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메레르(Temeraire)

 해마다 여름이 되면 평소라면 절대 읽지 않았을 소설을 집어 들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굳이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해 보자면 산이나 바다를 가는 대신 더운 여름을 달래는 나만의 피서법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해마다 여름이 시작되면 발표되는 바캉스를 함께 할 열 권의 책에나 어울릴 책 한 권을 집어 들고 너른 마루에 누워 즐기는 휴가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휴가라고. 사람에 치이고, 날씨에 치이고, 종국에는 휴가 자체에 치이는 그저 그런 평범한 휴가보다는 싸구려 소설 나부랭이를 읽는 내 휴가가 더 저렴하기에 효율적이라고 우겨보는 것이다. 더욱이 지록위마의 궤변을 위한 다양한 수치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쨌거나 이런 나만의 휴가에 동참한 싸구려 소설 나부랭이는 『테메레르』라는 제목의 한심한 소설이었다. 테메레르가 1급 전열함인지 2급 전열함인지는 아련한 기억 속에 묻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었지만 트라팔가 해전에서 H,M.S Victory 뒤에 있었던 배였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어쨌거나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용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이라는 광고 문구에 저항감 없이 책장을 넘기게 된 듯싶다. 수잔 클라크에 버금간다는 아마존의 리뷰가 눈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제 놈이 무슨 생각을 하던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저 내가 원하는 것은 2~3시간 정도의 무료함을 때워줄 만한 되도록 두꺼운 두께의 책이었다. 그래야 마루에 누울 때 베개를 삼아 낮잠을 즐길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사실 이 소설은 열세 살 정도의 소년을 대상으로 쓰인 ‘착한’ 소설이다. 저자가 그려내는 세계는 커미션도 없고, 사람들은 정의롭고 용감할 뿐만 아니라 세련되었으며, 그 시대에 보편적으로 통용되었던 악습들 또한 거의 그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시대 해군에 대한 묘사는 제법이라는 평이 나올 만큼 제대로 쓰여 있다. 물론 그런 묘사도 용이 등장하여 주인공이 공군으로 편입되는 순간 안녕을 고하지만 말이다. 용을 이용해서 벌어지는 공중 전투의 묘사는 박진감이 넘치기보다는 평범한 편이지만 크게 어려움 없이 시나리오로 고쳐 쓸 수 있을 정도의 섬세함은 갖추고 있다. 띠지에 둘러진 말을 신뢰한다면2~3년 후쯤 ‘반지의 제왕과 킹콩을 있는 새로운 판타지’라는 시끌벅적한 제목으로 스크린에 걸릴 것이 분명하지만 더운 여름이 아니라면 그 어떤 교훈과 통찰도 찾을 수 없는 이런 소설에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이 소설은  이제야 시리즈의 첫 권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요즘 같은 추세에 이는 블록버스터로 제작되기에 이상적인 조건이다. 더욱이 캐릭터나 전개, 내용의 난이도 모두가 영화 혹은 게임으로 제작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는 PG-13 등급의 여름 오락물이다. ‘소설이 그려내고 있는 인간의 본성’ 대신 새롭고  신기한 것에 끌릴 열 살에서 열다섯 살 사이의 사내 조카들에게 추석 선물용으로 줄만한 책!

P.S.  H.M.D. Temeraire라니 코메디가 따로 없다.

4 thoughts on “테메레르(Temeraire)”

  1. 닉군..
    송진냄새와 함께 보낸 지난 시간들이 언젠가는 마술처럼 드러나겠지?
    지금은 하룻밤 사이 사라져버린 모래언덕 같아도 한참을 가다보면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꺼야. 그렇지? ^^

    1. 이제 우리는 우리 삶의 1/3 가량을 걸어왔을 뿐이야. 그 마저 그 길의 4/5는 다른 방향에 신경을 써야 했고 그러니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어.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은 그 어느 세대보다 오랫동안 일터에 남아 있어야 하는 세대임과 동시에 무엇을 하던 완성할 수 있는 시간의 축복을 받은 세대라는 사실이야.

      설령 나타나지 않으면 어때? 그 시간만으로도 본인에게는 의미가 있는 법이야. 왜 죽도록 노력해야 하는 데? 내 말 역시 어설픈 아포리즘에 지나지 않지만 ‘죽도록’이라는 말보다는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해. 왜 타인의 ‘죽도록 미학관’ 따위에 갖혀 있으려고 하는 것이야? 왜 굳이 스스로 타인의 평가 혹은 관념으로 만들어진 감옥에 들어가서 극장의 우상에 빠져들려 하는 것이지? 어느 우상 하나에 빠져 있어야 한다면 차라리 난 동굴을 택할 것이야. 그 편이 자기만족과 발전에는 더욱 도움이 되니까 설령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영원히 구속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즐겁게 하도록 해. 앞으로 60년은 찾아야 할 ‘the only thing’을 하룻밤에 찾으려 하는 우를 범하지마. 그리고 그것을 타인이 제시해줄 것이라고, 타인이 그것에 어떤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 모든 사람은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살아 있는 나날 가운데 의미 없는 하루는 없다고 하더라. 단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하루가 있을 뿐이라나. 그 말에 따르면 의미를 발견하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지. 그러니 마법처럼 어느날 누나 앞에 나타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

      누나의 언덕이 모래 언덕이 아니라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자연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 빛의 다채로움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스러운 비율과 그 비율에 어울리는 색.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상을 생각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야. 아름다움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잖아.

      감상자는 정성을 보지 않아. 그저 그 속에서 감상자가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을 뿐이야. 그저 자신의 경험 속에서 만들어내었던 예술적 환영과 어느 부분이 비슷한지 또 어느 부분이 다른지를 찾을 뿐이야.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환영과 작품이 동화될 때 예술적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지. 모든 예술의 언어야. 단지 언어(기의)를 담은 수단(기표)이 다를 뿐. 대가들의 걸작을 볼 때면 그들이 나한테 늘어놓은 연설이 들리는 데. 그들이 보고 있는 환영이 나한테도 보이는데 그것이 감상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대가이고 걸작인 이유야 말로 나같은 평범한 감상자에게 그 환영을 전달하는 데 탁월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the only thing의 윤곽이야말로 이것이 아닐까?

  2. 동감이야.
    그러나 타인의 미학관에 따라서가 아니라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추구하고 있는거야.
    지금의 선생님에게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을 얻고자 함이지.

    예술의 발전 양상은 계단식이야.. 고원단계를 지나 한 계단 성장하는 식이거든
    지금 내가 한 계단 진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내가 보고 표현하고 싶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기술이야.
    최근 그림을 보았으니 동감하겠지.
    어떤 걱정을 하고있는지 알 것 같아. 걱정마라. 한두달이면 죽도록의 미학도 끝날테니까

  3. 테메레르 3 – 나오미 노빅 지음, 공보경 옮김/노블마인지금쯤 3권이 나와 있을거다.워크샵에 다녀오면 책상위에 있을거예요 라고 조팀장이 말했으니까 – 이것 때문에 며칠동안 12시까지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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