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e me if you dare!

Intro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내기를 한다. 아주 사소한 내기부터, 도박성이 농후한 내기까지, 가끔은 자신의 삶 전체를 판돈으로 걸은 내기를 하기도 하고, 가장 소중한 마음을 내기의 제물로 희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내기는 짜릿하고,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 사람들이 내기의 마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 아닐까? [Love me If you dare]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장치는 바로 이런 [내기]이다. 그리고 이런 [내기]를 통해 부풀었다 줄어 들었다를 반복하는 것이 이들의 [사랑]이다.

French Movie
최근 프랑스 영화를 보면서 확연하게 느낀 것은 과거의 영화와 매우 다르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프랑스 영화가 철학적이고 지루하기로 명성이 높았다면 요즘의 프랑스 영화는 경쾌하고 유연하다. 감독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필요도, 배우들의 조금 과장된 행동이 의미하는 암시를 찾기 위해 고생할 필요도 없다. 그저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재미있게 영화를 보고 나서는 길에 한 [10분쯤 나도 저럴까?]하고 생각해주는 것이 전부이다. 귀찮다면 생략해도 무방한…

If you dare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말로 해석하기 어려운 문구가 있다. 머리로는 이해 가능한데 우리말로 표현하기는 매우 성가신 문구가 바로 이런 문구이다. 어쩌면 우리말에서도 이런 문구를 자주 쓰지 않으니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말에서 자주 쓰이는 문구라 해도 내가 자주 쓰지 않으니 익숙하지가 않다.

아무튼 영화의 전반부는 [if you dare]라는 한 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이들이 벌이는 내기는 나의 건전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엽기 수준이지만, 과거 80년대 프랑스 영화를 특징짓던 [과장]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정도는 아니다. 되려 엽기 수준의 내기를 통해 우리는 어렴풋이 이들이 겪게 될 다사다난한 삶을 예견할 수 있다. 내기란 운동에너지 손실이 없는(되려 왕복 운동을 반복할 때마다 그 운동에너지가 커지는) 상황에서의 진자의 왕복 운동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Love me if you dare
사랑이란 무엇일까? [사랑은 이런 것이다]하고 어렴풋이 깨달을 나이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랑은 어려운 숙제다. 가끔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신이 어딘지 어색해 보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신이 위대해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두 주인공인 벌이는 사랑은 내기란 겉옷을 입은 밀고 당기기다. 물론 그 방법이 때로는 치졸하고, 상식을 뛰어넘는 [깬다]수준이긴 하지만 이 두 사람이 사랑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비록 [내기] 때문에 엇박자를 밟고 있더라도 말이다.

Confession& Conclusion
고백이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고백은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형성된 균형을 한 순간에 고백 받은 사람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 간다. 고백은 비난 받기 보다는 보호 받아야 마땅할 것이지만 현실에서 고백이란 [백기 항복]의 동의어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속 두 주인공들의 내기가 장난을 넘어서 서로에게 고통을 가하려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의 이면에는 고백을 [진짜 고백]으로 믿지 못하는 상황이 숨어있다. [너를 사랑해]란 한마디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아니다.

이 영화에는 [He loves me]같은 반전은 없다. 하지만 결론은 정말 쇼킹하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사랑마저도 [내기]의 비틀림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하지만 나쁜 결론은 아니다. 되려 [real life]라는 제약을 넘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결론이다. 어떤 결론이 나올까 하고 한참이나 고민 중인 관객의 사고를 정지시켜 버리는 side effect를 포함하긴 하지만…

Love if you dare는 평론가들에게 환영 받기 어려운 영화다. 딴지 걸기 좋아하는 관객들의 환영을 받기는 더더욱 어려운 영화다. 하지만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적절한 영화다. 기법과 장치. 메시지 같은 귀찮은 물음에서 벗어나 보면 꽤나 매력적인 이야기이기에…

영화 트로이와 일리아드3

7. 아킬레스의 죽음에 대한 2가지 이야기.

아킬레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2가지 신화가 전해진다. 파리스의 화살에 아킬레스건을 맞아 죽는 결말은 똑같지만 하나는 전사하는 것이고, 하나는 암살이다. 우선 첫번째 관해서 이야기 하자면 헥토르의 죽음 이후 트로이에는 아마조네스의 지원군과 이디오피아 멤논왕의 지원군이 도착하게 되는데 아마조네스 여왕은 전투에 참여한지 하루 만에 아킬레스의 손에 전사한다.(어떤 설화에는 이 아마조네스 여왕과 아킬레스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디오피아의 멤논왕은 아킬레스와 사투를 벌이다가 격살 당하며 승세를 몰아 아킬레스는 트로이의 흉벽에 쇄도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아폴론의 인도를 받은 파리스의 화살에 갑옷으로 보호할 수 없는 발 뒤꿈치를 맞아 전사한다는 것이 요지이다.(아킬레스의 시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투에서 아이아스와 오딧세우스가 활약했다는 이야기도 이어지지만 너무 길어서 생략)

두 번째 이야기는 헥토르와 파트로클레스의 장례 이후 트로이와 그리스 양군 사이에는 오랫동안 평화가 유지되는데 이 틈에 아킬레스가 프리아모스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이다. 아킬레스가 프리아모스의 사위가 되고 파리스가 헬레네를 포기하는 선에서 휴전 회담이 진행 중이었는데 파리스는 신전 회랑에서 데이트 중인 비무장 상태의 아킬레스를 화살로 암살한다.

아킬레스의 죽음 이후 그리스에서 도착한 네오프톨레무스의 활약과 렘노스섬에서 귀환한 필록테테스의 독화살. 그리고 오딧세우스의 목마 계책으로 트로이는 함락되며 네오프톨레무스는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한 프리아모스의 딸을 아버지의 무덤에 받친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이야기보다 두번째 결말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수많은 학자들이 신화의 정설로 채택하고 있는 이야기는 첫번째 결말이다. 아마도 아킬레스같은 영웅이 전쟁터가 아닌 신전 회랑에서 죽었다는 사실에 쉽게 동의하기 힘든 모양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마이너리티를 지지한 사람도 적지 않다. 에우리피데스는 그의 비극 시리즈에서 두번째 설을 지지했다.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죽는 것보다는 데이트 중에 허망한 죽을 맞이하는 것이 더 영웅다운 것이 아닐까? 허망한 죽음이야말로 영웅들의 영광을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그런 요소가 아닐까 싶은데…

8. 아이아네스의 탈출

영화 트로이에서 파리스는 아이아네스란 젊은이에게 트로이 왕가를 상징하는 보검을 맡긴다. 신화에서 아이아네스는 앙키세스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아들이며, 트로이 함락 당시 살아남은 유일한 무사로 알려져 있다. 카르타고의 시돈 여왕과의 로맨스나 이탈리아에 이르러 로마의 모태가 된 알바롱가를 세운 것으로 신화에는 기록되어 있다. 극중 아이아네스의 등장과 트로이의 보검이 그의 손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통해 시나리오 에디터는 트로이라는 도시는 망했지만 민족은 로마로 다시 거듭났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딘지 유치한 구석이 있는 설정이다.

Omission & Targeting
토로이를 보면서 느낀 사소한 감상은 시나리오 에디터의 마음 고생이 정말 심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사실 헐리우드의 시나리오 에디터쯤 되는 사람이 트로이 전쟁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 원전과 전래되는 수많은 그리스 비극, 다양한 학자들이 내놓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주석본이 책상 한 가득 쌓여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은 진리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는 상아탑이 아니라 수익성을 추구하는 기업 시스템이다. 영화사라는 기업이 [트로이]라는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기업은 [트로이]를 볼 특정 소비 계층을 targeting 했을 것이다. 그리고 시나리오 에디터에게 부여된 임무는 적절한 Omission과 Dramatization를 사용하여 targeting된 소비 계층의 기호에 가장 적절한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이었으리라.

사실 [트로이]는 따지기 좋아하는 소수의 관객층에게 환영 받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트로이 전쟁에 등장하는 인물만 물경 세 자리를 넘어가며 트로이 전쟁이라는 소재를 토대로 파생되는 이야기의 가짓수도 두 자리를 넘어간다. 수많은 이설를 따라 이야기를 재구성하다 보면 수십 권의 책을 써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사십에 육박하는 브래드 피트의 근육은 이십대 청년처럼 잘빠졌으며, 늘 결정적인 순간에 채이는 역할만 맞던 만연 조연 에리 바나의 스타일도 괜찮았다. 모범생같았던 올란드 블롬의 겁먹은 표정도 봐줄 만 했고, 나름대로 인물 사이의 갈등 구조와 인과 관계도 분명했다.

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온갖 압박감 속에서 이 정도의 시나리오라도 만들어 낸 에디터에게 소소한 박수 정도는 쳐주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 이상을 만들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논외로 쳐야겠지만..

영화 트로이와 일리아드2

4, 메넬라오스와 헬레네, 그리고 파리스

영화에서 파리스와 결투를 벌이다 엉겁결에 헥토르 손에 죽은 메넬라오스는 실제로는 전쟁의 최대 수혜자 가운데 하나이다. 잃어버린 아내를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형인 아가멤논처럼 귀국 후 암살당한 것도 아니고, 오딧세우스처럼 10년이랑 방랑 끝에 고향에 되돌아 온 것도 아니다. 폭풍을 만나 이집트에 도착한 메넬라우스는 이집트와의 무역으로 더욱 풍족해진 전리품을 가지고 스파르타에 돌아와 행복을 만끽한다.

그렇다면 전쟁의 원인으로 알려진 헬레네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에서는 파리스와 함께 불타는 트로이에서 빠져나온 것으로 묘사되지만 헬레네는 메넬라우스 손에 돌아온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헬레네를 가진 남자가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파리스의 전사 이후 헬레네는 두 명의 트로이인 남편을 더 거느렸으며 이들은 모두 전투 중에 전사했다. 결국 남편 잡아 먹는 여자로 찍힌 헬레네는 더 이상의 남편을 거느리는 영광을 유지하지는 못하지만 신화에 기록된 헬레네의 남편은 4명이다. 얼굴값 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은 아닌 것이다.(그리스 신화에서는 최고 기록이다.)

한편 영화에서는 헬레네가 트로이의 헬레네가 된 것으로 나오지만 일리아드에서의 헬레네는 그리스와 트로이 사이에서 외줄을 타는 고도의 기예를 보여준다. 트로이성에 침투한 오딧세우스와 디오데메스를 도와주며 오딧세우스가 팔라디온의 방패(영화에서는 검으로 표현된다. 트로이를 지키는 보물로 알려져 있다)를 그리스 군으로 훔쳐가는 과정에 지대한 도움을 주기도 한다. 결국 트로이 함락 이후 헬레네는 오딧세우스의 증언 아래 다시 스파르타의 헬레네가 된다.

한편 영화 속에서 탈출에 성공하는 파리스와 달리 신화 속의 파리스는 필록테스의 독화살에 맞아 숨을 거둔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죽음의 고통 속에 파리스가 찾은 사람은 헬레네가 아니라 옛 애인인 오이오네라는 사실이다. 파리스의 치료 요구를 거절한 오이오네는 곧 후회하며 파리스를 찾지만 이미 숨을 거둔 다음이다. 오이오네는 파리스의 시신을 화장하는 장작단에 몸을 던짐으로서 그리스 비극에 소재 하나를 더해준다.

한편 특이할만한 사실은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와의 결투 이후(파리스의 비겁함으로 결투가 어이없게 끝났지만) 헬레네와 파리스의 관계가 삐끗 거렸다는 사실이다. 이 결투 이후 노골적인 헬레네의 외줄 타기 행각이 벌어지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5. 영화 속의 아작스와 두 아이아스

영화 속에서 거대한 워 해머를 휘두르는 무사는 아작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성벽에서의 전투 중에 헥토르의 손에 전사한다. 하지만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아이아스(즉 아작스)는 두명이다. 이들은 작은 아이아스와 큰 아이아스로 불렸는데 이들은 모두 전장이 아닌 조금 어이없는 곳에서 어이없이 삶을 마감한다. 먼저 아킬레스와 쌍벽을 이루는 무용를 소유하고 있던 군인 중의 군인 아이아스는 아킬레스의 사후 벌어진 장례 경기에서 오딧세우스에게 아킬레스의 갑주를 얻는 영광을 가로 채이고 만다. 자존심 강한 아이아스는 결국 자살로 삶을 끝맺는다.

한편 작은 아이아스는 아킬레스만큼 빠른 걸음과 몸놀림으로 유명했으며 트로이의 목마에 올라타 일리아드를 함락시키는 영광을 얻게 된다. 하지만 성이 함락된 다음 프라이모스의 딸을 신전에서 겁간하게 되는데 이것이 여신의 분노를 사 벼락을 맞고 수장된다. 전쟁이 끝난 이후 그리스 연합군이 귀로에서 만난 거대한 폭풍은 이 아이아스가 여신의 신상이 있는 곳에서 벌인 이 희대의 강간 사건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6. 아킬레스와 파트로클레스, 그리고 브리세이스

브리세이스는 일리아드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스의 불화를 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되는 여인이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브리세이스가 아가멤논에게 빼앗기게 되는 경위는 조금 다르다. 그리스 군의 해안도시 습격 전투에서 최고의 미인인 크뤼세이스는 아가멤논에게 주어지고, 그보다 조금 못한 브리세이스는 아킬레스에게 주어지게 된다.

그런데 크뤼세이스는 아버지를 잘 둔 덕에(아폴로의 신관이다. 딸은 잃은 신관이 그리스군에게 저주를 내린 것을 신에게 청탁했다.) 아가멤논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되고, 째째한 아가멤논은 앞장서서 크뤼세이스를 포기할 것을 요구한 아킬레스에게 대신 브리세이스를 줄 것으로 요구한다. 결국 아가멤놈에 버금갈 째째함과 소심함으로 무장한 아킬레스는 [나 전쟁 안 해]를 연발하며 전선을 이탈한다.

아킬레스의 이탈로 그리스군이 위기를 맞는 가운데 파트로클레스는 아킬레스의 갑주로 무장을 하고 전투에 나가 선단을 불 태울 정도로 접근한 트로이군을 무찌른다. 이 과정에서 제우스의 아들인 사르페돈을 전사시키고 트로이 성벽에 까지 이른다. 하지만 그에게 허락된 영광은 방벽에서의 전투까지였고 영화처럼 헥토르의 손에 전사한다.

하지만 파트로클레스와 아킬레스의 사이는 영화처럼 사촌 형제 사이가 아니었다. 파트로클레스는 아킬레스의 친구이자 시동이었고 조금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두 사랑은 동성애 관계로 보인다.(그리스 시대에 동성애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그리고 일리아드 전체를 토대로 볼 때 아킬레스는 양성애자가 확실하다. 아킬레스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위나 후에 목마에 올라타 혁혁한 공훈을 세우는 아킬레스의 아들(네오프톨레무스)의 존재로 볼 때 요것은 거의 확실하다) 아무튼 아킬레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전선에 복귀해 트로이군을 학살하는 부분에는 애인을 잃은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이상한 광기의 분출로 보인다.

다음 포스트에 계속