오나요?’ 따위의 질문을 던진다. 오늘은 핸드아웃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시험에 출제하기로 공고한 것에 관하여 물었다. 『슈렉2』에나 등장하는 그런 고양이 눈으로 말이다. 그 눈에 넘어간 나는 친구들에게도 읊지 않은 수업의 전문을 순수하게 읊었다. 아니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그녀에게 풀이까지 해주었다. 묘령의 아가씨에게는 차갑고 불친절한 복학생 아저씨의 설명이겠지만 호의가 없는 경우에는 상대가 무안해질 정도로 친절한 표정으로 딱 잘라 말하는 내 못된 성격머리를 아는 친구들에게는 꽤나 놀라운 일이었을 것이다.

몇 주전인가에는 강의실까지 걸어가는 5분 동안 못 견딜 정도로 가슴이 떨려왔던 적도 있다. 수능이던 고시이던 이어폰까지 꼽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느긋하게 길을 걷는 나에게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는 지 모르는 지 이 묘령의 아가씨에게 난 ‘회전문을 잡아주는 낯선 사람’에 불과하다. 무언가 말을 걸어보고 ‘낯선 사람’에서 인식 안으로 걸어 들어갈 만한 노력을 기울 법도 한데 요즘의 나에게는 그것이 참 어렵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표명하는 것. 대화를 나누고 좋은 인상으로 기억되기 위해 벌이는 일련의 행동들이 예전과 다르게 낯설고 힘든 고단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내가 이 묘령의 아가씨에 관해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지는 않다. 관찰은 ‘거의 모든 것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늘 파란색 캔커피를 마시고, 신 맛보다는 쓴 맛과 어울려 한층 자극적인 단 맛을 좋아한다. 학과 안에 친한 동성 친구들이 거의 없다. 아는 이성 친구들은 군대에 갔을 시점이고 비슷한 나이 또래의 동성의 자매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버지 역시 이 곳 졸업생일 것이 분명하고 악필에 정리하는 재주가 없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포부가 있다. 하지만 포부만큼 노력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아마 이 묘령의 아가씨를 정의하는 가장 좋은 표현은 막연한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의지는 충만한데 정작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가벼운 방황의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 틀림 없다. 눈 화장을 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상이 달라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보통의 간격 사람들에게는 귀엽거나 혹은 조금은 잠에서 덜 깬 인상을 주겠지만 아마도 냉정할 만큼 스스로에게 대한 SWOT분석이 철저할 것이라는 점에 내 이름을 걸 수 있다.

사실 잠잘 시간을 쪼개 잠시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이유를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저 먼 훗날 한번쯤 꺼내보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사람으로 내 눈에 비쳤던 모양이다. 아울러 어떤 행동을 취할 여유가 없는 현실에서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이렇게나마 남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건 호기심과 관찰은 여기까지다. 난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기 전에는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위인이니 말이다.

7 thoughts on “바람처럼 흘러가는 일상 속에”

  1. 글에 잠깐 언급된 “복학생=아저씨”라는게 갑자기 많은걸 생각하게 하네요. 1학년때부터 사랑해마지않던 동기군이 이번에 복학했는데 워낙 키도크고 잘생기기도 해서 쉬울꺼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봄에 어느새 소개팅을 하고 어느새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것을 ‘다른이’에게서 듣게 되었거든요.(살짝 분노했죠 ^-^) 아무리 아직 외모가 20대 초반의 미남자라고는 해도 역시 복학생인것이겠죠(웃음) 외모의 문제가 아니라 저와 동기인 아이가 복학생이라면 저의 위치도 그 급이라고 이어지니 살짝 슬퍼지네요 ;ㅅ;

    약간의 푸념이었습니다 🙂 전 드디어 학기를 마무리 지었어요. 시험을 제외하고 말이죠 ^-^

    1. 복학생도 복학생 나름이죠. 외모로 커버가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는 암시로 볼 때 아직 저희가 말하는 복학생 레벨에는 이르지 못한 듯 싶군요. 어제는 시험 중에 복학생 친구들이 모여서 잠시 티타임을 가졌는데 1학년때 앞 뒤 번호로 수업을 모두 같이 들은 친구 녀석들이 5년 만에 재회를 하게 되는 기묘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더라구요.

      한 녀석은 1학년을 끝나자 마자 군대에 가고 나머지 녀석은 그 녀석이 복학을 즈음에 군대를 가고 나머지 녀석이 제대를 하고 학교에 놀러오니 어느 사이에 머리 빠지는 것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이십대 중반이 되어 있더라구요.

      아무튼 시험 잘 보시기를 빌께요. 저 역시 금요일에나 시험이 끝날 듯 싶습니다.

  2. 하하 용감해
    그리고 난 바쁜데 심심해 방학같은 것좀 있음 좋겟당

    1. 뭐가 용감하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걸.
      그리고 방학이래봤자 수업 없이 풀타임으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 빼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별다름을 못 느끼고 있다고.

    1. 방학 때 틈틈히 읽으려고 영문판하고 번역판을 모두 빌렸는데 도판 구성부터 레이 아웃까지 거의 완벽하게 똑같네. 반 챕터 읽었는데 번역도 원문과 차이가 없을 정도로 꽤~나 충실하다는 결론이야. 개인적으로는 가격이 만원 오르더라도 묵직한 장정을 입혔어야 하는데 말이야. 새책인데도 학교 책 역시 미세하게 허리 부러진 흔적이 있어.

      아무튼 잠시 쉬려고 서가 들어갔다가 자코메티의 작업실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얆은 두께와는 다르게 내용이 좋았어. 선물해 줄테니까 새로운 집주소 좀 메세징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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